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달리는 것을 멈추고 발견한 여름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대부분 시인 이상의 오감도(烏瞰圖)를 읽으면 공포스럽고 불안해진다고 한다. 총 36편의 시들, 한여름이면 나는 일종의 납량특집 드라마처럼 이 시편을 읽는다. 읽고 있노라면 무서운데, 무서움에도 불구하고 죽어라 달리고 질주해야 하는 무서운 꿈같이 느껴져 온 마음과 정신이 일순 서늘해져서다.
진화생물학에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s Hypothesis)'라는 가설이 있다. 진화 경쟁에서 생명체는 주변 환경과 경쟁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화해 적응하여야만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하고.'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끝없이 달려야 제자리에 있을 수 있는 나라의 붉은 여왕이 하는 말에서 딴 가설이다.
문득 오감도와 붉은 여왕의 가설이 가위눌림처럼 다가온다. 까뮈가 말한 질주에의 한계에 다다른 '한겨울 한가운데' 나는 서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나는 잠시 '더 빨리 달리는 것'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고야 만다. 인디언들도 달리다가 영혼이 따라오는지 보려고 뒤돌아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느 해 여름 우린 무한경쟁의 현실 따윈 훌훌 내던져 버리고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떠났다.
◆말레이시아, 다양성과 공존의 나라
코타키나발루는 쿠알라룸푸르가 있는 서말레이시이 바다를 사이에 둔, 지도로 보기엔 오히려 필리핀과 더 가까운 동말레이시아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반도와 보르네오섬 북부에 있는 동남아시아의 연방 입헌군주제 국가로,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 등과 인접하고 있다. 수도는 쿠알라룸푸르이며 정부청사가 소재한 행정수도는 푸트라자야이다. 말레이시아에 최초로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약 6만~4만년 전이며 본격적인 거주가 이뤄진 것은 기원전 8천년경부터이다.
초기 말레이 문명은 힌두교와 불교가 융합된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세기 무렵 랑카수카왕국이, 7세기부터 13세기까지는 인도네시아에서 발현한 스라위자야왕국의 통치를 받았다. 14세기 무렵 아랍 상인들이 말레이시아에 이슬람교를 전파해 15세기 파라메스와라 왕자가 말레이 술탄국을 건립했지만 1511년 향료를 찾아 나선 포르투칼인들의 침공으로 멸망했다.
하지만 그들도 1641년 네덜란드인들에게 내쫓겼고, 이들 또한 1824년 동남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영국과 압박 협정을 맺어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말레이시아, 싱가포르)는 영국이, 남부(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가 지배하게 되었다. 이들은 지배기간 동안 중국, 인도에서 노동자를 대거 유입시켜 현재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민족 구성이 시작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이 말라야, 보르네오, 싱가포르 지역을 점령하여 1945년까지 3년간 통치했다. 이후 영국이 다시 이 지역을 점령하여 싱카포르를 제외한 말라야 연합(연방)이 세워졌다가 1957년 독립하였다. 1963년 사바, 사라왁, 싱가포르를 합쳤지만 2년 뒤 싱가포르가 분리 독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코타키나발루, 영혼의 안식처
코타키나발루는 말레이시아 제7의 도시 시바주의 주도(州都)이며 동말레이시아 최대도시다. 코타 키나발루(Kota Kinabalu)에서 코타는 도시를, 키나발루는 말레이시아 최고봉 키나발루 산을 의미한다. 영국 식민지 시절엔 주둔군 장군의 이름을 따 제슬턴(Jesselton), 원주민 카다잔두순어로는 아키 나발루(Aki Nabalu, 영혼의 안식처)라 불리었다. 이곳 사람은 죽으면 그 영혼이 키나발루산에 머문다는 전설이 있다.
코타키나발루는 편안하고 아름다웠다. 호텔 루프탑 수영장의 물도 어디서든 보이는 바다도 산도 리조트 구름다리도 하늘도 노점에 쌓인 과일들마저 향긋하고 싱그러웠다. 밤이면 해변가엔 저마다 알록달록 네온 싸인이 켜지고 세계 각국 관광객들이 흥겹게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추었다. 하지만 이튿날 숙취에 절어 내려간 호텔 로비에 펼쳐진 잡지에는 성한 건물이라곤 없이 무참하게 부서진 도시의 오래된 흑백사진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1942년 1월, 제2차세계대전 추축국 일본은 북보르네오를 침공했고 도시는 점령되었다. 주민들은 강제노동에 동원되었고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다고 한다. 1943년 중국계 원주민 연합 저항군이 봉기를 일으켰지만 일본군에게 잔혹하게 진압되었다. 해안 마을은 거의 불탔고 저항지도자 알버트 퀵을 비롯한 4천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게다가 1945년 연합군은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대구묘 폭격을 가했고 도시 전체는 거의 잿더미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 단 세 건물만이 폭격에서 온전했는데 그중 1905년 세워진 시계탑(Atkinson Clock Tower)에서 우리는 일행들과 만나 툰쿠 압둘 라만 해양공원의 마누칸섬으로 떠났다. 적도 부근이라 날씨는 우기 이외엔 거의 덥고 화창해 바다는 제 속살마저 드러낼 듯 푸르렀다. 스노쿨링을 하는 사람들 사이 우리는 물속을 헤적이다가 사피섬으로 건너가 패러 세일링을 했다. 노랗고 파란 낙하산을 타고 바다 위로 떠올라 수평선에 즐거워하다가 '폐허 위에 재건된 도시에서…'란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이 또한 인류 역사이며 드레스덴, 바르샤바, 히로시마의 평화와 평온을 떠올리며 코타키나발루의 번영을 위해 마음껏 더 즐거워하기로 다시 마음 먹는다.
돌아오는 길 탄중 아루 해변의 석양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리스 산토리니 등과 더불어 왜 이 해변이 세계 3대 일몰 풍경지라는지 납득될 정도였다. 다음 날 맹그르브숲을 탐험하고 반딧불 투어를 하면서 세속의 모든 것을 잊는다는 게,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처음 본 해산물과 요리도 맛있었고 열대 과일은 농익어 과즙이 묻은 손가락에도 오래 향이 났다. 그야말로 완벽한 여름 휴가였다.
흰 외벽과 금색 격자무늬가 그려진 푸른 돔의 블루 모스크는 인공 호수 위에 그림처럼 떠 있었다. 2000년에 완공되었다는데 불경스러운 표현이 아니라면 앤디 워홀의 작품을 대중들이 좋아하는 팝 아트라 부르듯 분홍빛 돔과 외벽을 가진 핑크 모스크와 더불어 팝 모스크라 부르고 싶을 정도였다. 경건하고 우아하고 낭만적이라 모든 사람들에게 친근한 모스크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아, 말레이시아는 우리나라처럼 종교의 자유가 있어 모든 국민들이 더 평화로워 보였다. 이제 올 여름 짧은 휴가를 코타키나발루로 다시 한 번 더 가볼까 고민할 시간이다.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