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오의 대구경북의 집이야기] 언덕 위 정든 고향, 복현동 피란촌

입력 2026-06-21 08: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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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는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피란의 기억을 품은 집들은 서로 지켜보고 있다.
골목에는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피란의 기억을 품은 집들은 서로 지켜보고 있다.

◆치열한 기억을 품은 집

6월의 시간에는 이산의 기억이 실려 있다. 전쟁은 진작 끝났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는다. 나그네는 상처의 결을 따라 복현동 피란촌으로 발걸음을 놓았다. 이곳에는 이름난 고택도 없고, 대대로 부를 누린 명문가의 집도 없다. 대신 삶을 통째로 견디며 살아낸 사람들의 집이 있다. 나그네는 그 집들의 사연을 듣기 위해 복현동 언덕을 올랐다.

초여름 햇살이 복현동 골목을 환하게 비춘다. 햇살이 이끄는 대로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시선을 붙드는 풍경은 집이 아니라 꽃이다. 전봇대를 감은 붉은 장미가 6월의 푸른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담장을 타고 오른 덩굴은 작은 그늘을 만들어 골목에 드리운다. 담벼락 아래 놓인 크고 작은 화분들은 마치 아이들처럼 줄지어 놓여 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집들은 형제처럼 서로 어깨를 겯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집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은 모세혈관처럼 마을 구석구석으로 깊게 퍼져 있다. 이 골목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삶을 일궜을까? 골목에는 고단한 삶을 가꾼 사람들의 애씀이 진하게 배어 있다. 순간, 피란촌의 풍경이 가난의 풍경이 아니라 살아냄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복현동 피란촌은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 위에 세워진 마을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피란민들이 남쪽으로 길에 올랐다. 비교적 안전한 대구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의 삶을 받아내야 했다.

피란민들은 처음에는 신천변에 움막을 짓고 살았지만, 1955년 무렵 지금의 복현동 언덕으로 자리를 옮겼다. 홍수와 위생 문제 때문에 이사가 불가피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 하나뿐인 사람들이 서로 기대어 집을 지었다. 그렇게 복현동 피란촌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많은 것을 파괴했지만, 이처럼 없던 마을이 지상에 태어나기도 한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잠시 머물 피난처였고, 누군가에게는 고향을 대신하는 새 터전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고향은 멀었고 감당해야 할 삶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생계를 꾸렸다. 그렇게 피란의 시간이 삶의 시간이 되었고 낯선 언덕은 마침내 정든 고향이 되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 언덕을 오르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었을까. 낯선 땅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막막함이었을까. 아마도 그들의 마음은 희망과 절망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새 집을 만들었고, 고향을 잃은 사람들은 새로운 마을을 일구었다. 그런데 그들이 이곳에서 지은 것은 집이 아니라 삶의 불씨였다.

복현동 피란촌은 세상의 어떤 집보다 치열한 기억을 품고 있다. 나그네는 골목 끝에 잠시 멈춰 선다.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비바람을 막아주는 건물일까, 아니면 살아갈 용기를 품게 하는 보금자리일까. 복현동 피란촌은 말없이 대답한다. 집이란 그저 머무는 곳이 아니라고. 가장 힘겨운 날에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자리라고.

골목은 길이라기보다 피란촌 주민들의 마당이자 거실이다.
골목은 길이라기보다 피란촌 주민들의 마당이자 거실이다.

◆골목이 깊은 인정의 집

한때 수백 호에 이르렀던 피란촌도 이제는 초등학교 언덕 주변에 서른 채 남짓 남았다. 이 일대에 주거환경정비 사업이 진행되면서 피란민의 집들은 하나둘 골목에서 사라졌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사람도 늙고 집도 늙는 법이다. 세월 앞에서 영원한 것은 없지 않은가.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집들도 세월 앞에서는 물러설 수밖에 없다.

마을 곁에는 경북대학교가 있다. 젊은 학생들이 오가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주민들이 기억하는 복현동은 넓은 논밭과 못이 펼쳐진 변두리 마을이다. 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물지게를 메고 물을 길어 오는 게 예사였다. 버스 한 번 타려면 경대 로터리까지 한참을 걸어야 했다. 어떤 주민은 생계를 위해 아이를 업고 칠성시장까지 걸어 다니며 장사를 했다고 회고한다. 모두가 가난했고 고단했다.

그러나 가난은 사람들을 서로 멀어지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이웃이 되게 했다. 품삯이 생기면 함께 기뻐했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손을 내밀었다. 골목 어귀의 작은 가게들은 단순히 생필품을 사고 파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하루 동안 쌓은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막걸리 한 사발로 하루의 고단함을 달랬다.

이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 모두 피란민이었던 것은 아니다. 전쟁을 피해 내려온 이들도 있었지만 먹고 살 길을 찾아 이주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경북 예천에서, 상주에서, 부산에서 새 삶을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이곳에 이른 저마다의 사연은 달랐지만,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 따뜻한 마음이 아직도 골목에 남아 있어서일까, 나그네는 한참 동안 골목 어귀를 떠나지 못했다.

골목의 경계를 이루는 담벼락에는 세월이 만든 금이 거미줄처럼 번져 있고, 회색 시멘트 벽은 비바람에 닳아 군데군데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집들의 지붕은 슬레이트와 양철, 낡은 기와가 뒤섞여 있다. 처음에는 잠시 머물기 위해 급히 지은 거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방이 덧대어지고 처마가 이어지고 담장이 여러 번 고쳐지면서 지금의 집이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살림이 보태지고 또 다른 누군가의 손때가 켜켜이 쌓이며 집은 나이를 먹었다.

문득 옛 풍경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좁은 골목에 앉아 부채질로 더위를 식히던 사람들, 저녁밥 짓는 냄새가 골목 가득 번져 나가던 풍경, 골목을 놀이터 삼아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금은 고요하지만, 한때 이곳은 살아내려는 발길이 오가던 사람 사는 골목이었다.

복현동 피란촌은 환경개선 사업과 도시재생 사업을 거치며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언덕 아래로 내려오면 복현어울림센터 두 동이 든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센터 안에는 마을식당 복현정과 전시실, 주민들의 모임 공간이 들어서 있다. 주민들이 운영하는 복현정에서는 누구나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센터 마당을 지나 마을 카페 콤마에 들렀다. 시원한 음료 한 잔을 앞에 두니 언덕을 오르내리며 쌓인 피로가 풀린다.

복현어울림센터는 마을 공동체의 삶을 이어주는 도시재생의 거점 공간이다.
복현어울림센터는 마을 공동체의 삶을 이어주는 도시재생의 거점 공간이다.

◆피란촌의 집, 짙고 푸르기를

언덕으로 다시 올라 마을을 바라본다. 집들은 오래 산 사람의 어깨처럼 조금씩 기울어 있다. 사람의 눈처럼 달린 작은 창문들은 골목을 내려다보고, 녹이 슨 대문은 긴 세월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인기척이 끊긴 빈집도 보이지만, 아직 사람의 온기가 배인 집들도 눈에 띈다. 그러나 그 집들 역시 언젠가는 골목과 작별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집은 사라져도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복현동 피란촌은 단순히 낡은 집 몇 채가 모여 있는 마을이 아니다. 더구나 동정의 대상도 아니다. 고향을 떠나야 했던 날의 애끊는 슬픔, 낯선 땅에 발을 디딜 때의 막막함, 물지게를 메고 언덕을 오르내리던 가쁜 숨결,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느꼈을 안도감. 그런 삶의 기억이 어찌 쉽게 지워질 수 있겠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집의 겉모습이 아니다. 그 집에 불을 밝히고 밥을 짓고 아이를 키우며 하루하루를 산 사람들의 자취를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전쟁이어도 모든 것을 빼앗지는 못한다. 어떻게든 살아내고야 말겠다는 사람의 마음만큼은 빼앗겨지지 않는다. 복현동 피란촌의 집들이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다.

여름 햇살 속에 웅크린 지붕 위로 뻗은 청포도 넝쿨이 싱그럽다.
여름 햇살 속에 웅크린 지붕 위로 뻗은 청포도 넝쿨이 싱그럽다.

저기 집 한 채가 눈에 든다.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 위로 청포도 넝쿨이 힘차게 뻗어 있다. 줄기는 지붕을 타고 오르며 초록 잎을 넓게 펼쳤고, 한여름 햇살을 머금은 잎사귀들은 반짝이며 흔들린다. 마치 푸른 파도가 지붕 위에 내려앉은 듯하다. 신축 빌라들이 사방에서 키를 높여 가고 있지만, 그 집만은 초록의 기운으로 자신만의 영토를 지켜내고 있다.

나그네는 한참 동안 그 집 앞에 서 있었다. 낡은 슬레이트와 푸른 포도 잎은 어울리지 않을 듯하지만 놀랍게도 서로를 빛나게 한다. 한 자리를 저리 오래 지켜 왔기에 더욱 푸르고, 척박한 시간을 견뎌냈기에 생명력이 짙어 보인다. 어쩌면 복현동 피란촌의 역사가 저 포도나무와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부디, 이 마을이 더 짙고 푸르기를 바라며 나그네는 발길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