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수첩-홍승빈] 투기판 열어놓고 "후회된다"는 금감원장, 반성보다 대책이 먼저다

입력 2026-06-23 09:56:15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증권사 배만 불렸다"는 금감원장, 그 상품을 허용한 건 누구였나
금융당국이 허용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이제 와서 후회라니
변동성 키운 정책 실패 인정했다면 투자자 보호 대책부터 내놔야

홍승빈 서울지사 증권부 기자
홍승빈 서울지사 증권부 기자

"당시 급하게 준비했던 것이 맞다. 극심한 회전율로 증권사 배만 불리고 있다. 드러누워서라도 증권신고서 수리를 막았어야 하는 것인지 개인적으로 반성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가운데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2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꺼낸 말이다. 해당 상품 출시를 두고 자책성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자본시장 개혁 기조에 발맞춰 불공정거래와 시장 질서 확립 문제에서 강경하고 자신 있는 목소리를 내왔던 이찬진 금감원장의 입에서 "드러누워서라도 막을걸, 후회된다"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의 단호한 화법과는 사뭇 다른, 이례적인 고백이었다.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적어도 잘못을 부정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잘못된 판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태도는 높이 살 만하다.

문제는 정책 실패의 대가를 떠안게 된 투자자들이다. 소수 종목 중심으로 쏠림이 심화하고 차익 실현과 투매를 부추기는 지금 이 시장의 한복판 속 금융당국 수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 '후회'라면, 투자자는 누구를 믿고 시장에 남아야 할까.

사실 레버리지 ETF는 출시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특정 종목에 대한 레버리지 상품은 일반 지수형 레버리지 ETF보다 변동성이 훨씬 크고, 개인투자자의 투기적 수요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애초에 제도 설계부터 납득하기 어려웠다. 금융당국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허용하면서도 시가총액과 거래대금 비중 등의 요건을 설정해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상품 출시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당국은 당초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의 명분으로 투자자 선택권 확대를 내세웠으나, 미국처럼 다양한 종목을 대상으로 시장의 선택에 맡긴 것이 아니라 사실상 국내 증시를 대표하는 두 종목에만 레버리지 자금이 집중되도록 구조를 짠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출시 시점이었다. 시장이 침체돼 유동성이 부족했던 시기가 아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향한 투자 자금이 폭발적으로 몰리던 국면이었다. 과열을 경계해야 할 시점에 금융당국은 오히려 레버리지를 얹어 시장의 열기를 더욱 부추겼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실제 상품 상장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둘러싼 수급 구조는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졌다. ETF 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계적 매매 수요와 단기 투자자들의 추격 매매가 겹치면서 변동성은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최근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급등락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기업 가치보다 ETF 수급이 주가를 좌우한다"라는 볼멘소리까지 흘러나온다. 국내 증시를 대표하는 두 종목이 사실상 투기적 거래의 중심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도 큰 상황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금감원장의 태도다.

이번 상품이 탄생한 과정에서 금융당국은 사실상 최종 승인권자였다. 상품 구조와 시장 영향, 투자자 보호 장치 등에 대한 검토를 거쳐 출시를 허용한 것도 당국이다. 그렇다면 시장 혼란이 예상보다 커졌다면 가장 먼저 나와야 할 말은 "후회된다"가 아니라 "죄송하다"와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여야 한다.

특히 금융시장은 규제 당국의 판단 하나에 수십조 원의 자금 흐름이 바뀌고 수많은 투자자의 손익이 좌우된다.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것과 책임을 다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금감원장이 시장 과열과 변동성 확대를 우려한다면 뒤늦은 후회보다 구체적인 대책이 먼저다. '투자자 보호 장치를 보완하겠다'라는 원론적 언급에 그칠 것이 아니라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를 현행대로 둘 것인지, 추가 출시를 제한할 것인지, 제도 자체를 손질할 것인지 등 최소한의 로드맵을 제시했어야 한다.

금융당국 수장의 말 한마디는 시장에 신호가 될 수 있다.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는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책임을 지는 자세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뒤늦은 후회와 또 다른 우려가 아니라, 지금의 혼란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