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 교수
지방선거가 끝났다. 거리 곳곳엔 당선사례 현수막이 내걸리고, 언론은 선거 결과에 따른 정국 향배를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선거에 온통 관심이 쏠린 사이에 호국보훈의 달 6월이 시작됐고 6일 현충일이 다가왔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 의미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까. 과연 얼마나 많은 가정이 조기를 게양하고, 저마다 일상생활 속에 오전 10시 사이렌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춘 채 묵념할까. 누군가 목숨으로 지켜낸 하루가 어느새 또 하나의 쉬는 날처럼 다가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물론 시대는 변했고 세대 문화도 달라졌다. 전쟁의 고통을 직접 겪은 세대가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희생의 기억 역시 우리 일상에서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세대 변화에 있는 게 아니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바친 분들에 대한 존중과 예우가 퇴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우리 사회 일각에 안보를 낡은 담론처럼 여기거나 국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마저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점차 자리 잡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가 1956년 4월 25일 6·25전쟁 참전용사를 비롯해 국가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들을 추모하자는 취지에서 현충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한 지 올해로 71주년을 맞는다. 6월 초가 절기상 곡식을 뿌리기에 좋은 시기인 '망종(芒種)'으로, 옛날부터 풍년을 기원하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어 여기에 6·25의 비극과 희생을 되새기는 의미가 더해지며 6월 6일이 현충일로 정해졌다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이후 1963년에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하고 각종 추모 행사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강산이 일곱 번이나 바뀌었지만 현충일과 호국보훈의 의미를 단순한 과거의 회상으로만 남겨두기엔 대한민국의 안보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현재진행형이며, 국제질서와 동북아 안보 환경은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지역 분쟁은 평화가 결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은 당연하게 주어진 게 아니다.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젊은이가 미래를 꿈꾸며 살아갈 수 있는 것도 결국 누군가 자신의 청춘과 생명을 내놓아 지켜낸 결과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호국영령의 희생 위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은 특정 정권이나 이념을 위해 희생한 게 아니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자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현충일과 호국보훈의 의미마저 정치와 진영 논리 속에서 소비되며, 때로는 갈등의 소재처럼 다뤄지고 있다. 어느 정부는 안보와 호국정신을 강조하고, 또 다른 정부는 평화와 화해 담론에 무게를 둔다. 정책 방향은 달라질 수 있지만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추모와 예우까지 정치적 해석의 대상이 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대립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 기반 자체를 흔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해외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는 정부가 바뀌어도 그 의미는 흔들리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전몰장병에 대한 예우는 초당적 가치로 존중된다. 워싱턴 D.C. 알링턴 국립묘지의 '무명용사의 묘'를 지키는 의장병은 폭설과 폭우 속에서도 24시간 경계를 멈추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의전이 아니라 "국가는 희생을 결단코 잊지 않는다"는 상징적 메시지다.
이스라엘 또한 마찬가지다. 전몰장병 추모일인 '욤 하지카론(Yom HaZikaron)'에 사이렌이 울리면 고속도로 위의 차량까지 멈춰 서고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고개를 숙인다. 2천 년 가까이 나라 없는 설움을 겪어야 했던 그들에겐 조국을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추모는 공동체 존립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점점 기억보다 망각에 익숙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동체는 결국 무엇을 함께 기억하느냐로 유지된다. 곧 울려 퍼질 현충일 사이렌의 1분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희생 위에 존재하고 있음을 되새기며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잊지 않겠다는 우리 공동체의 최소한의 기억이자 양심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