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의 연극리뷰] 그날의 도청(道廳)과 탱크, 헬리콥터가 된 극장과 객석… 더 뭉클해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

입력 2026-05-22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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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극단 하땅세,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
극단 하땅세,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자차로 왕복 700km. 고유가 시대에 달린 시간만 8시간. 김민정 작, 윤시중 연출의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 60분 공연을 보기 위해 꼬박 10시간 넘는 시간을 쓴 셈인데, 공연을 본 뒤 시간을 벌어 돌아왔다. 윤시중 연출의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은 초연 때부터 극단 하땅세의 몇 가지 버전으로 봐왔는데, 도청 벽면으로 칠해지는 극단 하땅세의 하얀 시간은 더 깊어졌고, 감동이었다. 놀이성은 역사의 시간으로 더 넓어졌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1의 전체 공간을 전남 도청화해 그날의 시간을 칠하고 지우며. 동화처럼, 꿈의 기억처럼 말하고 있었다.

여전히 46주기 동안 역사의 색으로 칠해질 수 없는 하얀색은 칠쟁이 김영식의 죽음과 그날의 기억, 아들 혁이를 중심으로 시간을 칠하는 광주민주화항쟁 역사의 시간을 공간화한 것도 넓어졌다. 여전히 역사의 그날은 현재의 시공간과 상처로, 삶의 기억으로, 아들 혁이의 죽음과 시대의 폭력으로부터 지워낼 수 없는 영식의 트라우마로 탄환 자국 틈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시민군의 망자들을 소환한다. 연극적 상상의 위대한 놀이처럼 지워지지 않는 시간으로 공간화한 무대는 아무 일도 없었던 동화처럼 깊어졌다. 오브제 활용도 돋보였다. 헬륨 풍선의 청사과는 그날의 시간으로부터 죽음이 되어 돌아온 아들 혁이와 수많은 무명 청년의 죽음을, 사과나무는 마치 무덤가처럼 혁이와 영식의 시간을 붙들어 역사의 뿌리처럼 서 있다.

극단 하땅세,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
극단 하땅세,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

◇ "기억나? 시간이 되돌아가네."

극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객석 정면에 배치된 구조물이다. 구조물은 실제 전남도청 건축을 그대로 재현했다기보다 극장 내부 벽면을 활용해 도청의 입면(立面)과 출입구, 내부 행정 공간의 기억을 환기하는 장치처럼 기능한다. 3~4층 높이 규모로 설치된 구조물은 도청 건물의 수직성과 권력 공간의 폭력성을 떠올리게 하고, 이후 배우들의 이동과 등장, 영식의 추락 장면, 혁이의 시간(어린 시절과 20대 청년) 이 중첩되면서 5,18 시간의 기억이 축적된 역사적 공간으로 전환된다. 객석 정면에는 전남도청을 상징하는 문이 있고, 3~4층 규모 구조물은 도청 내부를 떠올리게 한다. 이뿐만 아니라, 극장 내부공간 전체를 도청화한 공간은 그날의 역사, 기억, 죽음과 영식과 아들 혁이를 중심으로 한 두 사람의 시간이 꿈처럼 중첩되는 공간으로 변주된다. 정방형 공간의 네 면이 모두 무대가 되는 구조다.

왼편 공간은 죽음의 공간이면서 영식과 혁기의 성장, 가족의 기억과 성장사서 공간으로 사용된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5·18의 공간으로 바뀌고, 현재와 과거가 구분되지 않은 기억의 시간처럼 말이다. 꿈을 꾸는 시간처럼 몽환적으로 겹치기도 하고, 영식과 혁이의 과거 시간은 동화 같으면서도 그날의 역사는 매서운 현실처럼 진행되기도 한다.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의 '시간'은 다층적이다. 1980년 5월의 시간이고, 영식의 시간이며, 학기의 시간이고, 가족의 시간이며, 죽음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현재에도 진실이 실종된 그날의 시간이다. 그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은 폭력의 역사를 지우는 사람과 역사의 진실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도청의 하얀색은 지워진 역사이고 지우려 했던 역사이면서도 현재이다. 누군가는 도청의 탄환 자국과 죽음을 은폐하기 위해 하얀색으로 덧칠하려 했고, 영식은 칠쟁이 직업 때문에 역사를 지우고 칠할 수밖에 없었다. 진실의 역사가 하얀 벽으로 지워진 극단 하땅세의 도청 건물은 그래서 국화처럼 하얀색이다. 색의 밑면은, 군부의 역사와 폭력의 역사, 훼손되고 은폐된 기억의 자국들이 남아 있다.

객석을 360도로 회전시켜 극장 공간을 도청화한 것도 장점이다. 객석 전체를 탱크와 헬리콥터로 입체화한 진압군의 상징성도 강렬했다. 객석이 회전할 때마다 바닥 밑면으로 깔린 시체 더미는 그날의 시간을 가해자의 시선으로 감각하게 했고, 색색의 공이 포탄이 되는 하땅세의 놀이성은 뭉클했다. 마지막, 객석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46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그날의 역사와 기억은 여전히 진실로 덧칠되지 못한 하얀색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극단 하땅세의 배우들의 놀이성으로, 연출의 시선으로 확장된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은 더 뭉클해져 돌아왔다. 초연 때의 영식 윤독현은 연기가 더 편안해지고, 감각적이다.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은 꼭 5월만이 아닌 시즌별로 전국투어를 해도 좋은 작품이다.

극단 하땅세,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
극단 하땅세,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

|미니 인터뷰 (연출, 윤시중)

─ <시간을 칠하는 사람> 올해 공연은 특히 좋다. 초연과 달라진 점은.

"<시간을 칠하는 사람>은 광주 아시아문화의 전당 예술극장에서 레파토리로 매년 공연된 이후 3년간은 여건상 서울의 작은 한옥집에서, 에딘버르 극장에서, 프로시니엄 극장에 맞추어 주인공과 형식을 바꾸어가며 공간에 맞게 공연되었다. 오랜만에 처음 태어난 예술극장으로 돌아와서 하는 것이였다. 배우들도 스텝들도 더 힘을 기울였다. 공연 첫 오프닝전 우리를 초연부터도와주시는 극장 감독님들이 더 떨고 긴장했었다. 크게 달라진 것은 마지막 영식이 젊어지면서 기억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이다."

─ <시간을 칠하는 사람>을 오브제극으로 풀어냈는데. 이번 공연과 차이는.

"지난해는 도청에서 청소일을 하는 한 여인을 중심으로 잃어버린 딸의 이야기를 했다. 도청에 일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여러 버전을 만들다보니 원작 속 영식의 부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전당 예술극장에서 서울의 작은 감나무 집에서 올리려니 고민과 시도가 많았다. 다양한 시도 끝에 도청에서 은퇴한 여인의 성북동 집 자체를 중심으로 가져가서 풀었다."

─ 올해 공연을 통해 연출로 부각하고 싶었던 것은.

"관객은 영식의 머릿속 기억이여야 한다. 즉, 연극처럼 느껴지거나 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예로 연극에서는 당연히 배우가 연기하고 전환 큐가 필요하지만, 기억은 그런 것들보다 더 복잡하고 예측불허하다고 생각해 만들었다. 기존에 518을 다룬 좋은 영극과 영상들의 작품들이 있기에 우리는 절대로 직접적인 폭력 또는 총소리 등으로 상황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영식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시간을 칠하는 사람>은, 결국 영식의 관점에서는 그날의 역사를 지우는 인물이고, 아들 혁이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청년들의 5,18의 역사인 듯 하다.

"일상 속 일반인 영식의 기억을 통해서 역사에 관객들이 다가오기를 원했다. 누구나 이 연극이 518 민주 항쟁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그런 부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흥미롭게 공연을 관람하던 관객이 스스로 공연이 끝난 후 전남 도청에 관심을 갖기를 원했다. 마지막 장면은 영식이 죽음으로 사라지지만, 점점 더 젊어지고 건강해지면서 건물속으로 즉 기억속으로 행복하게 들어가기를 원했다."

윤시중.
윤시중.

─ 연극은 프롤로그 부터 영식의 죽음, 결혼, 그리고 아들혁이와의 기억, 그리고 혁이의 죽음과 다시 영식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극적으로 중요한 지점은.

"영식이 도청이 철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뛰어내렸다는 설정과 다리를 다친 그가 다시 도청을 찾아오는 구조도 되어있다. 영식의 머릿속에 관객이 들어가기를 바랬다. 영식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통해 혁이의 죽음이 더 아프게 다가오기를 원했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가장 일상적인 장면이기를 원했다. 비극의 시작하기 전에 가족들이 담벼락에 앉아 노을을 바라볼 때 관객들은 이미 깊은 감정으로 흐느낀다."

─극 전체에서 세 할머니의 존재는 역사의 증인이자, 5,18의 피해 가족들로도 보이게 된다.

"세 할머니는 동네 할머니면서 기억속에 시간을 보여주고 생명들과 연결되는 삼신할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브제 사용도 좋다. 특히 청사과의 설정, 사과나무, 그리고 영식의 죽음의 마지막 장면까지 말이다.

"군복이나 총성 없이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다. 5월에 영심이 받은 사과가 익지 못한 풋사과이고 빨갛게 익기 전에 떨어져서 깨지는 것으로 죽음과 비극을 표현하려고 했다. 끝내 자라지 못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죽음을 보여주기보다는 터져버린 풋사과 향을 관객이 맡기를 원했다."

─객석을 360도 회전시켜 역사의 시간을 말하고, 탱크와 핼리콥터 등으로 표현한 의도.

"객석이 움직이지만, "우리는 놀이동산을 만드는게 아니다" 라고 되뇌었다. 객석이 움직이는 이유가 영식의 기억을 따라가야하고 동시에 기억을 가까이 다가가서 생생히 들여다봐야하기에 사용했다. 그래야 예술극장 전체를 관객들에게 인식시켜서 이 장소가 영식의 기억속 도청으로 믿게 만들고 싶었다. 이 작품에서 한명이라도 죽는 모습을 재현하고 싶지않았으나, 어느 순간 객석이 탱크 소리와 함께 뒤로 후진 할 때 깔려 쓰러진 명심의 모습이 보일 때 관객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타고 있는 것이 탱크였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이 움직이는 객석은 의미가 생겼다. 시연 후 극장 측에서 안전 등의 이유로 예산을 투자해 오토메이션으로 돌리자고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배우들이 모두 스스로 돌리기를 원했고 지금도 배우들과 몇분의 스텝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

윤시중.
윤시중.

─공간 전체를 도청화 한 의미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블랙박스형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이 극장에 들어오면 인간의 스케일이 너무 작다. 나 같은 사람이 극장 한가운데 서 있기만해도 햄릿처럼 근사하게 보인다. 이건 꼭 좋은 의미는 아니다. 관객을 무겁게 짓누를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518 역사적인 비극을 다루는 연극인데 관객들이 얼마나 부채 의식으로 극장에 들어올지를 고민해야 했다. 극장이 크다고 영상으로 채워도 쉽지 않았다. 극장 안에 있는 사람이 보는 것이 연극이다. 그래서 공간의 크기와 관객의 심리 상태에 연구를 많이 했다. 이 큰 공간을 이기려고 애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관극 후에는 관객들이 오히려 이 극장의 매력을 발견한 것 같다."

─극단 하땅세의 놀이정신이 좋다. 특히 이지점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은.

"특별히 프로그램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단 우리 극단은 모두가 매일 직장인처럼 출근해서 연습하고 일하고 보낸다. 그래서 종종 지루하고 지칠 때가 오기에, 같이 전시도 보고 극장도 가고 여행도 같이 가면서 지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땅세는 자발성과 주인의식이 무척 중요하다. 즉, 그 말은 제가 늘 들여다보고 있지만, 대부분 관여하거나 연출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각자가 시도하고 틀려보고 다시 시도하면서 시간이 가면서 주인의식이 생긴다고 믿는다. 작품 만들 때 배우가 모든 것을 알아야한다고 믿는다. 작품 속에 있는 배우들과 스텝들이 저보다 더 감각적으로 알고 있기에 자율성을 나눈다."

─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은지.

"7년 전 첫 시연을 하고 서울에서 오리지널 공연을 올리고자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그때는 제가 적극 반대 했었다. 여기 전남도청 건물이 남아있는 광주아시아문화의 전당에서만 볼 수 있는 공연이 지금 시대에는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쉽게 얻어지는 컨텐츠에 대한 반하는 흐름을 만들고 싶다.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서 어렵게 광주에 내려와서 볼만한 가치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

─ 앞으로 하땅세의 작업방향은.

"우리 극단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잘 들여다보고 있다. 남의 떡은 늘 근사해 보인다. 예산과 운영에 부담 되지않도록 하땅세는 공간과 카메라를 활용해 연극의 울타리를 더 넓히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모비딕 크루즈> 작품을 해보고 조금 노하우가 생겼다. 안전하게 약속된 극장에 들어온 관객이 실시간 영상과 배우의 연기를 통해 약속되지 않은 길거리에서, 또는 극장 밖에서 연극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계속 모색하고 있다. SNS가 확장되어 개인들 안에 자리잡았다면, 오히려 우리는 연극으로 거리로 나가 현실을 만나 극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다."

극단 하땅세,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
극단 하땅세,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