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욱의 대구문화 오디세이] 이름 속에 숨은 이야기, 대구 지명의 기억

입력 2026-05-31 1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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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장군상. 대구시 제공
신숭겸장군상. 대구시 제공

도시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와 기억이 켜켜이 쌓인 하나의 서사다. 그리고 그 서사의 가장 일상적인 흔적이 바로 '지명'이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이름이 있듯, 도시의 골목과 마을 곳곳의 지명 또한 고유한 뜻이 담겨 있다. 그 지명에는 시대의 흔적과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녹아 있다.

대구에는 인구 약 240만 대도시에 걸맞게 지역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이들은 단순한 위치 표기를 넘어, 역사적 사건과 전설, 그리고 인간적인 감정까지 담아내는 지명들이다. 우리가 살아온 지역에 주민들의 지난한 역사적 흔적과 기억 속에서 흥미로운 이름을 가진 다양한 공간들이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칠성바위. 대구시 제공
칠성바위. 대구시 제공

'공평동'(公平洞)은 '공평함'이라는 가치가 지명으로 남은 사례다. 예전 공평동에는 대구지방법원이 있었다. 법원에서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한다는 뜻으로 공평동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법 앞에 평등하고 공평한 세상에 대한 시민의 바람이 이름에 담겨 있다.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희망과 염원이 담긴 지명이라 할 수 있다.

'지묘동'(智妙洞)은 역사와 전설이 만나는 지명이다. 지묘동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과 관련한 일화를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 지묘동은 후삼국 격전의 중심지였던 팔공산 공산전투에서 왕건이 견훤에게 패하여 곤경에 처했을 때 지혜롭고 묘한 지략으로 왕건을 탈출시킨 신숭겸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다. 왕건은 신숭겸이 전사했던 장소에 그 충절과 넋을 기리기 위해 지묘사(智妙寺)를 세웠다. 지묘동이라는 지명은 이 지묘사가 있던 동네에서 유래했다. 오늘날 지묘동에는 신숭겸 장군 유적지와 왕건이 올랐다는 왕산 등이 남아 있어, 지명 자체가 하나의 역사 교과서가 되고 있다.

인각사. 군위군청 제공
인각사. 군위군청 제공

'대명동'(大明洞)의 유래는 조금 더 인간적인 스토리가 있다. 대명동은 임진왜란 때에 참전했다가 조선에 귀화한 명나라 장군이자 풍수지리 전문가인 두사충(杜師忠)의 타향살이로 인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지명이다. 당나라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후손인 두사충은 풍수지리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작전참모장이었다. 두사충이 조선에 귀화한 후 정착한 곳이 바로 대구였는데, 그는 머나먼 타국 땅에서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매우 그리워했다. 두사충은 앞산 밑에 거처를 정하고 명나라를 생각하며 대명단(大明壇)을 세웠다. 대명동은 바로 이 대명단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대명동이라 불리게 되었다.

북구에는 선사시대 유물에서 기인한 '칠성동'(七星洞)이 있다. 칠성동은 이 지역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인 칠성바위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칠성바위는 대구 지하철 대구역 4번 출구 앞 역사광장에 있다. 칠성동은 바로 이 깊은 시간의 층위를 가진 고인돌, 칠성바위가 있는 동네라고 해서 칠성동으로 명명되었다.

구라리. 한국관광공사 제공
구라리. 한국관광공사 제공

발음하기가 어렵고 어감도 좋지 않아 지명을 바꾼 경우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손처눌(孫處訥)이 개척한 마을인 '황금동(黃金洞)'이 바로 그에 해당하는 경우다. 이 마을은 원래 들판에 곡식이 황금빛이고 산에는 푸른나무가 울창하여 황청동(黃靑洞)이라 불렸다. 그러나 황청동은 발음도 어렵고, 또 저승을 뜻하는 '황천'이란 말과 비슷해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현재의 황금동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황금동에는 시민들의 모금운동을 통해 세워진 어린이 복합문화공간인 어린이세상(구 어린이회관)이 있다. 비슷한 경우로 호산동(虎山洞)이 있다. 호산동의 원래 이름은 파산동(巴山洞)이었다. 주민들이 '파산(巴山)'이라는 어감이 좋지 않고 부정적 연상을 주어서 범 '호(虎)' 자를 사용하여 호산동으로 개칭하였다. 이는 지명이 단순히 과거부터 있어 온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인식과 감각에 따라 재창조되는 살아 있는 용어임을 나타낸다.

육신사. 달성군청 제공
육신사. 달성군청 제공

군위군 '삼국유사면'(三國遺事面)은 배달 민족의 근원을 밝힌 '삼국유사'의 산실이다. 삼국유사는 단군신화를 비롯한 많은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 우리 민족의 보물이다. 삼국유사면에는 바로 이 삼국유사가 편찬된 인각사가 위치해 있다. 2021년 1월 1일, 삼국유사의 정체성을 살리고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주민투표를 통해 고로면에서 삼국유사면으로 개칭했다.

간혹 지명은 오해를 낳기도 한다. 달성군 화원읍에는 '구라리'(九羅里)가 있다. '구라'는 거짓말이나 허풍 등을 뜻하는 말로, 구라리라는 마을 이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오해하여 웃음을 만들기 쉽지만, 실제로는 '경치가 아주 좋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과거 신라 경덕왕(景德王)은 구라리 지역 경치에 매료되어 아홉 번이나 찾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너무 아름다운 경치에 왕이 아홉 번이나 찾아와 마을이 빛났으므로 아홉 구(九) 자와 빛날 라(羅) 자를 써서 구라리가 되었다. 구라리라는 특이한 마을 이름으로 인해 ​지역 명칭을 변경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나름대로 깊은 사연을 안고 있고, 지역 주민들이 오랜 시간 동안 애착을 갖고 불러온 이름이라 개칭하지 않았다. 외지인에게는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현지 주민에게는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지명이기에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지형적 특징이나 일화, 또는 꿈과 같은 상징적 사건에서 유래된 지명이 있다. 달성군 하빈면 '묘리'(竗里)는 이 지역의 형태가 묘하게 생겨 묘할 묘(竗) 자와 마을 리(里) 자를 써서 붙여진 지명이다. 묘리는 사육신 중 한 분인 박팽년 후손들의 세거지로 유명하다. 단종 복위 운동을 전개하다가 숨진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육신사가 하빈면 묘리에 있다.

또 동구 도학동에는 '빈대골'이 있다. 빈대골은 팔공산의 대표 사찰인 동화사를 통하는 등산객들이 주로 지나다니는 길목에 있다. 빈대골의 명칭은 빈대가 너무 많아 불태워 없앤 빈대 절터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그리고 동구 혁신도시 내에는 저수지 '나불지'가 있다. '나불'이라는 말은 '입을 가볍게 나불대다'라든지 '나뭇잎이 나불거리다'라는 말이 생각나 웃음을 만들기도 한다. 나불지는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 물레방아와 전통담장이 있고, 나무데크가 잘 구축된 산책 명소이다.

또 수성구 매호동 넓은 들판 가운데에 있는 저수지 '구천지(狗泉池)'가 있었다. 구천지 못을 최초 조성할 때, 개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고 하여 개 구(狗) 자와, 샘 천(泉) 자를 따서 구천지가 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사람이 운명한 후 넋이 돌아가는 곳을 뜻하는 용어인 '구천'을 연상시키고 '구천을 떠돈다'라는 으스스한 어감으로 인해 구천지 이름은 '매호지'(梅湖池)로 변경되었다.

국토지리정보원이 전국의 지명 10만여 개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지명이 대구에 있다. 바로 아홉 글자로 이뤄진 고유어 '옥낭각씨베짜는바위'이다. 옥낭각씨베짜는바위는 대구 달성군 가창면 주암산에 있는 바위 이름이다. 옥낭각시가 넓은 바위 위에서 베를 짜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이처럼 지명은 단순한 표기가 아니라, 축적된 서사이다. 대구지역에는 뜻깊은 의미와 재미있는 어감을 가진 독특한 지명이 곳곳에 분포해 있다. 별 의미 없이 부르며 살아가는 지명이지만 그 유래를 되새겨 보면, 그 안에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시간의 기억과 흔적이 감겨 있다. 현재에도 고유한 지명은 그 나이테를 축적해가면서, 저마다의 특성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