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민음사 펴냄
하나. 1981년도였던가. 대입 예비고사에서 340점 만점에 184점을 받은 학생이 서울법대에 입학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통상 서울법대 커트라인이 310점 선이었음을 고려할 때 경악할 노릇이지만, 이는 그해 서울대 경쟁률이 미달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언론매체의 인터뷰가 쇄도했고 그때마다 그는 남들은 비웃어도 보란 듯이 졸업하고 사법고시도 패스할 것, 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입학 첫해를 못 넘기고 자퇴하고 말았다. 법학 서적 한쪽 읽기 위해 일일이 옥편을 찾아봐야 하는 힘들고 지루한 과정에 무너졌기 때문. 탄탄한 기본 없이 요행으로 이룬 성과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사상누각이다.
둘. 1845년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근처 월든 호숫가로 떠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세 개의 의자를 만든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 또 하나는 '친구'를 위해 나머지 하나는 '사교'를 위해. 소로가 만든 의자는 각각 자기성찰, 우애, 환대를 상징한다.
셋. 1948년 뉴욕 현대미술관이 주최한 저가 가구 국제 공모전에서 찰스 임스는 유리섬유를 가공하여 등받이와 시트가 하나로 이어진 플라스틱 의자를 선보인다. 현재 국내에서 74만 원대에 판매되는 이 의자의 최초 판매가격은 6달러 17센트. 당시 신소재로 떠오른 유리섬유는 가볍고 튼튼할 뿐만 아니라 가죽이나 나무 의자보다 가격이 저렴하여 학교, 공항, 사무실 등 공공시설에 빠르게 보급되었다. 게다가 플라스틱은 가장 미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낸 아메리칸 스탠더드의 주역이었다. 임스는 혁신적 디자인을 추구했고, 사용자 중심 접근방식을 채택했으며, 예술과 공학을 접목해 창의와 기능을 극대화했다. 그러니까 임스의 의자는 모던하고 편안한 기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넷. 마블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스파이더맨 수트를 입은 기쁨에 천방지축 사고나 치고 다니던 피터 파커는 수트를 회수하려는 토니 스타크에게 수트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며 읍소한다. 이때 토니 스타크의 단호한 대답. "수트가 없어서 아무것도 아니면 더더욱 수트를 입으면 안 돼" 기초체력 없이 기술만 연마하거나, 내공 없이 초식만 장착하면 협객이 아니라 자객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의자란 권력의 상징인 동시에 근대화의 산물이다. 사람마다 자기 자리가 있기 마련. 학창시절 선생님이 "모두 자기 자리에 앉아"라고 할 때의 자리는, 자기 의자를 말한다. 적어도 학생 때는 누구나 자기 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는 순간, 안타깝게도 자리 없는 사람이 생겨난다. 어떤 이는 자리가 있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데 반해 애초에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도 보인다. 또 어떤 이는 높고 크고 화려한 의자만을 꿈꾸다가 평생 제대로 된 자리 하나 얻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치기도 한다. 이때 의자는 사회적 지위와 권력의 은유다.
이문재는 자신의 시 <소로의 오두막>에서 "친구가 찾아오면 의자 두 개를 마주 놓고, 나그네들이 오면 의자를 다 내놓았다고 합니다. 홀로 고독을 즐길 때는 의자가 하나만 필요했겠지요. 미루어 짐작건대 소로가 혼자 앉아 있을 때도 의자 두 개가 비어 있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라고 쓴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친구를 아끼고 타인에게도 기꺼이 손 내밀 수 있을 터. 세 개의 의자가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삶도 온전해지리라 믿는 시인의 마음을 살며시 빌려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