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이야기다. 경북 경산에 살면서 대구 수성구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다. 좋은 학군(學群)을 쫓아 위장전입한 이들이었다. 반대 경우도 있었다. 3학년이 되면 경산으로 전학 가는 친구들이 생겼다. 수성구에서 일반계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울 것 같자 내신 따기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경산으로 위장전입하거나 원래 주소로 돌아간 것이다.
이익이 있는 곳으로 주소를 옮기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역대 정부는 20년 넘게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을 내세우며 지방 이전 기업에 법인세·재산세 감면 혜택을 줬다. 일부 기업은 수성 학군을 노린 위장전입처럼 등기부에만 지방 주소를 올렸다. 핵심 인력과 실제 경영 기능은 서울에 그대로 뒀다. 간판은 지방인데 심장은 수도권에서 뛰고 있었다.
대표적 사례가 포스코홀딩스다. 2022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며 경북 포항에 본사를 뒀지만 핵심 인력 수백 명은 서울을 떠나지 않았다. 포항에 있는 미래기술연구원보다 더 큰 수도권 분원을 짓겠다는 움직임까지 보이자 지역사회에선 "알맹이 없는 껍데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 계열사도 다르지 않다. 포스코이앤씨와 포스코DX는 등기상 본사는 포항이지만 실제 역할은 인천 송도와 경기 성남(판교)이다. 포항 본사 기능은 진작에 형해화(形骸化)됐다.
이 문제는 단순한 상징 논란에 그치지 않는다. 지방 살림과 직결된다. 포스코가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낸 2021년, 이듬해 포항시 법인지방소득세 징수액은 1천491억원으로 뛰었다. 전년보다 세 배 넘게 불어난 수치다. 반면 철강 가격이 떨어지고 태풍 힌남노까지 덮친 2023년에는 767억원으로 급감했다. 포항시 한 해 세수의 10~30%가 포스코에서 나온다. 기업이 잘되면 곳간이 차고, 기업이 흔들리면 곳간도 빈다.
구미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실적이 좋을 때는 법인지방소득세가 1천400억원을 넘지만 업황이 꺾이면 세수도 곤두박질친다. 2024년엔 500억원까지 떨어졌다. 지방 재정의 운명이 특정 기업의 실적 등락에 묶여 있는 구조다. '기업을 품어야 지방이 산다'는 명제는 포항과 구미가 몸소 증명하고 있다.
정부가 오는 7월 세법 개정안에 담을 지역 차등 세제 지원 방안은 이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다. 재정경제부는 지방에서 투자·고용·연구개발을 실제로 늘린 기업에 법인세와 재산세를 추가 감면하려 한다. '이전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활동했는지'로 잣대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주소만 옮겨놓고 혜택만 보는 건 사기"라고 직격했다.
방향은 맞다. 관건은 제도 설계의 정교함이다. 기업 활동 실적을 어떻게 측정하고 검증할지, 지방 광역시와 경북 문경·고령 같은 인구감소 지역을 같은 잣대로 볼 것인지, 수치만 맞추는 새로운 형태의 편법은 막을 수 있는지.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하면 제도는 또 다른 위장전입의 통로가 된다. SK하이닉스 유치전에서 경북이 내세운 세제 혜택은 결국 수도권의 인력·연구 인프라를 이기지 못했다. 세금을 깎아줘도 기업이 필요로 하는 생태계가 없으면 기업은 오지 않는다.
지방에 필요한 건 등기부에 찍힌 주소 한 줄이 아니라 투자와 고용이 실제로 뿌리내리는 기업이다. 세제 혜택은 그 출발점일 뿐이다. 주소가 아니라 사람이 내려오고,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이 살아나는 것. 그게 수십 년째 말로만 되풀이된 균형발전이 실현되는 순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