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초부터 현재까지 출연작 및
'난타' 등 공연 기획·제작 아카이브
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 때 사진 등 전시
경북대 북문 청문당서 20일까지
정말 좋아하지 않고서야 못배길 일이다. 배우 송승환의 다채로운 이력을 보면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연극 30여 편, 영화 20여 편, 드라마 70여 편에 출연했고, 누적 관객 1천600만명에 달하는 글로벌 흥행작 '난타'를 비롯해 60여 편의 연극·뮤지컬을 제작했다. 국내 최초로 뮤지컬학과를 만든 교수이자 TV·라디오 진행자,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65년 아역 배우로 첫 발을 뗀 그가 지난해 데뷔 60년, 올해 칠순을 맞았다. 경북대 북문 인근 청문당에서 오는 20일까지 열리는 '나는 배우다, 송승환'은 이를 기념한 아카이브 전시다. 그의 데뷔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주요 작품을 비롯해, 문화기획·제작자로서의 예술적 발자취를 아우르는 사진과 영상 자료들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 10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와 함께 전시를 둘러보며 얘기를 나눴다. 2019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장애 4급 판정을 받은 그는 사진을 설명할 때면 안경을 들어올리고 30㎝ 정도의 거리에서 가까이 들여다보곤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의 눈빛은 오히려 호기심과 열정으로 반짝였고, 담담하고 겸손하게 말을 이어갔다. 데뷔 61년차, 여전히 무대 위·아래에서 작품을 이끌어가는 현역의 내공이 한마디, 한마디에서 느껴졌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 인생 70년, 배우 60년은 흔치 않은 이력이다. 전시를 준비하며 느낌이 남달랐을텐데.
▶사진을 보면 엊그제 같은데 30년 전, 어떤 건 50년 전이다. 세월이 정말 빠르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또 배우로서, 제작자나 기획자로서 평생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다는 게 참 행복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는 감사하다는 것이다. 연극은 혼자 할 수가 없다. 모노드라마조차도 누군가 조명을 비춰주고 분장을 해줘야 한다. 그만큼 60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구나 싶었다.
- 대중문화예술계 전반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는데, 전시 제목을 '나는 배우다'로 정한 이유는.
▶다른 어떤 일을 할 때보다 배우로 활동할 때 가장 내 에너지가 충만한 것 같고, 제일 순수해지는 것 같다. 제작은 돈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배우일 땐 개런티 많이 달라고 했다가, 제작자일 땐 깎으려는 이율배반적인 일도 해야 한다.(웃음) 하지만 연기할 때는 그런 생각 없이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열정을 그대로 쏟아넣을 수 있고, 내 영혼이 가장 맑아지는 때가 배우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목을 그렇게 정했다.
- 배우로서의 성공은 당연하고, 기획·제작자로서도 한 획을 그었다. 제작의 매력은.
▶앞서 얘기했듯 제작이나 기획은 비즈니스가 많이 개입되고, 이해관계가 많이 얽히다보니 갈등을 조정해야할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러다 커튼콜 때 관객들의 진심어린 박수 소리를 들으면 정말 행복하다.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난타 첫 공연이 끝나는 순간 모두가 기립박수를 쳤는데, 객석 맨 뒤에 서있던 내가 무대 위 배우보다 훨씬 더 행복해했다. 골 넣은 축구 선수보다 벤치의 감독이 더 좋아할 때, 딱 그 기분이다. 그게 제작의 큰 매력이다.
- 60년의 세월 동안 흔들리는 시간도 있었을텐데 어떻게 이겨냈나.
▶사실 중학교 때 집이 어려워져서, 가족들이 내가 방송국에서 버는 돈을 갖고 생활했다. 소년 가장으로서 항상 낚싯대를 여러 개 놔야 된다고 생각했다. 영화 섭외가 안 오면 드라마를 찾고, 드라마 섭외가 안 오면 TV 프로그램 MC를 하고, 그것도 없으면 라디오 DJ라도 해야 했다. 배우로서 위기가 왔을 땐 제작을 시작했다. 계속 돈을 벌어야 우리 집안이 먹고살 수 있으니 일이 끊이지 않았고, 오히려 슬럼프가 적었던 것 같다. 시간을 늘 쪼개서 써야 했고 항상 몸이 바빴지만 그래도 큰 위기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 여러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싫진 않았는지.
▶그런 얘기를 한 적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작이 한가롭게 써서 나온 게 아니다, 내일 모레까지 빚 갚으려면 빨리 써서 출판사에 원고를 줘야 돈을 받을 수 있으니 열심히 쓴 거다 라고. 나도 그 당시에는 당장 이달 말까지 빚 천만원을 마련하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빚이 원동력이었던 거다.
하지만 가장 큰 원동력은 그 일들이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한 게 아니라, 다 내가 재미있었고 좋아서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총감독을 제안받았을 때도 영광스럽지만 한편으로 잘못되면 큰 책임을 져야 하기에 망설였었다. 그 때 생각한 게, 명예나 돈을 떠나서 이 일이 재미있느냐 없느냐 였다. 지금껏 살아오며 갈림길에 섰을 때, 항상 내가 재미있는 일을 택했다. 그래야 최선을 다할 수 있고, 잘못해도 후회가 덜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선택하며 살아온 게 뒤돌아보니 좋았던 것 같다.
- 타 인터뷰에서 '칠순 이후에는 마음을 내려놓고 살겠다'고 했는데, 그래도 마음 속에는 여전히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는 듯하다.
▶시력이 나빠지니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지더라. 아이디어가 자꾸 떠오르지만, 가능하면 새로운 작품을 기획·제작하기보다 배우로서 충실할 생각이다. 올해 말에 연극 '더 드레서' 6개 지방 순회 공연이 예정돼있고, 내년 2월 창작극 '철수와 영희', 이어 6월 신작 무대에도 오를 계획이다.
- 반세기 넘게 활동해 온 선배 예술인으로서, 후배 예술인들에게 전하는 말은.
▶얘기했듯이, 인생을 70년 살아보니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 같다. 돈이나 명예를 가진 이들보다,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제일 행복해보이더라. 청년들이 예술하는 게 너무 힘들고 어려울테지만, 하고 싶은 일이라면 버티고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한 길을 꾸준히 걸어온 내 사진을 보며 위안이나 자극, 꿈을 잃지 않는 힘을 얻길 바란다. 누구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전시가 됐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