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우 시인·소설가
오륙도를 돌아오는 유람선을 탄 적이 있다. 배가 출발하기 무섭게 사방에서 갈매기들이 몰려들었다. 어떻게 보면 갈매기들의 옹위를 받는 모양새였다. 갈매기들은 속도를 내기 시작한 배를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갈매기와 배의 각별한 인연을 예시하는 풍경이면 좋겠지만 주지하다시피 갈매기들이 노리는 건 새우깡이다. 난간에 바짝 붙은 승객들이 새우깡을 쥐고 흔들면 순식간에 낚아채 갔다. 새우깡을 공중으로 던지는 이들도 있었는데 갈매기들은 그때마다 묘기를 부리듯 재바른 동작으로 받아 삼켰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더러 바다에 떨어진 새우깡은 눈치 빠른 갈매기의 몫이었다. 내게는 그 모든 게 갈매기의 본성을 지우는 놀이로 비쳤다. 꽤 오래 지악스럽게 맴돌던 갈매기들은 과자가 바닥난 것을 알았는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때 떠오른 것이 리처드 바커의 '갈매기의 꿈'이었다.
책 속의 주인공 조나단은 단순히 먹이를 목적으로 하는 이동 혹은 관성에 젖은 일상의 비행을 뛰어넘고자 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참된 자유와 정체성을 찾는 것이었다. 초절정의 비행술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동료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심지어 아버지에게서조차 외면받지만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목숨을 건 비행을 통해 조나단이 알게된 건 무엇이었을까. 정신은 시류를 좇고 육체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자신만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견인하는 건 타력(他力)이 아니라 자력(自力)이라는 것. 그런 게 아니었을까.
TV 드라마에서 인기를 끈 액세서리가 불티나게 팔리고, 아이돌 스타가 먹은 음료가 품절이 되고, 잘된다고 입소문이 난 음식점을 모방한 음식점이 우후죽순 생기는 걸 볼 때면 버릇처럼 갈매기족을 떠올린다.
일상이라고 다를까. 출퇴근 시간에 버스 정류장이나 전철역에 가면 수많은 갈매기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복장은 엇비슷하다. 손에 들고 있는 것도 고만고만하다. 모든 게 규격화 자동화되면서 출근 시간도 근무 시간도 심지어 여가시간도 비슷한 색을 띤다. 귀가해 TV를 켜면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갈매기들이 잘 짜여진 각본에 맞춰 날갯짓한다. 시청하는 갈매기들은 화면 속 갈매기들이 날아가는 방향과 그들이 거기에서 본 것, 먹은 것들을 메모해 둔다.
문학판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도서관에 나가 새로 나온 시집들을 살펴보곤 하는데 형식과 내용이 비슷하다 싶을 때가 있다. 갈매기들이 한 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날아간다는 느낌. 문학강좌에서 수강생들의 시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거칠더라도 개성이 뚜렷한 시를 읽고 싶다. 유사한 시들을 읽을 때면 귓가에서 바삭, 새우깡 깨무는 소리가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