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 후폭풍…수출 덮친 '에너지·물류 쇼크', 산업계 전방위 위기

입력 2026-04-20 17: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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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중동사태로 수급 차질이 생기고 있는 석유화학 산업 핵심 원료 나프타에 대해 수출 제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모습. 연합뉴스
정부는 중동사태로 수급 차질이 생기고 있는 석유화학 산업 핵심 원료 나프타에 대해 수출 제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모습.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지연되면서 산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공급망 관련 응급 대책으로 버티기 힘든 위기가 전방위로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 해운·수출 전선까지 번진 '물류 쇼크'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가 해운과 수출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산업계 물류 전선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해상 운송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원자재 수급은 물론 완제품 수출까지 동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20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현재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발이 묶인 한국 선박은 26척, 선원은 173명에 달한다. 봉쇄 장기화 시 선박 회항이나 대체 항로 확보가 필요하지만, 항로 변경에 따른 운송 기간 증가와 비용 상승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단순한 지연을 넘어 공급 계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운임 상승도 현실화하고 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상승세를 이어가며 해상 물류 비용 부담을 키우고 있다. 중동 리스크가 반영되며 보험료와 유류할증료까지 동시에 오를 가능성이 커, 물류비 전반이 급등하는 구조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 구조상 해상운임 상승은 곧 가격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대기업은 장기계약으로 일부 방어가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은 스폿(일회성) 계약 비중이 높아 운임 변동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지역 섬유 한 섬유 업체 대표는 "운임이 오르면 납품 단가를 맞추기 어려워 수출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 우회로를 확보해도 사실상 수출이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여기에 물류 차질과 원자재 가격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채산성 악화도 심화하고 있다. 원가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운송비까지 상승해 산업 전반의 연쇄 충격이 현실화 될 수 있다는 것.

지역 산업계 한 관계자는 "4월까지 비축 재고가 있어서 버티겠지만 5월이 넘어가면 장담하기 힘들다. 원자재 가격이 오른 만큼 납품 단가에 반영도 어려운 탓에 중소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4일 중동 사태에 따른 폴리에틸렌 등 원료 수급 불안 영향으로 최근 일시적으로 인원 감축 운영에 들어간 경기 안산시의 한 비닐봉투, 종량제 봉투 제조 공장 내 가공 작업대의 불이 꺼져있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나프타 도입 차질로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감산에 나서면서 국내 플라스틱 가공업체들이 어려움에 처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중동 사태에 따른 폴리에틸렌 등 원료 수급 불안 영향으로 최근 일시적으로 인원 감축 운영에 들어간 경기 안산시의 한 비닐봉투, 종량제 봉투 제조 공장 내 가공 작업대의 불이 꺼져있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나프타 도입 차질로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감산에 나서면서 국내 플라스틱 가공업체들이 어려움에 처했다. 연합뉴스

◆ 정유·석유화학 업계 위기…임시 처방 한계

중동산 석유와 나프타 재고분이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는 정유 및 석유화학 업계는 최악의 경우 연쇄 가동 중단 사태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커져 비상이 걸렸다.

전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비축유 방출 없이 4~5월을 넘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으나, 이미 사태가 한 달을 훌쩍 넘기고도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는 데 따라 향후 상황을 예단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추후 비축유를 풀어 설비 가동을 이어갈 수 있다고 해도, 치솟는 국제유가와 원재료 가격 탓에 비용 부담이 급등하고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석유 최고가격제가 3주째를 맞으면서 정유사들이 원료비와 수송비 등 손실을 보고 있는 데다, 수출 제한 조치까지 도입되면서 위험 회피 수단도 극히 제한된 상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종전 기대로 유가 안정을 예상했으나 협상 결렬과 긴장 고조로 시장 실망감이 큰 상황"이라며 "우회 경로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대체 유종으로 수요가 몰려 가격이 폭등하면 부르는 게 값이 될 수 있어 5∼6월 이후의 원유 수입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대체 선적과 비축유 스와프(교환) 등을 통해 4월 수입 절벽은 어느 정도 해소하겠지만, 5월 이후 물량 확보가 걱정"이라며 "중동산 원유 비중이 70%에 달하는 상황에서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수입 다변화만으로는 100% 물량을 커버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석화업계 역시 단기 대응으로 상황을 버티고 있지만 사태 장기화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최근 정부가 확보한 미국산 원유 등이 국내에 도착하면 나프타 수급에 다소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이번 이란 해상봉쇄로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현재 미국, 아프리카, 유럽 등에서 스폿 물량을 끌어모으고 있는데 여기에 중국까지 합세하면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다"며 "나프타 가격이 전쟁 전보다 80%가량 오른 상황에서 추가 부담 확대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최근 추경 예산에 8천691억원을 편성해 나프타 수입단가 차액 일부를 보전하기로 했으나, 어디까지나 일회성 비용일 뿐 사태 장기화에 대한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