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 스기모토의 바다 풍경
히로시 스기모토는 사진으로 시간을 사유한다. 그의 작업은 사진을 넘어 건축, 조경, 철학, 역사학을 가로지르며 인간의 기억과 시간, 그리고 존재의 근원을 탐구한다.
스기모토에게 사진은 눈앞의 현실을 복제하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사라져가는 시간을 붙잡아 하나의 이미지 속에 응결시키는 행위에 가깝다. 그가 사진을 '시간의 화석' 혹은 '시간 기계'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대표 연작 《Seascapes》는 이러한 예술적 사유가 가장 깊고도 순수한 형태로 구현된 작업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 속에서 그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존재의 근원을 탐색한다.
1980년에 시작된 《Seascapes》는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는 북대서양, 지중해, 태평양, 카리브해 등 세계 곳곳의 바다를 찾아다니며 거의 동일한 형식으로 촬영해 왔다. 화면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수평선, 그 위를 채우는 하늘과 아래의 바다. 사진 속에는 인물도, 건축물도, 배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과 공기, 그리고 그 둘이 만나는 경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스기모토는 어린 시절 바다를 바라보며 처음 의식을 갖게 되었던 순간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그는 "선명한 수평선과 구름 없는 하늘, 바로 그곳에서 나의 의식이 시작되었다"고 회고한다. 바다는 그에게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기원을 환기시키는 장소였다. 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인류 진화의 기억이 자신의 혈관 속 어딘가에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Seascapes》의 출발은 이러한 경험과 맞닿아 있다. 어느 날 바다 위로 떠오른 달을 촬영한 뒤, 그는 그 이미지를 뒤집어 바라보다 마치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듯한 감각을 경험했다. 그 순간 인간이 최초로 바라보았을 법한 풍경, 문명 이전의 시간을 사진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Seascapes》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세계 곳곳의 바다를 촬영하면서도 지역적 특성을 의도적으로 제거한다. 사진을 보면 그것이 동해인지, 북해인지, 대서양인지 쉽게 구별할 수 없다. 장소의 차이는 사라지고 바다라는 원형적 풍경만이 남는다. 이러한 반복은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다. 스기모토는 이를 통해 현대인이 잃어버린 시간 감각을 회복하고자 한다.
수만 년 전 최초의 인간이 바라보았던 바다와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바다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문명은 변화하고 제국은 사라졌지만 바다와 하늘의 경계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스기모토는 이 변하지 않는 풍경 속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을 찾고자 했다.
그의 작업 방식 또한 이러한 철학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스기모토는 지금도 8×10 대형 카메라와 전통적인 젤라틴 실버 프린트 기법을 고수한다. 디지털보다 고전적인 암실 작업을 통해 극도로 정교한 흑백 이미지를 제작한다. 특히 긴 노출 시간은 파도의 움직임을 지우고 수면을 하나의 평면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 결과 그의 사진은 구체적인 풍경과 추상회화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게 된다.
사진 속 수평선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도달할 수 없는 경계이자 무한의 상징이다. 하늘과 바다는 만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결코 만날 수 없다. 이 단순한 구조는 과거와 미래, 유한과 무한, 현실과 초월을 동시에 암시한다. 반복되는 수평선은 명상적인 리듬을 형성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과 시간, 그리고 존재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사진 속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건도, 서사도, 인물도 없다. 모든 변화와 움직임이 침묵 속으로 가라앉은 듯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정적 속에서 우리는 시간의 존재를 감지하게 된다. 변화가 제거되고 움직임이 멈춘 순간, 시간은 더 이상 사건의 흐름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로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