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의 미각기행] 사찰음식 이야기

입력 2026-04-22 14:33:05 수정 2026-04-22 15:09:10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국민힐링식으로 각광
'약선음식' 붐과 함께 연동

사찰음식은 한국 국민표 힐링음식으로 급부상했다. 계절과 동행하는 신토불이식이랄 수 있다. 사진은 김천 청암사에서 내놓은 기본 밥상.
사찰음식은 한국 국민표 힐링음식으로 급부상했다. 계절과 동행하는 신토불이식이랄 수 있다. 사진은 김천 청암사에서 내놓은 기본 밥상.

절집음식. 질박할 수밖에 없다. 고기도 없고 늘 짠지에 된장, 두부, 괜찮은 날에는 국수에도 감동한다. 승가에서는 그 국수를 자신들을 미소짓게 한다 해서 '승소'(僧笑)라 한다. 참 운치가 있는 말이다. 초근목피의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그 절간음식이 국민힐링식, '사찰음식'으로 가광을 받고 있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 때문이다. 웨이브(Wavve)의 웰니스 야심작 '공양간의 셰프들'이다. '흑백요리사 시즌2'에서 '백수저'로 TOP7에 오른 선재 스님과 '셰프의 테이블'로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은 정관 스님을 비롯해 계호·적문·대안·우관 스님까지 내로라하는 6인의 사찰음식 명장이 모인 탓이다.

공양간 미학과 불교식 섭식의 정수랄 수 있는 발우공양 법기.
공양간 미학과 불교식 섭식의 정수랄 수 있는 발우공양 법기.

◆사찰음식 신드롬
사찰음식은 '약선음식' 붐과 함께 연동돼 발진됐다. 대한민국 사찰음식 명장 1호인 선재스님이 물꼬를 텄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붐을 일으키던 1993년. 간경화 말기로 시한부 진단을 받았지만 식습관을 바꿔 사찰음식을 통해 몸이 건강해진 스님이 덕분에 사찰음식 대중화에 매진할 수 있었다.

사찰음식이란 용어가 처음 공론화 되기 시작한 건 1990년부터. 그해 서울 리베라·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전국비구니스님이 모여 사찰음식 잔치를 벌였다. 국내 사찰음식의 선풍을 일으킨 선재 스님은 1994년 9월부터 불교TV에서 '선재스님의 푸른 맛 푸른 요리'란 프로를 진행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친다. 그해 펴낸 '선재스님의 사찰요리'(디자인하우스 간)도 일조한다.

이어 경남 산청 금수암 주지 대안 스님이 등장한다. 금당사찰음식문화원 원장인 대안 스님은 동국대에서 '사찰음식이 대중화 방안'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때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옆 사찰음식 전문점의 총책임자가 된다.

후발주자라 할 수 있는 정관 스님은 백양사 천진암에서 사찰음식세계화에 일조하고 있다. 얼마전 나온 그의 삶과 요리를 담은 책 '정관스님 나의 음식'(윌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앞서 80년대 서울 인사동에 전국 첫 사찰음식 전문점 '산촌'이 생긴다. 적묵 스님이 론칭을 한 것이다. 경주의 사찰음식점 향적원의 혜연 스님도 일명 '채소육개장'으로 불리는 '채개장'에 일가견이 있다.

백양사 천진암을 국제적 사찰음식 체험공간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정관 스님이 직접 마련한 한 상 차림.
백양사 천진암을 국제적 사찰음식 체험공간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정관 스님이 직접 마련한 한 상 차림.

◆사찰음식은 뭐가 다른가
사찰음식은 일반 음식과 어떻게 다른가. 부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음식을 크게 유정(有精)과 무정(無精)으로 나눈다. 유정은 동물이고 무정은 식물, 무정 위주의 식사를 하라고 가르친다.

'중일 아함경'에 관련 문구가 나온다. 음식이 각각 성품이 다르다고 적는다. 동적 식품으로는 육식과 생선, 어패류와 '오신채'(五辛菜, 파·마늘·달래·부추·흥거)가 대표적이다.

오신채는 익혀 먹으면 음심이 나고 날로 먹으면 성을 잘 내게 된다고 해서 승려들은 요리할 때 사용하지 않는다. 이 음식이 동적인 식품으로 분류되는데 술, 조미료, 설탕, 인스턴트 음식도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니 동적 식품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그럼 정적인 식품은 어떤 건가. 주로 채소류이다. 특히 콩과 두부는 훌륭한 식물성 단백질이다. 정적 식품은 다시 탁한 것과 맑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탁한 건 밀가루와 고추, 잣이나 호두 같은 기름진 것이다. 맑은 건 당연히 차(茶)다.

사찰음식 단골 메뉴 중 하나인 곰피튀각.
사찰음식 단골 메뉴 중 하나인 곰피튀각.

◆먹을 때 폼새

사찰음식은 먹을 때 자세가 평소와 좀 달라야 한다. 그냥 혀로 먹는 음식이 아니다.

부처는 3000년 전에 이미 신토불이를 강조하셨다. 사람은 무릇 자신이 태어난 곳의 것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건강할 때는 100리 안의 것을 먹지만 몸이 조금 안 좋을 때는 70리 안에서, 더 많이 아플 땐 30리 안의 것만을 먹어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특히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부터 가까운 자연에서 나는 산물이 가장 효력이 좋다.

절간에는 정말 각종 장류를 숙성시키는 옹기가 많다. 발효음식의 본거지라 할 수 있다. 조선 때 궁중 어의였던 허준은 조선 임금들이 오래 살지 못하고 40대에 세상을 뜨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누가 장수하는지를 찬찬히 살폈다. 스님들이 가장 오래 사는 걸 알게 된다. 그들에게 장수 비결을 물어봤는데 스님들은 좀처럼 알려주질 않았다. 자기들이 먹는 음식 때문이라고 하면 진상품으로 분류될까 염려가 된 것이다. '절대 진상하도록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스님들이 가리킨 것은 바로 장독대였다. 직접 담근 된장·고추장·간장이 바로 장수의 열쇠였던 거다. 이 때문에 장류 말고 메주는 진상품에 들어가게 된다.

달성군에서 대안 스님의 도움을 받아 개발했던 사찰음식비빔밥.
달성군에서 대안 스님의 도움을 받아 개발했던 사찰음식비빔밥.

◆발우공양
사찰은 장류과학의 출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모든 음식에 오신채를 쓰지 않는 만큼 맛을 내기 위해서는 장이 필수적이다. 사찰에서 담그는 김치는 고춧가루 외에 간장으로 맛을 낸다. 파·마늘·부추는 물론 액젓도 쓰지 않으니 맛을 내는 유일한 조미료가 장류인 셈. 둘째는 보관이다. 먹을거리가 한정된 사찰에선 한겨울에도 채소의 영양분을 부족함 없이 채우기 위해 장아찌 같은 저장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셋째는 에너지 문제다. 육식을 하지 않는 스님들이 채식으로만 힘을 얻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충해 주는 것이 발효음식인 장류인데 특히 콩으로 만든 메주는 질 좋은 단백질의 보고이기도 하다.

절집안만의 전통 식사법이 있다. 바로 '발우공양'(鉢盂供養)이다. 일반인은 발우공양이 언감생심. 고작 템플스테이를 통해 단기출가를 하면 그 과정의 일단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발우공양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친환경적인 식사법이다. 예상보다 꽤 공양 과정이 무척 디테일하고 의미심장하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두 우바새(여성 신도)로부터 최초의 공양을 받는다. 이때 사천왕이 돌그릇을 각기 하나씩 부처님께 드렸고, 부처님은 이 발우 네 개를 포개어 사용했다고 한다. 그 후 부처님 제자들도 부처님을 따라 네 개의 발우를 써서 공양을 하는 전통이 생겨났다고 한다.

'발우'(鉢盂)는 뭔가. 스님들이 쓰는 그릇을 말한다. '발'(鉢)은 범어로 '응량기'(應量器)라 번역된다. 이는 '수행자에 합당한 크기의 그릇'이란 뜻이다. '우'(盂)는 '밥그릇'이라는 뜻의 한자이다.

발우는 포개지는 네 그릇으로 구성된다. 큰 순서대로 어시발우·국발우·청수발우·찬발우이다. '어시발우'에는 밥을 담고, '청수발우'에는 '청수'라고 불리는 물, '국발우'에는 국, '찬발우'에는 반찬류를 담는다.

공양 할 때는 발우를 들고 입이 보이지 않게 먹으며 떠들거나 씹는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공양을 다 마칠 때쯤에 숭늉을 돌리기 시작하는데 발우에 묻은 기름기를 제거하기에 좋다. 남겨놓은 무 조각이나 김치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발우를 깨끗이 닦아 숭늉을 마시고 맨 처음에 받았던 청수발우의 물을 어시발우에 부어서 국·찬발우 순서로 차례차례 물을 옮겨가며 손으로 닦는다.

공양을 다 마칠 때쯤에 숭늉을 돌리기 시작하는데 발우에 묻은 기름기를 제거해야 된다. 남겨놓은 무 조각이나 김치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발우를 깨끗이 닦아 숭늉으로 마신다. 맨 처음에 받았던 청수발우의 물을 어시발우에 부어서 국·찬발우 순서로 차례차례 물을 옮겨가며 손으로 닦는다. 청수물로 찬발우까지 다 닦았으면 청수통에 찌꺼기 없이 맑은 청수물만을 부어서 모아놓는다. 이때 만약 모아놓은 청수물에 작은 찌꺼기라도 있으면 그 청수통에 물을 부은 줄에 앉은 모두에게 다시 청수물을 나눠 마시게 한다. 마지막으로 '해탈주(解脫呪)'를 외면 공양이 끝난다. 발우공양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친환경적인 식사법이다.

◆공양간 미학
규모에 따라 전국에 지역별로 25개 본사(큰 사찰)가 있고, 각 본사 관할 구역에 소속되어 있는 말사(작은 사찰)가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에 등록된 사찰은 지역별로 서울 280여 개, 경기 490여 개, 강원 200여 개, 충청 460여 개, 경상 1천420여 개, 전라 470여 개다. 물론 그 절마다 고유한 공양간 문화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절 업무가 워낙 많아 스님이 다 감내하기 어렵다. 속인의 힘을 빌려야 할 데가 한두 곳이 아니다. 공양간을 책임지는 공양주도 예전에는 스님의 몫인데 이젠 세인의 몫이 되고 있다.

몇 년 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수도산 북쪽 불령동천 암반에 깃든 청암사. 거기에 멋진 '공양간'을 취재하고 온 적이 있다. 공양주는 일단 밥을 짓기 전에 정성을 올린다. 공양간을 굽어 살피고 있는 부뚜막신인 조왕께 올리는 조왕경을 읊으며 불을 지핀다. 물론 공양간 부뚜막 위에 조왕단이 설치돼 있다. 일반인에겐 생소한 민화다. 조왕신을 가운데로 하고 왼쪽 '담시역사'(擔柴力士)는 땔감 만드는 역할을 담당한다.

공양간 소임 용어는 참 재밌고 흥미롭다. 스님들은 맡은 일에 따라 직책이 주어진다. '공양주'(供養主)는 밥, '채두'(菜頭)는 반찬, '갱두'(羹頭)는 국, '정두'(淨頭)는 해우소, '욕두'(浴頭)는 목욕물 소임이다. '불목하니'는 땔감 나르고 불 때는 머슴인데 요즘은 행자가 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공양주는 일명 '반두'(飯頭)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