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대낮 도보로 캐리어 끌고 이동…대구역·시장 인접 자연스러웠을 듯
구속영장실질 심사 법원에 모습 드러낸 피의자 부부 '묵묵부답'
"가정 내 종속 관계, 다른 구성원 피해 가능성 우려해 드러나지 않아"
함께 살던 장모를 폭행해 사망케한 뒤, 대구 신천변에 유기한 '캐리어 시신' 사건을 계기로 '존속 살해' 범죄가 도마에 올랐다. 최근 존속 관계에서 발생하는 중범죄는 전국적으로 끊이지 않는 가운데, 가정 내 발생하는 범죄와 피해는 발견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관계기관과 이웃 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돌봄과 선제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의자 동선 따라가보니
2일 낮 12시쯤 대구 중구 중심부에 있는 한 교차로 오피스텔 건물. 굳게 닫힌 중앙 현관 유리문에는 '외부인 출입 금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중앙현관에서 세대 호출을 한 뒤, 방문하려는 세대에서 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중앙현관 유리 너머로는 세대 호수가 적힌 우편함 수십개가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일부 세대는 한참 동안 입주자 발길이 끊긴 듯 수많은 우편물들이 주인을 찾지 못한 채 꽂혀 있었다. 오피스텔 건물 1층 상가에는 작은 테이크아웃 커피숍과 프린트 가게가 있어 한눈에 봐도 젊은층이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피의자인 A(20대)씨 부부는 이 건물에서 피해자인 50대 장모와 함께 살았던 것으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8일 오전 10시쯤 피해자가 사망한 걸 확인하고는 같은날 낮 12시 13분 시신이 담긴 캐리어를 끌고 도보로 칠성동 잠수교 신천까지 이동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이들 부부가 범행을 저지른 비슷한 시간대 평일 낮, 그들의 동선을 따라가봤다. 거주지는 대구역에 부근에 위치해 있고 인근에는 공사 중인 건물도 많았다. 지하도를 지나면 바로 칠성시장으로 통했다. 칠성시장 상인들과 대구역 승객들이 뒤섞여 발걸을음 재촉하는 곳으로 평일 낮 회색 캐리어를 들고 걸어가는 젊은 부부는 전혀 어색할 게 없어 보였다.
피의자 거주지에서부터 시신유기(발견) 장소까지는 약 708m로 캐리어를 끌고 간 점을 감안하더라도 도보로 20분 안팎정도 걸렸다.
칠성시장 초입에는 농산물 상가, 꽃집, 주방기구, 인쇄출력사, 조명매장 등 각종 매장들이 자리잡고 있다.
시신 유기 장소인 칠성잠수교 인근 신천둔치공영주차장이 가까워지자 대부분 주방 설비 다루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업소용 대형 주방싱크대, 환풍기, 에어컨이 보도 위에 늘어서 있어 행인들의 이목을 피해 다니기 쉬워 보였다.
시장 특성상 봇짐을 메거나 큰 비닐가방, 손수레, 트럭,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사람 많았다. 이들 틈에서 A씨 부부도 자연스럽게 범행장소까지 이동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근 상인들에 따르면 시신 발견 지점 인근은 외지인들도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이곳에서 15년 넘게 주방설비 작업장을 운영해온 신모(65) 씨는 "주민들이 동네를 다닐 때도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도 하는 곳이다. 낮시간대 캐리어를 끄는 모습은 특이할 게 없다"면서 "대부분 상인들이 몸 쓰는 일을 하다 보니 관심 밖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다른 상인 역시 "중고 주방설비를 가공해 되팔 수 있도록 작업하는 상점가가 대부분이다. 주방설비 재활용 작업을 하는 곳은 타 지역에도 거의 없어, 여기까지 오는 외지인도 많다"고 했다.
인근 칠성시장 소곰탕 골목도 점심 때인만큼 손님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인근 공사장이나 상인들 위주의 손님들은 식사를 빨리 끝내고 휴식을 취하려 바삐 숟가락을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트럭과 탑차에서는 물건 상하차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A씨 부부는 캐리어로 시신을 유기장소까지 끌고 왔을 것이다.
유기 현장 바로 옆 상인들도 "경찰차가 오고, 사람들이 말을 해주면서 알았다", "사건 당일에도 전혀 몰랐고 이상한 낌새도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A씨 부부는 이날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대구지법 손봉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사위 A씨와 딸 B씨에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진행했다.
A씨는 오전 9시 35분쯤 남색 모자에 흰 마스크, 남색 자켓을 입은 채 법원 청사에 들어섰다. A씨는 '장모를 왜 살해했는지', '미안하지 않은 지' 등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고 법정 안으로 들어섰다. 공범 관계인 B씨는 동선 분리를 위해 약 30분 뒤 법원에 나타났다. 검은 바람막이를 입고 검은 모자를 쓴 채 출석한 B씨 역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날 대구지법은 심사를 마치고 부부를 상대로 모두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대구지법 관계자는 "피의자 부부 모두 도주 우려가 있으며, A씨는 장시간 폭행으로 피해자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의 중대성이, B씨는 남편의 지속적, 장시간 폭행을 방임 및 범행 가담이 인정된다"고 구속 사유를 설명했다.
◆'존속범죄' 예방, 이웃·기관 유기적 대응 필요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24년 전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10건 중 1건은 존속살해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274건 가운데 존속살해는 총 28건으로 10.2%로 집계됐다. 같은 해 살인미수 사건은 498건이며 이 중 존속 관계에서 발생한 사건은 32건(6.4%)이었다. 이 밖에도 상해사건 전체 1만9천578건 중 301건(1.5%), 폭행사건 11만5천254건 중 1천737건(1.5%)이 존속 관계에서 발생했다.
대구에서도 지난 10년(2015~2024년)간 살인 사건은 연간 10건 안팎으로 발생했다. 이중 존속살인도 해마다 2~3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특히 2021년 서구 10대 손자의 할머니 존속살해 사건에 이어 5년 만에 다시 자식이 부모를 살해에 이르게 하거나 시신을 유기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가정 폭력, 가출, 스토킹과 같이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범죄에 대한 예방은 특정 기관에서 전담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웃을 비롯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위험 신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A씨 부부가 거주하는 오피스텔은 한 층에 30세대가 밀집해 있는 구조였지만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거주민이 대부분이었다. 이날 현장에서 마주친 주민들은 주로 20대로 보이는 젊은 층이었으며, 이웃 간 교류는 거의 없는 모습이었다.
같은 건물 주민은 "(피의자 세대가)평소 시끄럽다거나 문제 있는 집으로 알려진 적은 없었다"며 "입주자 인증을 거쳐 들어가는 거주자 단체 채팅방에서도 사건 기사를 접한 이후 놀랐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해당 세대에 대해 평소 행태를 언급하는 글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곳은 월세가 30만원 수준으로 비교적 저렴해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지만, 이웃 간 교류는 활발하지 않다"며 "거주 6개월 동안 경찰차를 5차례 정도 봤는데, 특정 세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음 등으로 신고가 잦은 것 같다"고 했다.
피의자와 같은 층에 사는 주민들 역시 "같은 층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해당 세대와의 접촉이나 대화 경험도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또다른 주민은 "이곳은 이사도 잦고 본가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아 주말마다 이동하는 주민들이 많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모습도 흔해 특별히 이상하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박동균 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평상시 불만이 쌓여 지속적으로 폭행이 여러 회에 걸쳐 일어났을 수 있다. 내밀한 가정 상황이나 형편은 단절된 사회에서 서로의 관심 밖이다"라며 "정서적 종속 관계, 수치스러움, 다른 가족구성원들의 피해·보복 가능성 등 우려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신호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의 경우 지난해 9월 있었던 피해자 남편의 '가출신고'가 위험신호였을 수 있다. 다만 위기 가구 관리는 단순히 경찰만의 역할이 아니라 지자체, 보건소, 동네 통장 등 이웃사회와 관계 기관들이 유기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부분"이라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