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우 시인·소설가
대체 뭣 때문에. 민수 씨는 한숨을 내쉽니다.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좀 떨어진 카페에 와서 블랙커피와 베이글을 주문했습니다. 블루베리 크림치즈를 듬뿍 바른 베이글은 아무 맛도 없습니다. 단 걸 먹으면 좀 나을까 싶어 딸기 케이크를 추가 주문했지만 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민수 씨의 입맛이 이처럼 뚝 떨어진 건 연희 씨 때문입니다. 지지난 주 소개팅에서 만난 연희 씨와 엊그제 세 번째 데이트를 했습니다. 비록 두 시간 남짓의 짧은 데이트였지만 정말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취향도 비슷했습니다. 둘 다 앙드레 가뇽의 연주를 좋아했고 청국장을 좋아했으며 심지어 셍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은 횟수도 같았습니다. 두세 번도 아니고 여덟 번이나 읽을 정도면 감성 또한 닮은꼴이라 여겼습니다. 그 생각을 밝혔을 때 연희 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근데 대체 뭣 때문에. 문득 여행 얘기를 했던 게 생각났습니다. 지난달 영월에 갔다 왔습니다. 민수 씨는 영월의 동강을 동편제로, 서강을 서편제로 묘사했습니다. 내가 좀 잘난체했나? 하지만 그때 연희 씨는 근사한 비유라며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고 했더랬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굳이 한 가지 들자면 무슨 말끝에 "연희 씨, 말귀가 되게 어두운데요?"라고 했던 것. 연희 씨는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습니다.
여행을 갈 형편이 못 된다는 연희 씨의 말에 "저는 가벼워진 주머니를 여행에서 얻은 감동으로 채워 넣지요"라고 했습니다. 연희 씨가 영월에 못 갈 정도로 가난하다 여기지 않았으므로 '형편'을 슬쩍 '주머니 사정'으로 비틀었던 것입니다. 그냥 웃자고 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연희 씨가 민수 씨의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문자나 메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수 씨는 애가 탔습니다. 똥볼을 찬 게 분명해.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민수 씨는 퇴근 후 소개팅을 주선한 지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연희 씨가 혹 여행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트라우마는 무슨. 연희 씨는 여행 갈 형편도 못 돼. 사실 소개팅도 시간이 없다는 걸 간신히 설득한 거야" 연희 씨가 했던 말과 비슷했습니다. "형편이 못 된다니?" 민수 씨의 물음에 지인은 "참 안됐어" 그 말부터 꺼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민수 씨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농담이라는 경기의 골대 규격은 골키퍼의 조건에 맞춘다는 것. '이제 어쩌지?' 지인이 했던 말이 귓전을 맴돌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데 어머니가 청각장애인가봐. 언어장애도 있는 데다 요즘 거동이 불편하다지 아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