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잔인한 금융" "약탈금융" 등 금융 관련 언급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 제안이 최근 큰 관심을 얻었다. 일반 국민들은 물론, 시장도 '깜짝' 반응한 경제 이슈였다.
정책 책임자의 말은 경제의 방향을 정한다. 완성도 높은 말은 순풍을 만들지만, 너무 거칠거나 모호한 말은 역풍을 만들기도 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직전의 낙관론부터 2026년 국민배당금 논란까지, 대한민국은 정책 책임자의 말이 시장의 신뢰와 불안을 동시에 움직인 사례들을 반복해왔다.
◆ '약탈금융' 직격탄, 금융권 즉각 움직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자신의 SNS(X, 구 트위터)에 "아직도 이런 원시적 약탈금융이 버젓이 살아남아 서민들의 목줄을 죄고 있는 줄 몰랐다"며 민간 부실채권 처리회사 '상록수'가 2000년대 초반 카드 사태 당시 연체채권을 여전히 추심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공유했다.
이어 당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카드 사태 때 카드회사와 금융기관들이 다 정부 세금으로 도움받지 않았나. 그런데 국민의 연체채권을 지금도 악착같이 추심하고, 연간 수십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도 백몇십억원 배당을 받고 있더라"면서 대책을 주문, "본질이 돈놀이이니 금융이 원래 좀 잔인하기는 한데, 그래도 정도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자 금융권은 즉각 해당 연체채권 정리에 나섰다. 이 대통령 발언이 나온 당일 신한카드는 상록수 보유 장기 연체채권 중 신한카드 지분(30%)에 해당하는 채권 전액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새도약기금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10% 지분을 가진 하나은행도 채권 매각을 결정했다.
새도약기금으로 이들 채권이 이관되면 해당 차주(채무자)에 대한 추심은 즉각 중단된다. 이후 상환 능력에 따라 채무 조정과 분할 상환이 추진되고, 기초생활수급자 등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은 1년 내 채권이 자동 소각된다.
이걸 언론에서는 금융기본권 추진의 한 갈래로 본다. 또 다른 갈래도 진행형이다. 이 대통령은 앞서 고신용자 대출금리를 높여 저신용자 대출금리를 낮추는 골자의 '저신용자 저리 대출' 역시 주문한 바 있는데, 마침 자신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기본대출(국민 누구나 1천만원 10~20년 저리 마이너스 대출)을 닮은 하위 50% 저신용자 1천만원 저리 대출 등을 다루는 금융기본권 도입 연구단이 오는 6월 출범한다. 금융당국도 현재 '포용금융추진단'(가칭) 출범을 위한 분과 구성 등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즉, 총론인 금융기본권의 각론 정책들이 하나 둘 쏟아질 수 있다는 얘기인데, 시장(금융권)이 발빠르게 보조를 맞추는, 정확히는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상황도 이어질 전망이다.
◆ '국민배당금' 파장, 초과세수? 횡재세?
금융기본권이 어느 정도 예상된 정책이었다면, 김용범 실장의 '국민배당금' 제안은 갑자기 떨어진 날벼락 수준이었다.
김 실장은 지난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반도체와 AI(인공지능) 호황으로 예상되는 막대한 이익으로 인한 세수 증가분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구상을 밝혔다. 그러자 "반기업적 발상" 등 강한 반발 여론이 나타났고 당시 우리나라 증권시장 지수 급락의 배경 중 하나로 외신 등 언론들이 지목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곧장 "내부 검토와 무관한 의견"이라며 선을 그었고, 이 대통령도 직접 나서 13일 SNS로 "김 실장이 언급한 국민배당금은 국가 '초과세수'를 재원으로 삼는 것이며, 기업 '초과이윤 배당'이라는 주장은 본질을 왜곡한 가짜뉴스"라고 지원사격성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김 실장의 발언은 늘 몇 단계 뒤 상황을 가늠하고 확대 해석을 해서라도 '리스크'에 철저히 대비하는 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즉 정교하지 못한 글이었다. 아울러 학자나 경제평론가가 아닌 정책실장의 입장에서 한 발언이었기에 뒤늦은 청와대의 해명은 '내부 조율 부재'만 드러냈고, 대통령에겐 정치적 부담만 지우는 결과를 만들었다.
"코스피 시가총액 458조를 날린 발언"이라는 비판은 김 실장에겐 충분히 억울할 수 있으나, 정책 책임자의 말이 경제를 뒤흔든 과거 전례를 생각하면 "다음엔 좀 더 완성도 높은 말과 글을 구사하자"는 자기 반성 및 교훈으로 삼는 게 더 생산적이다.
◆ 'IMF'부터 '레고랜드 사태'까지
대통령이나 정책실장 등 정책 책임자의 발언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향후 정책, 규제, 과세, 감독 방향 등의 신호로 해석된다. 이게 가격과 투자심리, 기업 의사결정을 생물처럼 움직이게 한다.
그 과정 내지는 결과까지 나빴던 사례들을 살펴보면, 가장 임팩트가 컸던 사례로 YS(김영삼) 정권 때였던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정부 경제팀이 낙관적 메시지를 잇따라 발신한 걸 들 수 있다. 당시 경제 수장들은 한국 경제의 기초여건, 즉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반복했다. 그러나 시장은 정부의 말과 실제 외환시장 상황 사이의 간극을 더 크게 느꼈다. 결국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신청으로 이어지면서, 이 발언들은 위기 인식 실패와 커뮤니케이션 실패의 상징처럼 남았다.
MB(이명박) 정권 시기인 2011년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주장한 초과이익공유제 논란은 최근 국민배당금 논란과 가장 닮았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이 예상보다 많은 이익을 냈을 때 협력 중소기업과 나누자는 구상이었다. 명분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그러나 재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모르겠다"는 취지로 비판했고, 정운찬 위원장은 색깔론으로 몰지 말라고 맞섰다. 이 사례의 핵심은 제도 자체보다 해석의 충돌이었다. 정책은 상생을 말했지만, 시장은 이윤 배분 개입을 먼저 떠올렸다. 이게 이번에 김용범 정책실장에 의해 반복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文(문재인) 정권 때인 2018년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발언도 빼놓을 수 없는 사례다. 당시 박 장관은 가상화폐 투기 과열을 우려하며 거래소 폐쇄까지 검토한다는 취지의 강경 발언을 내놨다. 그때 가상화폐 시장엔 20·30대 투자자가 대거 뛰어들어 있었다. 주식시장보다 진입 장벽이 낮고, 모바일 앱으로 24시간 거래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젊은층의 관심이 쏠렸다. 그런 상황에서 거래소 '폐쇄'라는 표현은 단순한 규제 검토가 아니라 시장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신호로 풀이되기 충분했다.
투자자들이 받은 충격은 곧 가상화폐 가격의 급등락을 만들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정책 책임자의 말 한마디가 신흥 자산시장을 뒤흔든 다음이었다.
尹(윤석열) 정권 시기였던 2022년 레고랜드 사태는 시장의 신뢰에 충격을 준 대표 사례다. 당시 김진태 강원지사는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절차 추진 방침을 밝혔고, 시장은 이를 강원도가 지급보증한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의 신뢰 문제로 소화했다. 금액은 2천50억원 규모였지만 충격은 지방정부 보증채권 전반으로 번졌다. 이어 자금시장이 경색되자 정부는 50조원이 넘는 규모의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놔야 했다. 한 지방정부의 행보가 전국 채권시장의 신뢰를 흔든 사례였다.
◆진영 넘어 반복되는 '경제 발언 리스크'
"경제와 안보는 보수가 잘한다"는 말은 퇴색된지 오래다. 정권마다 다르고, 실은 정권을 시기 및 분야별로 해체해 살펴봐도 평가가 달라진다. 정책 책임자 발언의 효과도 그 말이 보수 정부에서 나왔는지, 진보 정부에서 나왔는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2023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공공재·돈잔치' 발언을 되짚을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고금리 속 은행의 성과급과 이자 이익을 비판하며 은행의 공공재적 성격을 강조했고, 금융권은 대출금리 인하와 상생금융 방안을 압박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잔인한 금융" "약탈금융" 발언과 큰 차이점을 느끼기 힘들다. 은행의 이자 이익을 질타하고, 금융권의 고통 분담과 취약계층 보호를 앞세우는 언어는 더 이상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좌우 진영의 전통적 경제정책 구분이 흐려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장 친화는 보수, 분배와 개입은 진보라는 도식만으로는 최근의 경제정치 언어를 설명하기 어렵다. 고금리, 가계부채, 청년 투자, 대기업 초과이익 같은 민감한 의제가 떠오를수록 어느 진영이 집권하든 기시감이 느껴지는 발언과 논란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