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읽남] 우리 동네 사람들 1집 '하나'

입력 2026-06-12 12: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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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사람들 1집
우리 동네 사람들 1집 '하나'(1994) 앨범 커버

우리 동네 사람들의 1집 앨범이자 유일한 앨범 '하나'(1994)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보석처럼 숨겨져 있는 음반이다.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건 아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묘한 감칠맛을 내는 작품이다. 지난 20세기 한국인의 정서와 진하게 결합해 시대를 풍미한 포크를 바탕에 두면서도, 보사노바와 재즈의 리듬, 그리고 코러스의 재치가 자연스럽게 버무러져 있다. 기타는 가볍게 흐르면서도 중심을 잡고, 리듬은 분주히 살랑이며, 젊은 구성원들의 목소리는 앨범 커버에도 그려져 있는 동네 골목 풍경처럼 푸근히 포개어진다.

지난 2004년 9월 17일 KBS
지난 2004년 9월 17일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해 '야!'를 연주하고 있는 '우리 동네 사람들'의 강승원. Again 가요톱10 : KBS KPOP Classic 유튜브 캡처, AI로 보정
지난 2004년 9월 17일 KBS
지난 2004년 9월 17일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해 '야!'를 연주하고 있는 '우리 동네 사람들'. Again 가요톱10 : KBS KPOP Classic 유튜브 캡처, AI로 보정
지난 2004년 9월 17일 KBS
지난 2004년 9월 17일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해 '야!'를 연주하고 있는 '우리 동네 사람들'. Again 가요톱10 : KBS KPOP Classic 유튜브 캡처, AI로 보정

◆강승원이 만든 음악 동네

이 앨범을 총괄하고 조율한 강승원이라는 이름 세 글자로 글을 시작해야 한다. 그는 훗날 김광석의 대표곡이 된 '서른 즈음에'를 만든 싱어송라이터다.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79학번 출신인 강승원은 모교 창작곡 동아리 '에밀레'에서 활동한 걸 시작으로 뮤지션의 길을 걷고 있다. 또한 KBS 2TV 간판 심야 음악 프로그램(현재 '더 시즌즈')의 음악감독으로도 오랜 기간 활동해왔다. 1992~94년 KBS에서 노영심이 진행하던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에 참여한 게 출발점이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강승원을 중심으로 유준열(동물원 멤버), 심재경(에밀레 출신, 2014년 고향 경북 안동을 배경으로 한 1집 '낙동연가' 발표), 김은조, 고은희, 김혜연(에밀레 출신이자 아내) 등이 함께한 음악 공동체였다. 이름만 봐도 거창한 밴드나 기획형 그룹과 거리가 멀다. 팀명 그대로 비슷한 결을 가진 이웃 음악인들이 모여 자신들의 생활과 감정을 노래했다.

그래서 이 앨범은 힘을 과시하는 음반이 아니다. 오히려 힘을 빼서 오래 남는듯하다. '뜸드 뜸드' '미안해' '지금의 내 나이'는 딱 요즘 늦봄과 초여름 사이 그늘 밑에 앉아 듣기 좋은 곡들이다. 평온하지만 심심하지 않고, 담백하지만 밋밋하지 않다. 슬픔인지 권태인지 알 수 없는 갱년기 같은 일상, 잊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놓은 미안함의 감정, 나이듦에 대한 알딸딸한 소회 등의 주제는 일기 낭독회마냥 정감을 풍긴다.

우리 동네 사람들 1집
우리 동네 사람들 1집 '하나'(1994) 음반

◆'서른 즈음에'의 또다른 출발점

이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김광석 하면 떠올리는 곡이기도 한 '서른 즈음에'다. 강승원이 작사·작곡했고, 우리 동네 사람들이 먼저 불렀다. 다만, 김광석이 곡을 받아 4집에 수록해 반년 먼저 발표하면서(김광석 4집은 1994년 6월, 우리 동네 사람들 1집은 같은 해 12월 발표) 대중에겐 김광석의 노래로 깊이 각인돼 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독백의 뉘앙스라면, 우리 동네 사람들 버전은 좀 더 공동체적이다. 다시 말해 혼자 늙어가는 노래라기보단, 계절의 흐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로 들린다. 그 차이가 이 앨범의 성격도 잘 드러낸다.

타이틀곡인 셈인 '야!'도 강승원의 작품이다. 동네 동산에 올라 곡 제목처럼 소리친다는 특별할 것 없는 가사의 노래지만, 잔잔한 바다 같은 앨범에서 마치 물 위로 거듭해 솟구치며 인사를 건네는 고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부드럽게 시작하지만 반복되는 브릿지와 후렴구에서 감정을 확 분출하는 롤러코스터스러운 특징이다. 웬만한 록 장르의 격정 못잖다. 겉은 느슨해 보이지만 속은 치밀하고 단단한 전개를 설계한, 외유내강의 노래다. 이 앨범이 단순한 포크 음반에 머물지 않는 이유를 보여준다.

지난 2023년 5월 9일 KBS 2TV
지난 2023년 5월 9일 KBS 2TV '더 시즌즈' 시즌2 '최정훈의 밤의 공원' 간담회에 참석한 강승원 음악감독. KBS

◆웰컴 투 강승원 월드

강승원은 음악이 등장하는 골목(우리 동네 사람들)이든 무대(음악 프로그램)든 그 바탕을 만드는데 집중해온 음악인이다. '서른 즈음에'의 작가였고, 초코파이 CM송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로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린 음악 마케터였으며,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거쳐 현재 방송 중인 더 시즌즈 시즌9 '성시경의 고막남친'까지 계보가 이어지는 KBS 심야 음악 프로그램의 베테랑 선장이다. 마침 그는 지난 5월 8일 제6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더 시즌즈 음악감독으로 보여준 성과를 인정받아 방송부문 예술상을 수상했다.

이 앨범은 강승원이라는 음악인, 다시 말해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감독인 그의 세계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보여주는 초기 설계도로도 읽을 수 있다. 초기작부터 범상치 않았다. 비록 시끄럽게 시대를 대표하진 못했지만, 누군가에겐 오래도록 그늘 아래 휴식처럼 남을 음반이다. 그가 음악감독을 맡은 더 시즌즈 역시 수많은 현대인의 심야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