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이호준] '포스트 김부겸'은 없다

입력 2026-06-23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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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논설위원
이호준 논설위원

지난 6·3 지방선거 때 대구시장에 출마했다가 낙선(落選)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2일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 문자를 보냈다. "선거가 끝나고 아무것도 안 한 채 쉬기만 했다"며 말문을 연 그는 "제게 표를 주시면서 얼마나 많이 고민하셨을지 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 한 표 한 표에, 한 사람 한 사람의 결단이, 살아온 삶과 살아갈 인생이 담겨 있다"며 한 표 한 표에 담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의미를 부여했다.

앞서 낙선 인사를 통해선 이런 말을 했다. "대구에 경쟁이 벌어지고 여야가 서로 시민께 잘 보이려 노력하는, 서비스로서의 정치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보수의 본고장' 대구에서도 이른바 보수와 진보 정당의 후보 간 팽팽한 경쟁이 벌어진 것을 두고 변화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실제로 선거 전 김 후보의 박빙 우세 전망이나 여론조사도 적잖았다. 득표율도 45%나 됐다. 이 기세(氣勢)를 몰아 '포스트 김부겸'을 키워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그런데 이 분위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후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시도 행정통합에 대해 "현실적으로 다음 지방선거까지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지선 때 대구경북 출마 민주당 후보들은 조기(早期) 행정통합과 정부 차원의 재정 지원을 약속했는데, 선거가 끝나자마자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직접 선을 그은 셈이다. 말을 바꿨다고 할 순 없지만 선거 후 공기가 확 달라진 건 맞다. 이는 사실상 이 대통령 임기 안엔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추진될 가능성이 없다는 말이다. 결국 광주·전남만 통합 절차를 밟게 됐다.

공교롭게도 때를 같이해 '호남 반도체 공장 신설안'도 제기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광주와 전남 장성 등에 첨단 반도체 신공장을 짓는 방안을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두 회사는 "아는 바 없다"며 공식적으로는 선을 그었지만, 정치권에서는 기정사실(旣定事實)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대구경북으로선 선거 후 소외·배제됐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부·여당은 선거가 끝났으니 낙선한 지역 민심의 기류(氣流)가 어떤지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다음 지선도 4년 뒤에나 열리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선거 후 무관심은 지금까지 지겹도록 반복돼 온 패턴이다. 그래도 이번엔 다를 줄 알았다. 이번엔 달랐어야 했다. 낙선하고도 약속을 지키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오히려 낙선을 대구경북에서 입지를 다질, 시도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이 대통령이 '다음 지선 때까지'라는 말 대신 '행정통합에 계속 관심을 가지겠다'고 했다면 그 어떤 메시지보다 강력했을 것이다. 여당 후보가 낙선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통합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TK신공항에 힘을 실어 주는 말을 했다면 시민들의 마음은 더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이대로라면 '포스트 김부겸'은 기대하기 힘들다.

김 후보는 선거 후 약 20일 만에 인사 문자를 보냈다. 대구에 애써 피워 놓았던 희망의 불꽃이 꺼져 가는 걸 보고만 있지 못해서인지 불씨를 살리려는 듯한 말을 남겼다. "기력을 회복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대구가 나아갈 길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차분히 고민해 나가겠다"고. 정부·여당을 상대로 한 김 후보의 역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어쩌면 '포스트 김부겸'은 '아직'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