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공원 이전 하세월…동물들 박제 당한 듯 미동도 없어

입력 2026-04-14 17:05:03 수정 2026-04-14 18: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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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배 넓어진다지만 1년 반 더 버텨야…달성공원 동물들의 하루
"탈출 못 하게"보다 "살 수 있게"…동물원 패러다임 전환 요구

14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어린이들이 낮잠 자고 있는 사자를 구경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14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어린이들이 낮잠 자고 있는 사자를 구경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14일 오후 대구 중구 달성공원 동물원. 평일인데도 공원에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적잖게 이어졌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동물 배설물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오래된 철창은 녹이 슬어 있었고, 동물사 주변에는 물이 고인 자국과 먹다 남은 사료가 뒤섞여 있었다. 한 관람객이 엎드린 채 미동도 없는 물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는 잠만 자네."

우리 안 동물들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좁은 철제 동물사 안의 코요테는 같은 자리를 따라 쉼 없이 오갔다. 10여 분 동안 지켜봐도 움직임은 같았다. 앞으로 걷다가 방향을 틀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옆 우리에 있던 너구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물개 한 마리는 마치 박제라도 당한 듯 미동도 없었다. 동물원을 둘러보는 내내 반복적인 정형행동과 무기력 증세를 의심할 만한 장면들이 이어졌다.

14일 오후 달성공원 동물원의 물개는 오랜 시간 미동도 없는 모습이었다. 신중언 기자
14일 오후 달성공원 동물원의 물개는 오랜 시간 미동도 없는 모습이었다. 신중언 기자

달성공원 동물원은 오래전부터 시설 노후화와 동물권 침해 문제가 지적돼 온 곳이다. 1970년 조성된 이후 큰 폭의 시설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신라시대 사적지인 달성토성 내부에 위치해 개·보수에도 제약이 따른다. 현재 이곳에는 67종 652마리의 동물이 사육되고 있다. 이전 계획이 잡혀 있는 만큼 개체 수를 무리하게 늘리기보다 기존 동물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공원 측 설명이다.

달성공원 관계자는 "최근 환경청 안전 점검을 받았고, 분기별로 탈출 방지 훈련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노후 시설 자체가 안고 있는 한계를 단기간에 해소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대구시는 수성구 대구대공원에 신규 동물원을 조성해 달성공원 동물들을 이전할 계획이다. 대구대공원 동물원 조성공사는 2024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새 동물원은 기존 달성공원(약 12만9천700㎡)보다 약 10배 넓은 부지에 조성될 예정이다. 특히 방사장은 달성공원보다 5.7배, 건물 내부 규모는 4.3배가량 넓어진다. 현재 기반 공사가 진행 중이며 2027년 말 완공, 2028년 5월 개장이 목표다. 이는 전시 동물들이 앞으로도 최소 1년 반가량은 기존 시설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 동물원은 안전성 강화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구도시개발공사 관계자는 "동물사 하부는 암 성토나 콘크리트 구조로 최대 2m 깊이까지 보강해 굴착을 통한 탈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계획"이라며 "탈출 방지 기능을 강화한 사육시설을 설계·제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설계 변경 등에 따라 완공 시점이 일부 조정될 수는 있으나 전체 사업 일정에는 차질이 없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동물권 단체들은 새 시설 조성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현재 상황에서 당장 할 수 있는 문제부터 찾아 개선해야 한다"며 "단순히 공간을 넓히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각 동물의 특성에 맞는 복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먹이주기 체험이나 만지기 체험은 지양하고, 새 동물원으로 이전하더라도 개체 수를 늘리기보다 현재 있는 동물들의 복지를 우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환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국장은 "야생 동물을 포획해 관람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전근대적인 발상"이라며 "이상적인 형태는 자연 상태에 두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야생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개체들은 생태에 맞게 보호·관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을 가둬놓고 구경하는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며 "이 같은 인식 변화에 맞춰 단순 전시 중심의 동물원에서 벗어나 '생추어리(Sanctuary)' 등 보호 중심 시설로의 전환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