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각 40표씩 동률, 고령자 우선 룰 적용
예총에서만 40년,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어
6,171일 함께 산 남편, 아직도 맘 속에 동행
"대구의 문화 저력,이제부터 재도약입니다."
지난 2월 26일 치러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대구시연합회(이하 한국예총 대구연합회) 회장 선거에서 당시 강정선 대구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수석부회장은 이치우 전 대구음악협회장과의 1,2차 투표에서 40대 40으로 동수가 나오면서 연장자 우선 규정에 따라 13대 회장으로 당선됐다.
그리고 지난달 14일 (사)대구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대구예총) 정기총회에서도 제2대 대구예총 회장으로 선출됐다. 강 회장은 취임사에서 "박빙의 선거 결과였던 만큼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선배 세대의 연륜과 후배 세대의 혁신적인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통합의 조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제13대 대구예총 회장 자리에 선출된 강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다시 한번 대구 문화예술의 재도약을 선언하고, 문화예술인의 화합을 당부했다. 더불어 코로나 팬데믹과 문화 암흑기(전 시장 시절 예산삭감과 인력 통폐합)를 지나서, 6·3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될 차기 대구시장과 함께 문화 재도약에 나설 채비를 마쳤다.
◆역대 첫 女회장 "준비된 예총 회장"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었습니다. 예총 안에서 경력만 40년, 역대 회장 일곱 분을 모셨습니다."
대구예총은 열 세번째만에 첫 여성 회장을 탄생시켰다. 충분히 준비된 '관록의 회장'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예총 안에서 탄탄하게 밟아, 수장 자리까지 꿰찼다. 이사만 30년, 무용협회장 12년, 부회장 16년, 수석 부회장 6년을 지냈다. 그런 만큼 예총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반목, 잘한 일과 못한 것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온화하지만 강단있는 성격(부드러운 카리스마)의 강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3가지를 약속했다. 첫째로 관 주도에서 시민 및 지역 예술인 주도로의 완벽한 전환, 둘째, 각 축제만의 독창적인 브랜드화, 셋째로 지속 가능한 축제 생태계 구축을 들었다. 그는 "축제는 단순히 며칠 동안 먹고 즐기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도시의 가치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문화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차기 대구시장 유력 두 후보(김부겸 VS 추경호)와는 이미 차담 형식의 만남을 통해, 차기 대구 문화예술의 재도약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을 약속받았다. '누구의 정책이 더 파격적이고 마음에 들었느냐'는 기자의 유도 질문에는 "누구를 바보로 아느냐? 아직은 말할 수 없어요"라며 수줍은 소녀의 미소로 되받았다.
◆"울 남편, 아직 제 곁에 있나봐요"
"6,171일"(결혼 후 남편과 함께 한 행복한 나날들)
인터뷰 도중에 울컥하며 들은 것은 24년 기자 생활 중 처음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사별(死別)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전 세계인을 울린 명화 '사랑과 영혼'(데미 무어,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의 현실판이었다. 남편은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03년에 급성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했지만, 여전히 강 회장의 마음 속에 동행하고 있었다.
"'God, Why me?'(신이시여! 왜, 다른 사람도 아닌 나에게 이리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주나이까?) 너무 많이 울었어요.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구요. 4개월 반 동안 24시간 병간호를 하고, 장례 후 6개월 동안 두문불출했어요. 너무 애가 닳고, 그토록 날 아끼고 사랑했던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낼 수가 없었어요."
그런 슬픔 속에 침잠하던 강 회장을 깨운 건 바로 중2 아들이었다. 어느 날, 아들이 눈에 쏙 들어왔다. 놀랍게도 중학생 아들은 더 어른스럽게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우려 노력하고 있었다. 동네 마트를 가더라도 늘 어머니의 팔짱을 끼고 다니고, 외로울 틈을 주지 않았다. 배구선수였던 그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 현재 항공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스튜디어스 며느리가 집안에 들어왔다. 하늘이 준 소중한 선물, 손자도 얻었다.
〈〈 Special Thanks 〉〉 남편 병수발 당시 동산병원 황재석 담당 의사에게 눈물나도록 감사합니다. 제주도에서 우리 아들이 선수로 참가했던 배구장을 찾아가, 책 선물과 함께 용돈(봉투)까지 주시고 격려해 주셨어요. 사별 후 제 취업자리까지 알아봐 주시려 했죠?(ㅎㅎㅎ)
◆"저도 한때 아리따운 무용수 출신"
강 회장은 1956년에 대구에서 태어났다. 현재 덩치로는 믿기지 않겠지만 어릴 적 별명은 '성냥개비'. 몸이 허약해서 시작한 것이 무용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세에 무용계에 입문해 무려 63년의 세월 동안 한 길을 걸어왔다. 경북여고 46회 졸업생이자 세종대 무용학과 75학번이다.
대학 졸업 후에는 10년 동안 경산여중·고 교사를 역임하고, '강정선 무용학원'을 문을 열었다. 지역에서는 꽤나 명성이 높았으며, 수익도 넉넉할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몰려 들었다. 그러면서 일찍이 대구무용협회에 발을 들여 놓았으며, 지역 무용계를 이끌어가는 선두주자 역할을 했다. 그는 지금도 당당하게 "무용은 나의 운명"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감명깊게 본 책이나 영화가 없냐'는 질문에는 "무용 무대만 보러 다닌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어릴 적부터 긍정적인 마인드로 무장한 강 회장은 "지금부터 대구 문화예술은 호기(好氣)를 맞았다"며 "코로나19, 문화예산 대폭 삭감 등 문화 암흑기를 다들 잘 견뎌줬다. 더이상 악화될 일은 없다. 새로운 대구 문화 르네상스를 꽃피우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의 예총회장 행보(임기 4년, 연임 가능)에서 사심(私心)은 1도 없다. 그는 문곤(5,6대)→권정호(7대)→최영은(8대)→문무학(9대)→류형우(10대)→김종성(11대)→이창환(12대) 역대 회장단을 이어 멋진 여성 리더십을 보여줄 것을 약속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