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이 공천 받는 걸 가장 싫어할 사람 [최훈민의 심연]

입력 2026-05-06 12: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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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째 이야기(-2)

2022년 9월 서울역 대합실에서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만난 정진석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전장연 유튜브
2022년 9월 서울역 대합실에서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만난 정진석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전장연 유튜브

2022년 9월의 일이다. 정진석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이 자리에서 난 정 전 위원장에게 "도대체 국민의힘은 왜 전장연에게 힘을 자꾸 실어주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직후 전장연과의 서울역 조우가 대서특필돼 전장연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하던 그쯤이었다.

그는 전장연이 뭐 하는 단체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냥 장애인단체라서 따뜻하게 대해줬다는 게 그의 반응이었다. 그날 저녁을 먹으며 난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전장연은 이동권 투쟁을 목표로 하고 있는 단체처럼 보이지만 실상 조직의 선전 무게는 '무조건적인 탈시설'에 두고 있다"는 점을 알렸다. 3세 이하 지능을 가진 장애인도, 음식물을 튜브로만 섭취해야 하는 장애인도 모조리 시설에서 나와 "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전장연이란 점을 말이다. 그는 진심 놀라는 눈치였다.

아마도 평범한 정치인이었다면 놀라는 척만 하고 그냥 권력만 향유했을 거다. 얼마 뒤 들은 소식은 조금 놀라웠다. 2023년 초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작은 장애인거주시설 설립 행사에 정 전 위원장이 방문하겠다는 일정을 들어서였다. 물론 일정이 꼬여 직접 방문을 하진 못했지만 전장연이 '수용시설'이라며 깎아 내리는, 가장 싫어하는 '장애인거주시설'에 집권여당 대표가 간다는 소식은 많은 장애인단체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특히 자신의 아이를 거주시설에 맡긴 부모들이 처음 한줄기 빛을 본 순간이었다. 드디어 전장연의 무조건적인 거주시설 폐쇄 드라이브를 막아줄 정치인을 찾은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정 전 위원장은 자신의 아이를 거주시설에 맡긴 부모단체를 국회로 초대해 민원을 듣고 실제 그들이 전장연과 맞설 수 있는 보탬이 돼 줬다.

2023년 3월 정 전 위원장은 최재형 전 의원과 국회에서 '장애인 거주시설의 합리적 운영방안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기까지 했다. 정 전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탈시설 정책은 당초 장애인 시설에서 벌어지는 각종 인권침해와 인권유린 문제를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지만 자립하기 힘든 발달장애인들을 어려움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건 장애인 당사자의 행복이다. 장애인의 인권과 거주선택권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제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국회의원으로 거주시설 장애인 손을 잡고 전장연과 투쟁한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정 전 위원장이었다. "장애인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언더 도그마에 빠져 다들 병든 닭처럼 방관만 하고 있을 때 용기를 낸 사람이 그였다. 그런 그가 지금 공천을 받는다고 하니 병든 닭처럼 방관하던 이들이 마치 공작처럼 날개를 펴고 "정진석은 안 돼"를 외치고 있다.

자신의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누군가를 밀어내는 건 그럴 법한 일이다. 그래야 자기가 당선 될 가능성이 조금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 사람을 공천하면 선거가 망한다"고 외칠 줄 아는 그 거대한 스피커는 왜 수백만명이 고통 받는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땐 그렇게도 조용했을까.

그들이 만약 전장연 시위로 수백만명의 발이 묶여 있을 때 시민 편에 서서 싸웠다면 "누구 때문에 전체 선거판 망가진다"는 말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수백만명이 이미 그들 편이었을 텐데 말이다. "누구 때문에 선거가 망가진다"는 말은 참 좌익적인 세계관이라고 생각한다. "내 능력으론 돌파가 불가능합니다"는 고백이랑 별반 다를 게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