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보기자의 '그사람']"뇌 안에 꽈리가…" 윤순영 전 중구청장

입력 2026-05-15 14:30:00 수정 2026-05-15 14: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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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업적 #1. 근대골목 투어, #2. 김광석 길, #3. 동성로 노점 철거
중앙대 대학원 문화예술 기획 석사 후 역량 폭발
차기 대구시장은 망가진 도심 살려야 '심폐 소생술'

방천시장 골목 담벼락을 가득 채운 김광석의 얼굴들. 윤순영 전 중구청장은 잊혀가던 이 골목에 특별한 스토리를 입히고 역사를 기록했다. 파괴 대신 재생을 선택한 그 결과로 지금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방천시장 골목 담벼락을 가득 채운 김광석의 얼굴들. 윤순영 전 중구청장은 잊혀가던 이 골목에 특별한 스토리를 입히고 역사를 기록했다. 파괴 대신 재생을 선택한 그 결과로 지금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만들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

회색 콘크리트 공화국(온통 밋밋한 고층 아파트 숲)이 된 대구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보면서 문득 부드럽고 섬세한 카리스마로 구정을 이끌었던 문화 구청장이 떠올랐다. 그 이름 석자는 윤.순.영. 내리 3선을 하며 대구 근대골목 투어(한국 관광의 별 대상 수상)를 비롯해 방천동 김광석 길을 조성한 장본인이다. 또한 계산오거리 주변을 관광의 명소로 바꿔 놓았다. 12년 전 매일신문 노동조합 조두진 위원장이 감사패를 전달할 정도였으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8일 어버이날 분도빌딩 한 카페에서 점심을 겸해 반가운 얼굴과 마주했다. 첫인사로 '그간 별고 없었는지요?'라고 안부를 묻자, "웬 걸~, 지난해 말 뇌 안에 꽈리 때문에 큰 수술을 했어요. 문화계 후배들과 자리를 하고 다음날 아침에 쓰러졌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봐요"라는 슬픈 답변이 되돌아왔다. '어떤 스트레스였나'고 추가 질문을 하자,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도심을 함 보라"고 통탄했다. 두 전직 대구시장(권영진 8년+홍준표 3년) 재임시절 도시 디자인과 색깔에 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은데 대한 원망도 살짝 담겨 있었다.

특히, 윤 전 청장은 김범일 시장 시절에 도심의 전매청 자리를 아파트 단지로 만든 것은 도시를 망치는 우매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청주시가 전매청 부지를 국립미술관 분관으로 유치해 도심의 새로운 명소로 만들고, 시민들에게 문화적 자부심을 안겨준 사례를 빗대기도 했다. 또, 권영진 전 시장은 자갈마당(홍등가) 부지를 고미술 거리나 런던처럼 테이트 모던 미술관으로 만들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2012년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된 대구 근대문화골목. 관련 저서
'김광석길'의 8m 통기타 조형물 앞에 선 윤순영 전 중구청장. 잊혀가던 방천시장 골목에 스토리를 입히고 역사를 기록한 것이 그의 선택이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다시금 찾아간 김광석 길 "곳곳에 숨결 느껴"

만나자마자 점심 1시간 남짓, 분도 갤러리 내 사무실에서 2시간 남짓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기 위해 취재진과 '김광석 길' 곳곳을 거닐었다. 윤 청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분도 빌딩을 나서자마자 대백프라자 쪽 입구에서 전국에서 가장 큰 기타와 마주했다. "이게 가수 김광석과 늘 함께 했던 그 명품 통기타 모형을 그대로 본떠서 8m 크기로 만든 겁니다."

윤 전 청장은 함께 길을 걸으며, 벽화 하나하나가 어떻게 그려진 것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상세하게 알려줬다. 그러더니, 작은 공연장 입구 옆 벽에 시각·청각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 놓은 김광석의 얼굴 부조와 레코드 판 모양 위에 새겨진 점자를 가리켰다. "여러 아이디어 중에 신중하게 선택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겁니다. 이곳에선 모두가 김광석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윤순영 전 중구청장은
2012년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된 대구 근대문화골목. 관련 저서 '골목, 별이 되다'(2014)는 교보문고 판매 1위를 기록했다. 파괴 대신 보존을, 재개발 대신 재생을 택한 윤순영 전 청장의 12년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구 근대골목 투어 "한국 관광의 별(★)"

윤 전 청장은 3선 재임기간 중 세가지 큰 업적으로 동성로 노점상 철거(반발 심해 죽을 고생을 했던 기억)와 김광석 길 조성 그리고 대구 근대골목 투어가 지역 대표 관광상품이 된 것을 꼽았다. "그 구청장, 예술이네" 이런 기분 좋은 말까지 들었던 그는 초선 시절부터 '대구 중구 근대로의 여행'이라는 골목투어를 기획했고, 작은 기적을 일궈냈다.

이 골목투어는 2012년 대한민국 관광의 별(대상)이 되었고,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100곳'에도 선정됐다. 지금도 매년 전국에서 또 해외에서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대구 최고의 관광코스로 자리잡았다. 그는 "우리는 함께 옛길을 찾아 지도를 그리고 그 위에 새 길을 깔았다"며 "낡고 헌 골목에 새 숨을 불어넣으니 골목은 그 옛 시절의 오밀조밀한 모습으로 되살아났다"고 뿌듯해 했다.

2009년 7월 6일 동성로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함께 현장 답사하는 윤순영 전 청장. 중구청 제공
윤순영 전 중구청장은 "골목마다 숨어 있는 역사를 현재로 불러내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예술과 행정이 만나는 접점"이라고 강조했다. 대구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기초단체장으로 12년간 중구를 이끈 그는 재개발 대신 보존과 재생을 택해 낙후된 도심 골목을 전국이 찾는 관광명소로 바꿔놓았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일과 결혼 "화려한 싱글, 문화기획자"

윤 전 청장을 따라다니는 또다른 수식어는 '소녀 또는 수녀'.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그 이유를 묻자 "일과 결혼했다. 그게 다다"라고 담백한 답이 돌아왔다. 실제 그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대답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이성에 관심이 많았던 때, 혼기(婚期)를 놓쳤다. 이후 문화예술 및 공연 기획자, 선출직 행정가로서의 삶에 푹 빠져 살았다고 회고했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그는 학창시절(상주여중·고교)에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주목 받았던 규율 반장이자 리더십으로 충만한 행동파 여걸(女傑)이었다. 의외로 경영학을 전공했던 대학시절은 조용하게 보냈다. 뭘 할 지에 대한 고민과 방황 때문이었다. 그러다 중앙대 대학원에 입학해 문화예술 기획 쪽에 석사학위를 받으면서 인생은 다시금 날개를 폈다.

윤 전 청장의 잠재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주연 박정자, 윤석화, 손숙),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주연 남경주, 최정원), '고래사냥'(연출 송승환) 등의 대구 공연을 기획했다. 극단 분도를 창립해 톱배우 이성민을 주연으로 한 '불의 나라'도 무대 위에 올렸다. 이성민 배우는 윤 전 청장과의 개인적 인연 때문에 중구청 홍보대사를 맡기도 했다.

2013년 5월7일 남산종합복지관에서 개최된
2009년 7월 6일 동성로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함께 현장 답사하는 윤순영 전 청장. 중구청 제공

◆"인생 3막, 서막이 밝았다"

윤 전 청장의 인생 2막은 끝이 났다. 1막은 화려한 문화 기획자로서의 광폭 행보였으며, 2막은 대구 중구청장에 당선되어, 내리 3선을 하며 문화 행정을 펼친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3막의 시작되고 있다. 뇌 수술까지 한 터라 더더욱 새 인생을 사는 의미는 더해진다. "뭐가 두렵겠습니까? 문화가 흐르는 도시, 대구를 위해 뭐든 하겠습니다. 자연의 향기는 꽃, 인간의 향기는 문화입니다."

현재 맡고 있는 직책은 (사)여성과 도시 이사장, (사)박동준 기념사업회 이사장 그리고 분도갤러리 대표다. 아직 짱짱하고, 총명하기 때문에 대구를 위해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6·3 지방선거에서 망가진 대구를 살릴 훌륭한 시장이 선출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이제 도심을 살릴 마지막 심폐 소생술을 해야 한다"며 "경제도 살려야 하겠지만, 회색 도시를 탈바꿈시킬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당장 해야 할 버킷리스트도 있다. 대구가톨릭대에서 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는데, 논문을 못썼다. '윤순영 미학 박사' 타이틀도 완성시켜야 할 숙제다. 세계 문화 탐방을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기는 그는 일생 일대의 좋은 추억과 기억이 남아 있는 여행지로 ▷스위스 알프스 산맥 ▷일본 나오시마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꼽았다.

2012년 5월 26일 카리타스 장애인 문화축제에서 조환길 대주교와 윤순영 전 청장이 작품전시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중구청 제공
2013년 5월7일 남산종합복지관에서 개최된 '사랑의 효도상 차리기' 행사에서 윤순영 전 청장이 어르신과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 중구청 제공
2012년 5월 26일 카리타스 장애인 문화축제에서 조환길 대주교와 윤순영 전 청장이 작품전시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중구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