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초대석-전병서] 미중 정상회담의 숨겨진 계산서

입력 2026-05-11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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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5월 14일, 트럼프가 베이징에 간다. 정상외교라고 부르지만 본질은 쇼핑이다. 그것도 타인의 돈으로 하는 쇼핑이다. 202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내주면 트럼프의 2기는 사실상 끝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반드시 베이징에서 선물 보따리를 안고 돌아와야 한다. 방산벨트를 위한 보잉 500대, 팜벨트를 위한 콩 대량 구매, 오일벨트를 위한 셰일가스 장기 계약 등 세 개를 중국에게 주문할 것 같다.

그런데 공짜 선물은 없다. 중국은 계산이 빠르다. 트럼프가 얼마나 급한지, 중간선거가 얼마나 가까운지, 공화당 표밭이 어디에 몰려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시장의 지혜는 단순하다. 팔려는 자가 급하면 값을 낮추고, 사려는 자가 급하면 값을 올린다. 지금 사려는 자는 트럼프다.

중국이 요구할 반대급부 목록은 이미 나와 있다. 레거시 반도체 수출 규제 완화, 대만 무기판매 축소 또는 연기, 관세 인하다. 이 세 가지는 미국 입장에서 주기 가장 쉬운 카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카드들이 실제로 테이블 위에 올라가는 순간, 청구서는 조용히 서울로 날아온다.

트럼프는 베이징에서 선물을 받고, 시진핑은 반대급부를 받는다. 그 거래의 영수증에 적힌 지불인은 한국이다. 레거시 반도체 규제가 풀리면 중국 메모리 기업의 생산 역량이 빠르게 회복된다. YMTC와 CXMT는 이미 레거시 기술은 있고 장비만 기다리고 있다. 장비가 들어오면 수율이 오르고 가격이 내려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레거시 라인 마진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다. 수십조를 들여 조성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투자 회수 시점을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

대만 무기판매 축소는 더 무서운 선례를 만든다. 미국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동맹의 안보를 담보로 쓴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이 방정식이 한국에도 언젠가 적용되리라는 냉엄한 현실이 드러난다. 트럼프가 베이징 회담에서 대만을 흥정 카드로 쓰는 순간, 핵우산은 실재하는가, 확장억제는 작동하는가라는 질문들이 한국의 안보 계산서 위에 올라온다.

관세가 내려가면 어떻게 되는가. 단기적으로는 중간재 수입 비용이 줄어 반가울 수 있다. 그런데 중장기로 보면 중국 완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살아나고, 제3국 시장에서 한국산 소비재와 가전을 다시 밀어낸다. 더 깊은 문제는 공급망 재편의 동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중국 리스크를 줄이겠다며 베트남, 인도, 멕시코로 이전한 공장들의 투자 논리가 흔들린다. 미중이 타협하면, 그 타협의 수혜는 미국과 중국이 나누고, 리스크 헤징 비용은 이미 이전 투자를 마친 한국 기업이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강대국 간의 빅딜에는 언제나 제3의 비용 부담자가 존재한다. 협상 테이블에 앉지 못한 자는 메뉴에 올라간다. 한국은 미중 협상 테이블의 참가자가 아니라 협상 결과의 수용자다. 이란전쟁의 청구서가 중동 소국들에게 날아갔듯 미중 담판의 청구서는 한국에 온다. 우리가 협상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게 국제정치의 잔인한 문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청구서를 거부할 수는 없지만 액수를 줄일 수는 있다. 반도체는 HBM과 선단 공정 초격차로 레거시 타격을 완충하고, 동맹 불안은 방산 투자와 수출 다변화로 헤징하며, 공급망 압박은 제3국 네트워크로 분산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중 어느 편의 눈치도 보지 않는 독자 외교 언어를 갖춰야 한다.

한 가지만 더 짚자. 미중 정상회담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한국 정부의 대응 속도가 관건이다. 과거 사드 배치 때처럼 미중 양측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다 경제 보복을 고스란히 맞은 전례가 있다. 이번엔 회담 전부터 시나리오별 대응 플랜을 갖추고 결과가 나오는 즉시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준비된 나라만이 청구서의 액수를 협상할 수 있다.

강대국이 술을 마시면 한국이 숙취를 앓는다고 했다. 강대국들의 술자리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숙취약은 미리 준비할 수 있다. 5월 14일 베이징에서 트럼프와 시진핑이 건배를 나누는 그 순간에도 서울의 계산기는 이미 돌아가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