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최근 국립대학이 조교수 승진과 업적평가 기준을 둘러싸고 혼란스럽다. 세계대학평가에서 국제학술지 논문 실적이 핵심 지표로 부상하면서, 교육부의 대학정책은 연구경쟁 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한국이 자주 비교 대상으로 삼는 일본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국립대학은 한국처럼 획일적인 국제학술지 중심의 승진 체계를 강하게 적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구 분야에 따라서는 장기간 연구나 학문 공동체 내부의 평가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기도 한다.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평가를 운영함에도 불구하고, 노벨상 수상자는 일본에서 꾸준히 배출된다. 반면 더 치열한 논문 경쟁과 성과 평가 체계를 갖춘 한국은 세계적 학문 성과의 상징적 결실에서 여전히 뒤처져 있다. 왜 이런 역설이 나타나는가.
그 답은 '시간의 축적'에 있다. 일본은 전후 복구 과정부터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장기 투자를 지속해 왔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은 수십 년 간의 축적의 성과물이다.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학문 생태계가 존재했고, 실패 가능성이 높은 연구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반면 한국은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압축적으로 추진하면서 대학 역시 단기간 성과 중심 구조 속에서 성장해 왔다. 연구는 경제성장 전략과 밀접하게 연결되었고, 빠른 성과와 실용성이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기초과학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 역시 상대적으로 늦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설립된 것은 2011년이고, 과학 분야 재정 투자의 본격적 확대는 1990년대 후반에야 가능했다. 일본과 비교하면 연구 생태계 자체의 축적 시간이 훨씬 짧은 셈이다.
따라서 차이는 연구자의 역량 차이가 아니다. 한국 연구자들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의 연구 생산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논문 수와 피인용 지표에서 한국 대학들은 빠르게 성장해 왔다. 문제는 연구자의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연구하게 만드는 구조에 있다.
현재 한국 대학의 연구 체계는 짧은 주기의 성과 경쟁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다. 교수들은 승진과 재임용, 대학평가를 위해 지속적으로 논문 실적을 생산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실패 가능성이 높은 장기 연구보다는 비교적 안전하고 빠르게 결과를 낼 수 있는 연구가 선호된다. 연구의 깊이보다 속도가, 질문의 독창성보다 효율성이 우선되는 구조다.
그러나 노벨상급 연구는 대부분 장기간 축적된 실패와 탐구의 결과로 탄생한다. 오랜 시간 한 질문을 붙들고 씨름해 온 연구자들에게서 나온다. 결국 대학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연구자에게 허락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일본 대학들이 완벽한 모델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성과 압박에서 벗어나 장기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해 왔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교육부의 획일화된 평가 틀과 그 결과에 따른 대학지원사업 선정 구조에 있다. 모든 분야를 동일한 논문 지표로 평가함으로써 학문의 다양성은 훼손되고, 인문·사회·예술 분야는 이공계 중심의 정량평가 체계 속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대학이 산업인력 양성과 취업 성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기초학문과 장기 탐구의 기반은 더욱 협소해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의 모순은 지역대학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학령인구 감소와 재정 압박 속에서 지역대학은 단기 실적 경쟁에 더 강하게 내몰리고 있다. 지역혁신과 균형발전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대학이 새로운 지식과 문화를 축적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국립대학의 재원과 직결된 정부 지원사업이 단기적 시계(視界)의 산업과 취업 중심으로 설계되는 한, 사회가 아직 질문하지 못한 문제를 탐구하고 새로운 지식과 가치를 쌓아가는 대학 본연의 역할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세계적 대학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수한 연구자는 관리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줄 때 성장한다. 실패할 자유, 긴 탐구의 시간, 그리고 단기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 연구를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지금 국립대학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평가가 아니라, 더 긴 호흡의 연구를 가능케 하는 구조다. 교육부가 바꿔야 할 것은 평가 지표가 아니라, 대학을 바라보는 시각 그 자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