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양저문화 현대 중국 기원 또는 모태 해석
요임금 또한 동이족으로 알려져 있어
◆중원의 두 동이국가 북홍산·남양저
중국은 지금 홍산문화를 북방의 대표 문화로, 양저문화를 남방의 대표 문화로 높이면서 북홍산(北紅山) 남양저(南良渚)라고 부른다. 홍산문화와 양저문화는 이미 국가 수준의 사회 조직을 갖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자신들을 "56개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통일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홍산과 양저문화를 현대 중국의 기원 또는 모태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홍산문화는 동이족의 한 갈래인 배달족의 문화이며, 양저문화 또한 장강 유역 동이족의 문화이다. 홍산문화를 이룩한 배달족의 후손들이 서기전 2333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홍익인간)"는 이념으로 고조선을 건국했을 때 황하 중상류 지역은 오제(五帝) 중 네 번째인 요(堯)임금 시대였다. 요임금 또한 동이족으로 알려져 있다.
고조선이 중국 동북지역을 다스리는 동안 황하 중상류에서는 요임금과 역시 동이족인 순임금이 뒤를 이었다가 구주(九州)를 개척한 우(禹)임금에게 선양했다. 우임금은 공자가 삼대(三代)라고 크게 높였던 하·은·주(夏殷周)의 첫 머리인 하(夏)나라를 건국했다. 현재 중국은 우임금의 개척한 구주(九州)가 마치 중원 전체였던 것처럼 묘사하지만 이는 뒤로 갈수록 과거의 강역을 크게 그리는 중국 역사학의 특징을 말해주는 것이고, 실제 구주는 황하 중상류를 벗어나지 못하였다.(지도) 이 하나라는 한족(漢族) 국가일까? 아닐까? 현재 중국학자들은 한족의 기원에 대해 밝히지 못하고 있다.
◆하나라 임금을 쫓아낸 동이족 예(羿)
고조선 건국 이후 황하 중상류와 중하류에 거주하던 동이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들은 해당 지역들을 차지하고 하나라와 경쟁하였다. 하나라는 동이족 국가임이 분명한 은(殷)에게 멸망하는데 은(殷)이 최초의 동이족 국가는 아니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 서문」에는 은나라 이전의 동이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서문」은 동이족에 관한 체계적인 글이지만 축약과 춘추필법이 심해 행간을 잘 읽어야 한다. 이 「서문」에서는 하나라 3대 임금인 태강(太康)이 덕(德)을 잃자 "이인(夷人)들이 처음으로 배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인들이란 물론 동이족이다. 이 구절에 대해 당나라 장회태자 이현(李賢)은 태강이 놀이와 사냥에만 빠져 백성들의 '먹사니즘'을 외면했기 때문에 예(羿)가 태강을 쫓아냈다고 주석을 달았다. 태강을 쫓아낸 인물이 유궁씨(有窮氏) 후예(后羿)라는 기록들이 다수 전해지고 있다.
이 예는 『산해경』에도 등장한다. 동이족의 인문지리서이자 신화집인 『산해경』은 동이족 천자인 제준이 예에게 붉은활과 흰 깃털이 달린 화살을 주면서 하계(下界)를 돕게 했고, 예는 하계의 온갖 어려움을 없애거나 구해준다. 중국 신화학자 원가(袁珂)는 이 기록에 주석을 달아 『산해경』에 나오는 예는 하나라 태강을 쫓아낸 유궁씨(有窮氏) 후예(后羿)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태강 때 이인들이 배반했다는 「동이열전 서문」에 대한 이현의 주석은 태강을 쫓아낸 예(유궁씨 부락의 후예)가 동이족임을 말해준다. 후예(后羿)는 이예(夷羿)라고도 불리는데, 이(夷)는 물론 동이를 뜻한다. 후(后)는 선양(禪讓)으로 즉위한 하(夏)나라 왕을 뜻하는 존호로서 후예는 유궁씨의 수령이다. 「동이열전 서문」의 이인들의 수령인 후예와 『산해경』의 예가 서로 동일인물일 가능성을 크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은나라를 건국한 동이족 탕왕
「동이열전 서문」의 후예는 은나라 이전에 존재했던 동이족 정치 세력의 실체를 알려준다. 즉 동이는 하나라 임금 태강이 무도하다는 이유로 쫓아낼 만큼 하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더 힘 있는 정치 세력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후에도 하나라 걸(桀)왕이 향락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자, 동이족인 탕(湯)이 걸왕을 쫓아내고 은(殷)나라를 세웠다. 후예와 탕왕의 사례는 동이족이 하나라 시기 내내 중원에 강력한 정치세력으로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주나라 시대 동이족 국가, 서국
그렇다면 대표적인 동이족 국가였던 은(殷)을 주(周)가 멸망시킨 이후에도 동이족 국가들이 존속했을까? 주나라 때 대표적인 동이족 국가는 서국(徐國)이고, 그 대표적 군주가 서언왕(徐偃王)이다. 서국은 회수(淮水) 유역을 중심으로 수백 년 동안 존속한 동이족 국가이다. 서국의 중심지는 오늘날의 강소성(江蘇省)과 안휘성(安徽省) 일대로 비정된다. 『죽서기년(竹書紀年)』과 『좌전(左傳)』에는 서국과 주왕실 및 주변 제후국들의 관계가 기록되어 있다. 『예기(禮記)』 「단궁하(檀弓下)」에는 서구왕(徐駒王)이 황하에 이르렀다는 기사가 보이며, 『좌전』에는 서국이 노(魯)·초(楚)·오(吳) 등과 교류한 기록이 전한다. 또한 서주 시대 청동기 명문에는 서(徐)와 관련된 정벌과 회유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서국이 단순한 부족 집단이 아니라 주나라와 경쟁할 정도의 정치세력이었음을 보여준다.
은나라를 멸망시킨 주(周)나라는 중원의 영토를 다 차지하지 못했다. 〈서주제후국분포도〉를 보면 회수(淮水) 유역 및 그 아래 장강 유역에는 주나라의 힘이 미치지 못했다. 그 지역은 서언왕이 다스렸던 서국(徐國)이었다. 『사기』에 따르면 서언왕은 주나라 5대 목왕(穆王)과 동시대 사람이었다. 중국의 신화학자 원가(袁珂)는 "서(徐)라는 성은 본래 영(贏)에서 나왔는데 이는 중국 고대 동이 민족의 한 갈래이다."라고 했다. 서언왕은 고구려의 주몽처럼 난생신화의 주인공이다. 원가와 장광직(張光直)은 난생신화를 동이족의 신화라고 말한다.
◆난생신화의 주인공, 서언왕
장화(張華)가 엮은 『박물지(博物志)』에는 서언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서국의 궁녀가 임신하여 알을 낳았는데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겨 물가에 버렸다. 그곳에 사는 과부에게는 곡창이라는 개가 있는데, 곡창이 물가에서 버려진 알을 물고 오자, 과부가 그 알을 따뜻하게 덮어주었더니 마침내 알에서 아이가 나왔다. 순자(荀子)는 이에 대해 어릴 때부터 마음대로 "누웠다 일어났다[偃仰:언앙]"해서 이름을 언(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서국왕이 언을 궁궐로 데려와서 아들로 삼고, 장성하자 왕위를 물려줬다고 한다. 『박물지』에는 다른 이야기도 전하는데, 서언왕이 상국(上國)으로 가는 길을 내려고 주나라의 제후국인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 운하를 파다가 붉은활과 화살을 얻었는데, 하늘의 상서로움을 얻었다고 여겨 스스로 왕으로 칭했다는 것이다.
◆인의로 36개국을 이끈 서언왕
서언왕이 다스리던 서국의 강역은 500리였는데, 인의(仁義)를 행해서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유역의 36개국의 제후들이 육로로 와서 조공을 바쳤다고 한다. 마침내 서언왕은 구이(九夷)를 거느리고 주나라를 쳐서 서쪽으로 황하의 상류까지 이르렀다. 주 목왕(穆王)은 그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경계하여 동방 제후들을 분리해서 서언왕에게 다스리게 했다. 이후 목왕은 서쪽으로 순수(巡狩)했는데, 이때 서왕모(西王母)를 만나 즐거움에 빠져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목왕은 서언왕이 난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조보(造父)에게 천리마인 적기(赤驥)와 녹이(騄耳)를 주어 초나라 왕에게 서언왕을 정벌하라고 명했다. 조보는 하루 만에 초나라에 도착하여 목왕의 명령을 전했다.
◆전쟁을 피한 서언왕
이때 『박물지』와 『후한서』 「동이열전」에서는 서언왕이 인자하여 백성들이 전쟁으로 피해를 입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팽성(彭城) 무원현(武原縣) 동산(東山)으로 후퇴했는데, 서언왕을 따라간 백성이 1만 명이나 되었다고 했다. 『한비자』 「오대편(五蠹篇)」에는 서언왕과 서국의 멸망에 대해 단순히 서언왕이 36개국의 제후들에게 땅을 나눠주자, 초나라 문왕이 이를 두려워해서 서국을 정벌한 것이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서언왕이 인의를 실천하였다는 점은 동일하게 나타난다. 『후한서』, 『박물지』, 『한비자』 등 여러 문헌이 공통적으로 서언왕을 인의로운 군주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동이족이 추구한 정치 이념이 단순한 무력과 정복이 아니라 백성과 덕을 중시하는 가치였음을 보여준다.
◆동이족이 추구한 인의의 정치
『예기(禮記)』 중의 한 편인 「왕제(王制)」에서는 이(夷)를 만물의 뿌리로 보며, 생명을 가진 존재를 아끼는 풍속이 있다고 하였다. 『설문해자』에서도 동이를 '동방의 사람들'로 풀이하고, 그 풍속이 어진데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고 설명하였다. 이 때문에 동방에는 군자국(君子國), 불사국(不死國), 장수국(長壽國)과 같은 나라가 있다고 전해졌다. 이는 고대부터 동이가 덕과 생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음을 보여준다.
모든 민족에는 본래의 문화와 후대에 변질된 문화가 공존한다. 우리 동이족은 하늘을 경외하며 생명을 중시하는 것을 본래의 문화로 삼아 왔다. 후예가 폭군 태강을 몰아냈고, 탕왕은 걸왕을 무너뜨렸으며, 서언왕은 인의로 36개국의 존경을 받았다. 중국의 여러 문헌이 공통적으로 기억하는 서언왕의 모습 또한 인의(仁義)를 실천한 군주였다. 후예와 탕왕, 그리고 서언왕의 기록은 동이족이 단순한 변방의 부족이 아니라 독자적인 정치세력과 문화를 가진 민족집단이었음을 보여준다. 서국과 서언왕은 고조선의 홍익인간처럼 동이족이 추구한 인의와 생명 존중의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보편적 동이 문명을 보여주고 있다.
동방문화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