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안 비도 있지, 있구말구

입력 2026-05-28 09: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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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담스님 지음/ 학이사 펴냄

그림 그리는 어르신들의 모습. 학이사

청도 감나무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이 한지 위에 피어났다. 45년간 전통한지를 연구해온 영담 스님의 신간 '안 비도 있지, 있구말구'는 그림을 잘 그린 사람들의 화집이 아니다. 평생 논밭과 과수원에서 살다 붓 한 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어르신들이 꺼내놓은 '인생의 기억 저장고'에 가깝다.

책은 "연세 많은 어르신들 마음속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청도에서 한지미술관을 운영하는 영담 스님은 직접 한지를 들고 마을로 향했다. 나무 그늘 평상에 앉은 어르신들을 만나 말을 건넸고 그렇게 4년 동안 400여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책에 실린 그림은 모두 70~90대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작품이다. 91세 할아버지는 소달구지와 헛간, 가족이 살던 집을 지도처럼 세세히 그려놓고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는 먼저 간 아들과 딸 얼굴을 한지 위에 다시 불러냈고, 누군가는 운문댐 아래 잠긴 고향집 주소와 이웃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다.

'안 비도 있지, 있구말구'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애를 한지 위에 붙잡아둔 생활사이자 구술 채록집에 가깝다. 잘 그린 그림보다 중요한 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끝내 잊지 못했는가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독자 역시 마음속 오래된 풍경 하나쯤 떠올리게 된다. 232쪽, 2만원.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작품. 학이사
그림 그리는 어르신들의 모습. 학이사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작품. 학이사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작품. 학이사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작품. 학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