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세계사] 페르시아, 그리스에 패했지만 로마 황제 굴복시켜

입력 2026-05-10 12:5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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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무라비 법전.
함무라비 법전. '눈에는 눈' 동해복수법으로 이름 높다. B.C1772년 경. 루브르 박물관

이란 전쟁의 파고가 높고 깊다. 미국과 이란의 휴전 회담이 좀처럼 끝을 보이지 않는다. 서양 입장에서 아시아에 해당하는 이란의 조상 페르시아는 인류사에 두 번 이름을 진하게 새긴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B.C. 550년~B.C. 330년), 사산조 페르시아(226년~651년). 그때 페르시아는 무력하게 서양 사회에 당하기만 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지난 글에서 페르시아와 동아시아의 우호 관계를 살펴봤다면 이번 글에서는 페르시아와 서양의 대결 역사가 전해주는 교훈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들여다본다.

초가잔빌의 엘람 지구라트. B.C. 1250년 엘람 왕 운타시 나피리샤 건축. 이란 수사
초가잔빌의 엘람 지구라트. B.C. 1250년 엘람 왕 운타시 나피리샤 건축. 이란 수사

◆함무라비 법전

20세기 벽두 고대 메소포타미아 역사 이해의 새 지평이 활짝 열렸다. 프랑스 이집트 학자 제뀌에(G. Jequier)가 이란의 수사에서 1901년 출토한 높이 225cm의 검은색 섬록암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 덕분이다. 1902년 파리로 실려와 복원과 연구를 거친 뒤, 1904년 루브르 동양 고대 유물부에 전시됐다. 지금도 루브르 리슐리외관 227호실에서 124년째 전 세계 역사 탐방객들을 만난다. 비석 상단 왼쪽에 함무라비 왕, 오른쪽에 고깔형 모자를 쓴 바빌로니아 태양신 샤마시(수메르의 우투)가 옥좌에 앉았다. 그 아래 아카드어 쐐기문자로 서문과 282개 법 조항을 새겼다. 판독된 246개 조항은 B.C.1772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진실을 전해준다. 1802년부터 런던 영국박물관에 전시돼 고대 이집트 문명을 알려주는 로제타 스톤(B.C.196년 제작)과 함께 인류 고대 문명사의 보배로 손색없다.

◆엘람 왕국 초가잔빌 지구라트

함무라비 법전이 출토된 이란 수사로 가보자. 이라크 국경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지에 인접한 수사는 고대 엘람 왕국(B.C.2700~B.C.539)의 수도다. 이란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고도(古都)로 페르시아 왕조 유적이 폐허로 남았다. 무엇보다 헬레니즘을 상징하는 사건 즉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부하 장군들과 페르시아 여성의 동서 합동결혼식이 B.C.324년 거행된 장소다. 수사에서 함무라비 법전이 발굴된 이유는 엘람왕 슈트룩 나훈테가 B.C.12세기 바빌로니아 왕국을 침략해 수도 바빌론 북쪽 시파르(Sippar, 샤마시 신앙 중심지)에서 강탈해 온 덕분이다.

수사에서 남동쪽 30여km 초가잔빌에 지구상에서 원형이 가장 잘 남은 지구라트(ziggurat)가 자리한다. 슈트룩 나훈테 왕이 함무라비 법전을 강탈하던 때보다 100여년 전 B.C. 1250년경 엘람왕 운타시 나피리샤가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계단식 피라미드 신전) 문화를 본 따 만들었다. 엘람의 최고신 인슈시낙을 기리는 신전 도시 중심에 높이 60m(현재 25m)로 우뚝 솟았다. 석재가 아니라 구운 돌벽돌로 쌓은 5층 계단식 지구라트는 B.C. 640년 메소포타미아의 신아시리아제국 아쉬르바니팔왕 침략 때 파괴돼 오늘에 이른다. 메소포타미아와 엘람(페르시아)의 물고 물리는 전쟁사가 흥미롭다.

알렉산더 다리우스 3세-[이수스 전투] 모자이크.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알렉산더 다리우스 3세-[이수스 전투] 모자이크.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키루스 대제 무덤

수사에서 페르시아만으로 내려가 보자. 지구촌 에너지 수송의 심장 박동기 같은 페르시아만 중간 지점의 대도시 쉬라즈 북쪽에 고색창연한 페르시아 유적이 기다린다. 파사르가다에. 키루스 대제가 B.C. 550년 강국 메디아를 정복하고 이란고원을 통일한 뒤, 수립한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B.C.550년~B.C.330년)의 첫 수도다. 공자의 충효와 왕도정치, 부처의 해탈 정신이 풍미하던 시절이다. 키루스 대제(키루스 2세) 무덤이 우뚝 솟아 탐방객을 맞아준다.

키루스 대제는 B.C.547년 리디아(현대 튀르키예) 왕국 함락에 이어, B.C. 538년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멸망시키며 인류 역사 최초의 대제국을 세운다. 이때 바빌론으로 끌려와 노예살이하던 유대인의 가나안 땅 귀환을 허용해 '바빌론의 유수(幽囚)'를 해소한다. 이뿐 아니라 귀환한 유대인이 예루살렘에 솔로몬 대성전을 재건하도록 허가한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은 유대인뿐 아니라 다른 피지배 민족에게도 똑같은 조치를 취해 승리, 지배, 탄압의 당대 국제정치 기준을 벗어나 관용과 포용이라는 새 규범의 제국을 선보인 셈이다.

◆다리우스 1세 페르세폴리스 건설

모든 피지배 민족을 포용하는 관용의 통치 정신을 건축으로 구체화한 의례(儀禮) 수도, 페르세폴리스로 가보자. 파사르가다에 남서쪽 방향에 자동차로 2시간여 거리다. 당시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파죽지세였다. B.C. 530년 키루스 대제를 계승한 아들 캄비세스 2세가 B.C. 525년 이집트를 침공해 프삼티크 3세를 펠루시움 전투에서 물리치고 정복한다. 캄비세스 2세가 귀환 도중 숨지자 혼란을 잠재우며 다리우스 1세가 권력을 잡고 북으로 코카서스 산맥, 동으로 인더스강, 남으로 이집트, 서로 그리스 북부까지 장악하는 대제국을 완성한다. 다리우스 1세는 B.C. 518년경 파사르가다에, 수사와 별도로 제국의 권위와 포용의 통합을 과시하는 행사, 의식 전용 수도로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한 것이다.

사산조 페르시아 샤푸르 1세와 포로가 된 로마 황제이란 나크쉬 에 로스탐.
사산조 페르시아 샤푸르 1세와 포로가 된 로마 황제이란 나크쉬 에 로스탐.

◆페르세폴리스의 '노루즈' 행사

불과 빛을 숭상하는 조로아스터교의 페르시아 제국 최대 명절은 밤보다 낮의 광명이 더 길어지는 춘분(春分)이다. 우리로 치면 설날에 해당하는 춘분 행사를 노루즈(Nowruz, 신년 행사)라고 부른다.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를 비롯해 모든 서양 언어의 모어(母語)인 인도유럽어에서 'nau, nou, new'는 '새로운'의 의미다. 매년 3월 21일경 춘분 때 제국 전역의 총독(사트라프)이나 현지 민족 대표들이 페르세폴리스에 모여 새해 축하 의식과 함께 충성 맹세 의식을 치렀다. 현장을 탐방해 보니 놀랍게도 건물 벽면을 장식하는 조각에 전투 장면은 없고, 평화 행렬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포용과 통합의 페르세폴리스는 B.C. 330불에 타 파괴된다. 왜 불탔나?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200년 남짓 갈등과 전쟁 탓이다.

◆1, 2차 페르시아 전쟁…알렉산더 승리

B.C.547년 리디아(현대 튀르키예) 왕국을 정복하면서 에게해 이오니아 지방(현대 튀르키예 서부 연안 지방) 그리스 도시국가들도 페르시아 지배로 들어간다. 페르시아 비호 아래 참주 폭정이 지속되자 이오니아 항쟁(Ionian Revolt)이 B.C.499년~B.C.493년 일어났다. 이를 아테네가 지원하자 격분한 다리우스 1세가 아테네 정복을 명령한다. B.C.490년 마라톤 전투의 1차 페르시아 전쟁이다. 아테네가 승리하자, B.C. 486년 아버지 다리우스 1세를 계승한 크세르크세스 1세가 B.C.480 2차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킨다. 하지만 살라미스 해전, 플라타이아 전투(B.C.479년)에서 그리스 연합군에 패배한다. 이후 소강상태를 지나 B.C333년 이수스, B.C.331년 과가멜라 전투에서 알렉산더가 다리우스 3세를 격파하면서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는 B.C.330년 멸망한다. 이때 페르세폴리스가 불탄 거다.

▲사산조 페르시아, 로마 황제 포로 잡아

페르세폴리스 북서쪽 6km 나크쉬에 로스탐(Naqsh-e Rostam)으로 발길을 옮긴다. 다리우스 1세와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암벽 무덤이 자리한다. 암벽 아랫부분에 사산조 페르시아(아케메네스 페르시아 멸망 554년 만인 224년 아르다시르 1세가 부활시킨 페르시아)의 영광이 조각 예술로 남았다. 아르다시르 1세가 조로아스터교 최고신 아후라마즈다로부터 왕권을 받는 장면 옆에 아들 샤푸르 1세가 로마 황제 2명을 제압한 장면이 두드러져 보인다. 샤푸르 1세가 244년 로마 황제 필리푸스 아라부스로부터 조공 약속을 받아내고, 16년 뒤 260년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생포한 사건이 생생하다.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그리스를 로마가 제압하고, 그 로마 황제를 페르시아가 굴복시키는 6백여 년 패권 변화 속에 역사의 가르침이 스며있다.

역사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