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 출신 문형진 하나證 PB…"선제 투자로 엔비디아 55배 수익"[진격의프라이빗뱅커]

입력 2026-05-22 11: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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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운용서 해외주식 전문 PB로…글로벌 자산배분 중심 방점
작년 美주식 수익률 71%…S&P500 대비 40% 초과 달성
2019년 엔비디아 투자한 4000만원이 20억원으로

하나증권 용산WM센터 문형진 차장(사진)의 투자 아이디어는 증권사 리포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문형진 차장이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은 기술을 파고드는 '숨은 고수'들이다. 박사 출신 현직 기업 연구기술자, 변리사 등과의 토론이 그의 투자 판단의 출발점이다. 박사급 연구자들과 기술의 작동 원리를 뜯어보고 이를 투자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과정이 그의 투자 인사이트가 만들어지는 핵심이다.

산업공학 전공인 그는 기술을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수익비율(PER) 중심의 밸류에이션만으로는 산업의 방향과 가능성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그는 특정 종목을 보기 전에 기술 구조와 산업 흐름부터 검증한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확신은 투자로 이어진다.

대표 사례가 2019년부터 시작한 엔비디아 투자다. 당시 변리사 지인과 쿠다(CUDA) 플랫폼에 대한 기술적 논의를 거듭한 끝에 인공지능(AI) 발전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고객 자산을 집중 투입했다. 당시 4000만원으로 시작했던 한 고객은 잔고가 55배 상승해 20억원이 넘어섰다. 7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587%다.

현재 그의 시선은 여전히 AI 인프라로 향해 있다. 특히 데이터 전송을 담당하는 광통신 분야를 핵심 축으로 본다. 루멘텀 홀딩스, 코히어런트, 코닝 등 글로벌 기업과 함께 국내 관련 밸류체인을 동시에 추적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시작된 AI 랠리가 인프라 전반으로 확산되는 흐름에 베팅하는 전략이다.

문 차장의 관리 자산은 약 3600억원, 고객 수는 120명 수준이다. 지난해 4월 이후 미국 주식 수익률은 71.22%로 S&P500 대비 37%포인트 이상 초과 성과를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국내 증시 대비 저조했던 미국 증시에서도 그는 시장을 이기는 수익률을 거뒀다.

◆ 파생에서 배운 시장…"매크로로 방향 잡고 기술로 종목 고른다"

공학도였던 그의 인생 전환점은 2008년 대학생 시절 친구의 권유로 출전한 '대우증권 ELW 투자대회'다. 격주 수익률 203.68%로 1위. 글로벌 금융위기로 변동성이 극단으로 치닫던 시기, 그는 주식이 아닌 파생상품으로 단기 고수익을 거뒀다. 주변 모두가 반도체·IT 대기업을 진로로 희망할 때 증권업으로 방향을 튼 계기였다.

2012년 하나증권 입사 후에도 당시 파생에 특화돼 있던 대치금융센터로 첫 발령이 났다. 파생 전문가인 류해일 전 하나증권 전무 밑에서 신입 시절부터 5년간 기본기를 다졌다. "한국어로 된 책에는 제대로 된 게 없다"며 미국 원서를 던져주면 20~30쪽씩 발제하는 스터디를 매일같이 했다. "파생을 제대로 보려면 매크로를 알아야 하고, 매크로를 보려면 근현대사부터 알아야 한다"는 류 전무의 지론에 따라 국가별 근현대사 서적까지 함께 파고들었다. 시장을 보는 시야 자체를 키워준 인생 '사부'다.

파생운용을 주로 하며 초반부터 영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신입사원으로 영업 성과만으로 통상 대비 2~3배 수준의 성과를 기록했다. 신입에게 적용되는 성과급률 제한 탓에 인사부에 직접 요청해 본사 성과급을 포기한 보기 드문 사례였다.

그러나 PB 인생 초반부엔 뼈아픈 실패의 기억도 함께 새겨졌다. 비상장 투자에서 고객 자금과 개인 자금을 모두 잃는 경험을 했다. 확신에 찼던 투자는 전액 손실로 돌아와 그의 가까운 인간관계에까지 생채기를 냈고,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의 원성을 들으며 밤잠을 설쳤다.

이후 투자 방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공격적 단기 베팅 대신 글로벌 자산배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했고, 안정적으로 우상향하는 미국 주식이 중심에 들어왔다. 2016년부터 미국 시장을 직접 트레이딩하며 익힌 감각이 지금의 포트폴리오 토대다. 개인연금·퇴직연금·ISA 등 절세 계좌를 적극 활용해 실질 수익률을 높이는 것도 그의 강점이다.

역설적이게도 파생에서 시작한 이력은 그의 매크로 분석에 단단한 토대가 됐다. 금리·환율·글로벌 자금 흐름·지정학적 리스크가 단기간에 직접 가격으로 반영되는 시장에서 출발한 덕에 거시 흐름을 읽는 감각이 남다르다는 평을 듣는다. 매크로로 큰 그림을 잡고, 공대 출신의 분석력으로 종목까지 정밀하게 들어가는 방식이다. 글로벌 증시 조정 국면에서는 기술주 비중을 줄이고 미국채와 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손실 없이 방어했다. 이후 반등 구간에서는 기존의 '숏 베팅' 습관을 억제하고 상승 흐름에 그대로 올라탔다.

문 차장은 "수익보다 더 크게 남은 건 신뢰를 잃는 경험이었다. 시장을 이기려 하기보다 글로벌 흐름에 겸손하게 편승해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다"며 "크게 버는 것보다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고객 자산 넘어 삶까지…재무적 반려자 지향"

인터뷰 중 걸려온 고객 전화를 응대하는 문 차장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부드럽고 진중하다. PB의 가장 중요한 역량으로 그가 꼽는 것도 공감과 판단이다. 고객의 마음은 따뜻하게 읽되 시장은 냉정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 파생에서 다져진 공격적 기질과 뼈아픈 실패에서 얻은 신중함이 균형을 이룬 결과다.

공감의 영역은 단순한 상담 자리에 그치지 않는다. 영국 WSET(글로벌 와인 자격증) 레벨 2까지 취득했고 현재 레벨 3에 도전 중이다. 사내 와인 동호회 회장도 맡고 있다. 골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자산을 맡긴다는 건 결국 사람을 믿는 일인데, 고객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산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결이 맞지 않는 고객은 정중히 보낸다. 한 사람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주다 보면 다른 고객을 위한 공부와 분석에 쓸 에너지가 빠져나간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문형진 차장이 지향하는 PB의 모습은 단순한 자산 관리자보다 '재무적 반려자'에 가깝다. 투자 규모를 함께 설계하고 세제 구조까지 고려해 실질 수익을 높이는 방식이다. 초보 투자자들에게도 같은 결의 조언을 건넨다.

"감당 가능한 범위에서 시작해야 한다. 시장에 남아있는 것이 가장 큰 수익의 시작이다. 투자는 시장에서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크게 버는 것보다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