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노인들의 행렬…누가 그들에게 밥을 줄 것인가

입력 2026-05-25 15:44:14 수정 2026-05-25 15: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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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굶고 복지관 줄 섰다"…대구 노인빈곤의 민낯
대구시장 토론회선 실종된 빈곤 문제…누가 끼니 책임지나

지난 21일 방문한 대구 중구 한 그냥드림 참여 사업장 한 편에는 그냥드림 물품이 담긴 가방이 늘어서 있었다. 마스크를 쓴 대상자가 물품 제공과 상담을 도울 사회복지사를 기다리는 모습. 김지효 기자
지난 21일 방문한 대구 중구 한 그냥드림 참여 사업장 한 편에는 그냥드림 물품이 담긴 가방이 늘어서 있었다. 마스크를 쓴 대상자가 물품 제공과 상담을 도울 사회복지사를 기다리는 모습. 김지효 기자

"여기 오면 음식을 좀 준다던데…."

지난 22일 오후 2시반쯤 대구 중구 만나푸드마켓 앞으로 노인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채 30분도 되지 않아 줄은 수 m까지 길어졌다. 노인들의 손에는 신분증과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몇몇 노인들은 망설이는 표정으로 '그냥드림, 먹거리 무료 지원'이라고 적힌 배너 앞을 서성거리다가 발길을 돌렸다.

이름과 연락처, 생활 형편 등을 적는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작성하자 식료품 꾸러미가 건네졌다. 봉지 안에는 김과 라면, 즉석밥, 레토르트 식품이 담겨 있었다. 2만원 상당의 물품이었다. 꾸러미를 받아든 노인들의 얼굴에는 안도의 기색이 스쳤다.

◆"사흘 동안 한끼도 못 먹어"…살기 위해 공짜 음식 받는 사람들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 대구지역 '그냥드림' 사업장을 찾는 노인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끼니를 해결하지 못해 복지관 문을 두드리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남구 봉덕동 늘해랑푸드마켓에서 만난 최숙희(가명·80) 씨는 "입소문 듣고 알게 돼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며 "자식들도 자기 먹고 살기 바쁜데 여기서 음식을 받아가면 열흘 정도는 밥 걱정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병원에 갈 돈조차 없는 노인들에게 '먹는 일'은 생존과 직결된다. 한 노인은 "사흘 동안 제대로 못 먹었는데 음식을 줘서 정말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마지막 식사는 쉰밥과 오래된 조미김 몇 장이었다.

그냥드림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에게 식료품과 생필품을 긴급 지원하는 사업이다. 첫 방문 때는 지원 대상 여부를 확인하는 자가진단표를 작성하고 물품을 받을 수 있다. 이후에는 상담 절차를 거친다. 위기 징후가 확인되면 복지 서비스와 연계된다. 한 사람당 최대 3번까지 이용 가능하다. 현재 대구에서는 9개 구군 18곳에서 그냥드림 사업장이 운영 중이다.

사업장을 찾는 이들 대부분은 독거노인이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실직 상태인 경우가 많다. 한 시간 가까이 걸어서 오는 사람도 있었다. 최근의 가파른 물가 상승은 이들이 식료품 꾸러미 하나를 받기 위해 복지관 문을 두드리게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했다. 외식 물가는 더 가파르게 올랐다. 같은 기간 자장면 가격은 1년 전보다 3.1% 상승했고 김밥은 4.9%, 칼국수는 4.4% 올랐다. 가난한 노인들에게는 외식 한 끼조차 큰 부담이다.

그래서 그냥드림 현장은 운영 전부터 줄이 늘어선다. 실제 취재한 대구지역 사업장 5곳 대부분에는 운영 시간 전부터 적게는 서너 명, 많게는 10여 명의 대기 인원이 몰려 있었다. 남산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는 "보통 30분 전이면 대기줄이 길게 선다. 특히 월초가 그렇다"며 "처음 오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사업 초기보다 이용자가 훨씬 늘었다. 복지관 이용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대구지역 그냥드림 사업 이용자는 4개월간 1만3천913명에 달했다. 이달 기준 이용자는 1만6천명을 넘어섰다.

대구 동구 한 그냥드림 사업장에서 대상자들에게 나눠주는 물품 모습. 김지효 기자
대구 동구 한 그냥드림 사업장에서 대상자들에게 나눠주는 물품 모습. 김지효 기자

◆"반빈곤 정책은 늘 후순위"…그냥드림 이용자가 차기 대구시장에게 바라는 것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줄을 선 노인들의 입에서도 선거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나 분위기는 냉담했다. 대부분은 "누가 되든 먹고 사는 건 똑같다"라며 후보들의 공약이 자신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매일신문이 21~22일 대구지역 그냥드림 사업장 5곳 이용자 19명을 상대로 차기 대구시장에게 바라는 정책을 물은 결과, 무료 급식 확대 등 현물 지원 요구가 8명(42.1%)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노인 일자리 확대(4명), 의료 지원 확대(2명), 청년 일자리 확대(2명) 등이 뒤를 이었다. 고독사 예방 사업·간병 지원·선별적 복지 등을 확대해 달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끼를 걱정하는 노인들은 거창한 개발 공약보다 당장 체감할 수 있는 생계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경숙(가명·83) 씨는 "20만원 남짓한 수급비도 병원비와 약값으로 대부분 빠져나간다"며 "혈압과 당뇨 같은 만성질환을 달고 사는데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돈이 들 게 뻔하다. 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이 이런 노인들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공약을 내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노인들은 "한 끼라도 더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일해서 용돈을 벌고 싶다" "가족이 중증환자인데 간병비를 내고나면 집안이 거덜 난다" 등의 반응을 내놨다.

대구의 노인 빈곤 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대구 노인 인구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일반수급자 비율은 12.8%로 전국 평균(10.7%)보다 높았다. 2023년 기준 대구 노인 가구의 연간 총소득은 3천108만원으로 전국 평균보다 361만원 적었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둔 대구 정치권에서 노인 빈곤 문제는 중심 의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냥드림 이용자들을 만난 22일 열린 대구시장 후보 TV토론회에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는 대구경북신공항과 행정통합 문제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1시간가량 이어진 토론에서 노인 빈곤과 돌봄 문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들이 내세운 공약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까지 공개된 대구시장 후보들의 5대 공약 가운데 노인 빈곤과 반빈곤 정책은 사실상 보이지 않는다. 김 후보가 노인 일자리 확대 등을 언급했지만 기존 사업을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제시되지 않았다.

서창호 대구반빈곤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대구시장 선거에서 반빈곤 정책은 늘 후순위였다"며 "후보들은 토건 공약은 앞다퉈 내세우면서도 무료 생필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빈곤층의 삶을 어떻게 지탱할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여야 대구시장 후보 3명은 26일 오후 10시 55분 TV토론회에 참석해 대구의 미래를 두고 격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들 가운데 누가 가난한 노인들의 끼니를 책임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