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했던 벽이 끝내 바람에 무너진다 해서, 어찌 벽을 탓하랴. 책임은 바람이 비집고 벌릴 틈을 방치한 이들에 있다.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벌어지는 보수진영의 자중지란에 지역 선거구도가 덩달아 요동치는 형국이다. 국민의힘이 여론조사 상위권 주자들을 일찌감치 컷오프한 후폭풍일까. 반반 싸움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워진 판세 속, 3파전을 넘어 '4파전'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주호영 의원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법원 판단과 공관위 재심 기각 결정에 반발하며 무소속 출마 의지를 쉬이 접지 않고 있다. 이미 벌어진 감정의 골과 지지층 분화 탓에, 추후 보수 단일화 또한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설령 이뤄낸대도 이들의 '화학적 결합력'이 얼마나 될지가 미지수다.
반면 여권 단일 후보로 확정된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연일 '우클릭'을 시도하는 등 '약한 고리' 공략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실망한 보수 유권자들마저 끌어안겠다는 뻔한 전략임에도, 이대로라면 유효타로 작용할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 "공천 농단" "시민경선 받겠다" 예고된 컷오프 불복
박덕흠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 3일 6·3 지방선거 대구시장 경선을 이미 공천 배제한 주 의원과 이 전 위원장을 뺀 6명의 후보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이날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는 주 의원이 당을 상대로 낸 공천 배제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고, 공관위 역시 이 전 위원장의 재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국민의힘의 대구시장 후보는 유영하·윤재옥·이재만·최은석·추경호·홍석준 등 총 6명의 경쟁자가 예비 경선에 진출, 이 중 2명이 최종 경선을 치러 결정될 전망이다.
박 공관위원장은 주 의원과 이 전 위원장을 향해 "지방선거 승리와 대구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호소했지만, 반발을 막진 못했다. 주 의원은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둔 입장문을 냈다. 이 전 위원장은 한 술 더 떠 출마 강행 의지를 드러냈다.
주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영환 충북지사에 대한 법원의 인용 결정에 비춰 볼 때, 법원의 (기각)판단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헌법, 정당법, 공직선거법과 우리당 당헌에서 '공천절차는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규정'은 장식으로 전락했다"고 적었다.
이어 "사법부가 우리 정당의 비민주성, 정치권의 끝없는 공천 농단을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쉽다"며 "재판부 결정문을 세밀하게 분석한 뒤, 대응 방향을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전 위원장은 공관위 발표를 "6·3 지방선거를 패배로 이끄는 자폭결정"이라고 규정한 뒤 "당심과 민심을 따르지 않는 당대표는 당대표가 아니다. 이진숙은 대구시민의 민심을 따라 '시민경선'을 통해 대구시민들의 선택을 받겠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컷오프 이후 무소속 출마 의지를 꾸준히 다져온 두 사람이 이제는 출마 강행의 기로에 올라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 "못 먹어도 고?" 하나의 보수, 이미 물 건너갔나
보수진영에서는 두 사람 중 하나라도 출마할 경우 선거 승리가 사실상 어려워진다고 우려한다. 이미 세 결집에 성공한 김 전 총리와의 양자 대결도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표 분산은 곧 필패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설득을 통한 재단일화도 난항이 예상된다. 컷오프 과정에서 당과 후보들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데다, 각 후보들이 대표하는 지지층이 최근 국민의힘이 겪고 있는 분열 양상과 비슷하게 나눠 떨어진다는 점 또한 부담이다.
정치권에서는 주 의원이 출마할 경우 한동훈 전 대표와의 '무소속 연대'를 구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주 의원 사퇴로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수성구 갑 지역구에 한 전 대표가 출마해 공동전선을 꾸린다는 시나리오다.
당사자들의 언급도 있었다. 주 의원은 지난달 27일 JTBC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제가 공천에서 최종 탈락하고 무소속 출마를 결심하면 한 전 대표도 무소속이니 서로 협력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며 "한 전 대표 측근들과 우리 참모진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 역시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나와 관련 질문에 "우리는 이미 연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주 의원이 한 전 대표(및 친한계)와 손을 잡을 경우 '강성 보수'가 주 지지층인 이 전 위원장과는 대척점에 서게 된다. 양자 간 단일화나 협력도 사실상 어려워진다. 계파 경계를 뭉뚱그리는 단일 공천보다, 한 번 나뉜 상태에서 다시 합치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에 더해 '당권파'를 비롯한 당원 다수의 지지가 예상되는 '공천 후보'와 이들의 결합도 그간의 난맥상을 볼 때 낙관할 수 없다.
물론 주 의원과 이 전 위원장 입장에서도 보수 패배의 원흉, 즉 '배신자' 프레임이 출마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보수 후보들의 지지율 합이 과반을 달성하고도 김 전 총리에게 1위 자리를 내준다면 최악의 결과를 맞는 셈이다.
대구의 한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주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최소 10% 이상은 득표할 것"이라며 "3자 구도라면 대구까지 민주당이 차지할 수 있고, 주 의원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짚었다.
◆ 박정희·박근혜·홍준표…'올인' 선언한 김부겸, 거침없이 동진
보수진영의 내홍이 깊어지는 사이 김 전 총리의 '단독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 김 전 총리는 "이번 대구시장 선거가 내 정치인생 마지막 과제"라고 못박았다. 대권 도전의 꿈을 접으면서까지 총력전을 펼치겠다는 의미다.
김 전 총리가 초반 레이스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보수 지지세가 확연한 지역 유권자들도 보수 후보가 난립하는 사이 김 전 총리의 '회초리론(보수 심판)'과 '선물 보따리론(정부 협력·경제 발전)'에 귀를 기울이는 모양새다.
단일 후보 자리를 재빨리 꿰찬 덕에 컨벤션 효과도 누리고 있다. 김 전 총리는 지난달 31일 발표된 대구시장 적합도 여론조사 다자 대결에서 1위를 기록했다.
리얼미터가 TBC 의뢰로 지난달 28~29일 대구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4명을 대상으로 '대구시 발전을 위해 누가 당선되는 것이 가장 적합한지'를 물었다. 그 결과 응답자의 49.5%가 김 전 총리를 선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보수 지지도는 분산되면서 2위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15.9%)과 김 전 총리의 격차는 33.6%p(포인트)에 달했다. 3위 유영하 의원 등 타 후보들은 모두 한 자릿수 지지도를 보였다.
김 전 총리는 여섯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도 모두 과반을 기록하며 이들을 적게는 26.1%p, 많게는 34.7%p 격차로 따돌렸다. (오차범위는 95%신뢰수준에 ±3.5%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물론 적은 표본과 낮은 응답률은 감안해야겠지만, 여권 후보의 전례 없는 선전은 대구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기에는 충분하다.
내친김에 김 전 총리는 보수 성향 유권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혀가고 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지선언을 받아낸 데 이어, TK정치를 상징하는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김 전 총리는 2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엑스코라고 부를 바에야 '박정희 엑스코', '박정희 컨벤션센터'라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박정희 컨벤션센터 건립은 김 전 총리가 지난 2014년 대구시장에 처음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도 제안한 공약이다.
또 김 전 총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만남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김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이 지역 원로시니까 찾아뵈려고 한다"며 국민의힘 경선이 마무리되는 대로 유영하 의원을 통한 예방을 주선하겠다는 구상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