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 송병선 번역/ 민음사 펴냄
콜롬비아는 1819년 독립을 얻은 뒤에도 내전이 100년 넘게 이어지면서 다양한 세력 변동과 합종연횡이 난무했다. 기만과 배신과 모략이 비일비재한 세월 동안 적과 동지의 구분이 모호하고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지 않으며 전쟁 명분조차 불분명한 시간이었다. 역사적 순차적 정리가 거의 불가능한 사건들. 현실과 사실과 역사를 정리하는 질서가 와해된 부조리와 혼란 속에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탄생한다.
마르케스의 외할아버지는 오랜 내전을 겪은 퇴역 육군 대령이었다. 외할아버지는 대부분을 정부를 위해 싸웠다. 외할아버지가 퇴역한 후 벌어진 일은 끊임없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정부는 제대 후 거액의 연금을 약속했고, 그 연금이 할아버지에게 기다림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불하기로 약속한 연금은 아예 지불할 수 없었고 지불할 계획도 없었다. 앞의 전쟁이 뒤의 전쟁을 불렀고, 그 전쟁이 멈췄을 때 그것을 대신한 것은 끝도 없는 기다림이었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는 마르케스가 외할아버지의 삶을 재현한 초기 걸작이다. 매주 금요일 낡은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우편물을 기다리지만 "대령님에게 온 것은 하나도 없군요."(20쪽) 라는 대답만 듣고 돌아오는 대령이 기다리는 건, 연금 수령 통지서였다. 대령은 혁명군 군수사령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혁명 자금을 넘기고 친필 서명이 담긴 인수증을 근거로 자격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마지막 내전이 끝나고 56년 동안, 기다리는 연금 수령 통지서는 오지 않는다. 마르케스의 외할아버지 역시 내전을 두루 겪고 바나나 농장에 정착해 매일같이 끝내 오지 않을 연금을 기다리던 노인이었다.
대령의 삶은 전쟁과 죽음을 딛고 이어온 시간과 연금을 기다리는 시간, 말하자면 멈추고 갇힌 시간이었다. 콜롬비아의 지난한 내전과 끝나지 않은 정치 혼란을 드러내는 몇 개의 문장은 인상적이다. "오랜만에 보는 자연사"(11쪽) "어떤 소식도 다음 달보다 더 놀랍지 않았다."(25쪽) 급기야 변호사 교체를 결심한 대령에게 변호사가 답하는 대목. "최근 십오 년 동안 관리들이 수없이 바뀌었습니다. 일곱 명의 대통령이 있었고, 대통령마다 적어도 열 차례는 내각을 교체했고, 장관마다 적어도 백 번은 직원들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십시오."(40쪽)
마르케스는 소설에 수탉 한 마리를 끼워 넣어 콜롬비아 민중의 명예와 자존심의 상징으로 삼는다. 몇 달 뒤 투계장에서 승리하면 900페소를 받을 수 있는 녀석이지만, 대령과 그의 부인에겐 당장 내일 먹을 양식조차 없는 상황. 아내는 천식을 앓고 연금통지서는 오지 않는다. 뒤늦게 (내전의 달콤한 과실을 획득해 부자가 된) 사바스에게 수탉을 넘기려고 하나 뜻대로 될 리 없다. 현실적인 아내와 대의와 명분을 지키려는 대령의 대화, 즉 사바스가 당뇨로 죽어간다며 연민을 보이는 대령에게 "당신은 선거에서 등골이 부서지도록 일했고, 그래서 한자리 얻을 권리가 있어요. 내전에서 목숨을 건 후 참전 용사 연금을 받을 권리도 있어요. 이제 모두 확실하게 보장된 삶을 사는데 당신은 완전히 혼자서 배를 곯고 죽어 가요."라며 응수하는 아내의 절망 섞인 푸념은 몹시 처량하다.
문학을 잘 아는 이들이야 소설이 지향하는 명예로운 태도에 감동어린 찬사를 바칠 수도 있겠으나, 전리품을 독식하는 혁명동지에게 의리를 지키려는, 인내심이 바닥 친 아내 앞에서조차 자존심과 품위를 앞세우는 대령의 처신이 정말 감동적인지, 난 잘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