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모의 모두를 위한 미술사]사진처럼 보이는 그림, 그림처럼 흔들리는 사진

입력 2026-05-08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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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리히터

게르하르트 리히터 작
게르하르트 리히터 작 "두 개의 촛불"

김석모 전 강릉 솔올미술관장
김석모 전 강릉 솔올미술관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는 "사진인가 하고 보면 그림이고, 그림인가 하고 보면 사진 같은" 모호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의 작품은 회화와 사진, 재현과 추상, 기억과 망각 사이의 경계를 끊임없이 흔든다. 리히터가 이러한 독특한 회화 세계에 도달하게 된 배경에는 그의 개인사와 독일 현대사의 격렬한 단절이 놓여 있다.

리히터는 1932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나치 독일의 붕괴와 전후 독일의 분단을 경험했고, 동독 공산 정권 아래에서 미술 교육을 받았다. 당시 동독의 공식 미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지향했다. 미술은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이라기보다 노동자, 농민, 사회주의 국가의 이상을 선전하는 도구였다. 리히터는 드레스덴 미술아카데미에서 벽화와 공공미술을 공부했지만, 이 체제 안에서 요구되는 미술의 방향에 깊은 한계를 느꼈다.

결정적인 전환은 1961년에 일어났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직전, 리히터는 갓 결혼한 아내 마리안네와 함께 동독을 떠나 서독으로 넘어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뒤셀도르프였다. 뒤셀도르프는 전후 서독의 경제 성장과 문화적 개방성을 상징하는 도시였고, 그곳 미술아카데미는 당시 유럽 현대미술의 중요한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리히터는 이곳에서 다시 미술 교육을 받으며 완전히 다른 시각 환경과 마주했다.

동독에서 그가 경험한 세계가 이념과 선전, 통제된 이미지의 세계였다면, 서독에서 그가 마주한 세계는 자본주의, 소비문화, 대중매체, 광고, 잡지, 사진 이미지가 넘쳐나는 세계였다. 1960년대 서구 사회는 전후 경제 성장 속에서 자동차, 텔레비전, 카메라, 잡지와 같은 대중문화의 매체가 급속히 확산되던 시기였다.

카메라는 사진가만의 도구가 아니라 가족, 여행, 여가, 일상의 기억을 기록하는 보편적 장치였다. 사진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듯하지만, 실은 선택되고 편집되고 조작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리히터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다. 사진을 회화의 대체로 보지 않았고, 그렇다고 단순히 회화의 모델로 삼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사진이 지닌 객관성의 환상, 기억의 불확실성, 이미지의 익명성에 관심을 가졌다. 신문, 잡지, 가족 앨범, 보도사진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기면서, 사진처럼 보이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 그림들은 언제나 흐릿하다. 선명해야 할 이미지는 번지고, 사실처럼 보여야 할 장면은 불확실해진다. 리히터 특유의 블러링 기법은 사진의 객관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동시에 회화가 여전히 이미지를 사유하는 강력한 매체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작업은 독일식 팝아트, 더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맥락과도 연결된다. 리히터는 지그마 폴케, 콘라트 뤼크 등과 함께 서독의 소비사회와 대중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미국식 팝아트가 광고, 상품, 스타 이미지를 비교적 명료하고 평면적으로 제시했다면, 리히터의 작업은 훨씬 더 차갑고 불안하며 역사적인 그림자를 품고 있다. 그의 회화 속 사진 이미지는 단순한 소비사회의 표면이 아니라, 전후 독일의 기억, 이념의 붕괴, 이미지에 대한 불신, 그리고 현대 회화의 가능성을 동시에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