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엔 1930년대에 제작된 '경상북도 구룡포시가도'를 담은 대형 안내판이 있다. 하지만 해당 지도가 한자와 일본어로 돼있는 탓에 한자를 모르는 대다수 한국인 관람객은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간다.
최근 한 네이버 블로그에 1930년대 구룡포시가도를 한글로 번역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 블로그 운영자는 대구에 사는 차경환(61) 씨. 6년 전부터 블로그를 운영하며 일제시대 대구경북 등 대한민국 근대사 자료를 수집하고 탐구해온 인물이다.
그는 구룡포 지도에 등장하는 240여 상업시설과 업체 광고 등 모든 텍스트를 한글로 번역했다. 지도에 담긴 40여 컷의 흐릿한 사진의 화질도 선명하게 개선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단순히 번역한 지도 이미지만을 게재하는 것을 넘어, 지도에 등장하는 상점 240여 곳을 업종별로 분류했다. 지도에 광고를 게재한 광고주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도 자료를 찾아 덧붙였다. 이를 통해 당시 시가지가 어떤 모습이었고 주민들의 생활상은 어떠했는지를 그려볼 수 있도록 했다.
지난달 28일 북구 침산동 자택에서 만난 차경환 씨는 지난 6년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단일 게시물 작업으로는 이번 지도 작업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다고 했다. 1주일 동안 식사와 잠자는 것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오롯이 이 작업에 쏟아 부었다고 한다.
그는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방문객 대다수가 한국인이란 점을 감안하면, 원본지도만으로는 당시 사회상을 이해하긴 어렵다"며 "어떤 의도를 갖고 작업을 한 건 아니지만, 언젠가 이 한글판 지도가 일본인 가옥거리에 원본 지도와 함께 게시돼 관람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근대사와 관련한 블로그를 운영할 만큼 전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나.
▶아니다. 역사와 전혀 관련 없는 무역학을 전공했고 2016년까지 대한방직에 근무했다. 퇴직 후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는데, 계기가 있었다.
7, 8년 전쯤 고교 동창을 만난 자리였다.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근현대 역사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와 정치 성향이 다르다보니 목소리가 높아질 정도로 언쟁이 벌어졌다. 친구의 생각이 분명 잘 못 됐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어 무척 답답했다. 논쟁의 주제를 놓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아는 게 없었던 탓이다.
친구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 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지다보니 근대기 대구 사진 10여장을 접하게 됐다. 흥미를 느끼며 또 다른 사진을 찾았고 다양한 자료가 굴비처럼 엮여져 나왔다. 타임머신을 탄 듯 조금씩 대구의 옛 모습을 알아가는 게 재미있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옛날 북성로 사진이 한 컷 올라왔다고 치면 사람들이 '와 신기하다'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었다. 사진에 등장하는 가게 이름은 무엇이고, 주인은 누구였다는 식의 역사가 궁금했다. 다양한 경로로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를 하게 됐고 그게 시작이었다.
-게시물 곳곳에 그동안 접하지 못 했던 새로운 내용이 많다. 자료를 찾아 공부하고 글로 정리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
▶돌이켜보면 그간 살며 경험해온 것들이 많이 도움이 됐다. 사진 찍는 게 취미여선지 초기엔 사진 자료가 주로 눈에 들어왔다. 초기엔 사진을 설명하는 식의 글을 썼다. 사진 한 장으로도 할 이야기가 많았다. 이를테면 이 사진은 언제쯤 촬영한 것이고 사진 속 건물엔 어떤 가게가 있었으며 주인은 누구였다는 식의 설명이다. 지금의 지도를 가져와 사진 속 건물이 있던 위치를 알려주고, 당시 지도와 비교를 덧붙이기도 했다.
이후엔 자연스레 조금 더 깊이 있는 글을 쓰게 됐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던 게 도움이 된 건지 글을 쓰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상당히 이른 시기인 1987년도부터 컴퓨터를 활용했는데, 컴퓨터 생리를 아는 점이 자료 검색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쉽게 설명하자면 '대구'를 검색할 경우 한글 외에도 한자, 영문 표기가 있다. 일본어 발음인 '타이큐'를 한글이나 영문, 일본어로 검색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또 다른 키워드를 조합하면 다양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자료를 검색하다 '심봤다'를 외칠 때도 있다. 우연히 찾아들어간 사이트에, 원하던 자료 외에도 참고할만한 귀한 자료가 많을 때면 정말 흥분이 된다. 끼니를 거르거나 잠자는 걸 잊을 정도다. 그밖에 단행본이나 국내외 논문 등도 즐겨 보는데 주로 교차검증 등에 활용한다.
-블로그 게시글 수가 엄청나다.
▶지난 6년 동안 '역사' 항목에 올린 글만 1천80여건이다. 게시글 하나 당 텍스트 분량은 원고지 20~30매쯤 된다. 평균 2~3일에 1건 정도씩 올리는 것 같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식사와 잠자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엔 거의 '이 일'을 하는 것 같다. 때론 48시간을 연달아 일한 뒤 쓰러져 자기도 한다. 밤낮이 없다고 보면 된다. 오늘도 오전 8시가 되는 걸 보고 잠자리에 들어 3시간 정도 자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거다.
-이렇게 노력해 얻은 자료를 많은 이들과 공유한다. 아깝지는 않나.
▶사실 몇몇 지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귀한 자료를 왜 푸냐.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귀한 줄 모른다"고. 하지만 제 생각은 다르다. 사람들이 귀한 줄 알건 모르건 간에, 우선 많은 이들이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이게 또 뭐라고, 만약 제가 컴퓨터에다가 이 글과 사진자료를 끌어안고 있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가끔씩 블로그 게시글 아래에 '선생님 이거 퍼 가도 될까요'란 댓글이 달린다. 그럴 때면 전 '마음껏 퍼 가시라. 편하게 가져가시라고 만든 블로그'라는 답글을 달아준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것도 '나 혼자만 아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공유를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가끔씩 연구자들이 자료 요청을 해오면 도움을 주고, 드라마 자문 요청에 응하는 것도 같은 의미다. 조금이나마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대부분 게시글 말미에 주제와 관련한 개인적 의견을 적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을 법도 하다.
▶예를 들면 일본 국경수비대를 다루면서 만주‧몽골 국경지대에서 활동하던 항일독립군이 점차 비적(匪賊)화됐다고 서술한 적이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독립군을 무결하고 신성한 존재로 기억하는 통념과는 크게 어긋나는 서술이지만, 외부의 정상적인 보급이나 재정적 지원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 처한 당시 독립군의 현실과 사료를 고려하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곤 글 말미엔 이렇게 적었다.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위대한 독립군'의 모습은 해방 이후 정권의 정치적 선전과 후대의 역사적 재구성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며, 당시 국경지대 주민이 피부로 느꼈던 혹독한 체감 현실과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이런 류의 의견엔 늘 악성 댓글이 따라다닌다.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제 주장을 비판한다면 인정한다. 하지만 때론 모욕적인 욕설이 담긴 댓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이럴 때면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을 이어가는 이유는 뭔가.
▶국민 대다수의 역사관 현주소를 보며 실망할 때가 많았다. 과도한 민족주의적 시각이 올바른 역사적 검증을 가로막고 사고의 자유를 억압하고 단속한다는 점에서다. 역사는 단순히 좋고 싫음의 감정을 투사하는 장이 아니다. 그렇기에 견강부회(牽強附會)는 역사 인식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부분이다. 진실이 때론 냉혹하고 붎편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마주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견해다. '진실을 남기자'는 생각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사회에 보탬이 될 것으로 믿는다.
블로그 상단에 이런 문구를 적어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그러나 팔이 안으로 굽은 채 펴지지 않는다면 그건 바로 장애다. 우리는 굳어져서 펴지지 않던 팔을 우리 의지로 다시 펼 수 있다. 그러면 굽은 팔로는 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저의 다짐이자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