[야고부-이호준] 선급금과 대통령

입력 2026-06-2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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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논설위원
이호준 논설위원

선급금(先給金)은 주로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공사업에서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미리 지급하는 금액을 말한다. 한마디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先) 주는(給) 돈'이다. 건설, 물품 납품, 정보 시스템 구축 등의 사업을 낙찰받은 사업자에게 공사나 납품 등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미리 지급하는 대금의 일부다. 중소 업체나 영세 사업자에겐 천군만마(千軍萬馬)와 같다.

얼마 전 중소 업체 대표 A씨의 하소연을 들었다. 관공서 입찰(入札)을 통해 물품 납품 사업을 따냈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해했다. 가뜩이나 최악의 경기로 직원들 월급 주기도 힘든데 선급금까지 지급되지 않아 물품 대금 등 자금을 마련하느라 이중고를 겪은 탓이다. 지난해까지는 30~50% 정도 선급금을 받아 물품 구입이나 인건비 등으로 먼저 활용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열차 납품 지연과 선급금 유용(流用) 문제가 불거진 코레일 사태와 관련, '정부기관이 사기당한 것'이라 질책했고, 이후 선급 제도 합리화 방안이 마련됐다. 이에 대해 A씨는 "코레일 사태는 공사 규모나 상황 등에서 충분히 대통령의 지적을 받을 수 있었던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장의 상당수 중소·영세 업체들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며 "대통령의 호통 이후 지레 몸을 사려 선급금을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과도하게 조정하는 관공서가 있어 힘들다"고 했다.

'과잉 일반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誤謬)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대규모 조달 계약의 자금 유용을 막는 감시망을 강화할 필요는 있지만 영세 업체의 목을 죄는 목줄이 돼선 안 된다. 이들에게 선급금은 사업의 마중물이자 사업 참여 기회를 보장하는 안전장치다. 정부 정책 간 모순도 경계해야 한다. 한쪽에서는 민생 경제를 살린다며 재정을 조기 집행하고 다른 한쪽에선 선급금 제한으로 영세 업체의 돈줄을 묶어선 곤란하다. 어쩌면 코레일 사태는 선급금 문제에 앞서 대형 계약에서의 정부기관 감독 부실로 접근해야 할 사안인지도 모른다.

내수 침체, 건설 경기 부진 등으로 경기가 많이 좋지 않다. 중소·영세 기업들은 관공서 사업의 선급금까지 막히면 자금 조달 문제로 낙찰을 받고도 위기에 몰리는 역설(逆說)에 직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