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으며 자란 어린 시절… '평범함'이 꿈이었던 김수원 씨
전 남편 실직·사업 실패 반복… 5천만원 날리고 빚만 남아
자궁암·이혼까지… 50년 된 낡은 아파트에서 아들만 바라보며 산다
둘째 언니는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 뻔했다. 언니 나이 고작 8살 때 있었던 일이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의 논리는 이랬다. 자기가 쌀통에 돈을 넣어뒀는데, 그걸 언니가 훔쳤다는 것이다. 우리 네 자매는 그 사실을 몰랐고, 애초에 쌀통에 돈을 뒀다는 말 자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근거 없는 헛소리였다. 하지만 언니는 그 이유로 머리가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맞았다. 다 맞고 나서는 8개월 동안 입원 치료까지 받았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아이가 실제로 돈을 훔쳤더라도, 아이를 때려눕히지 않는 부모가 분명 존재하겠지. 아마 대부분의 평범한 부모, 평범한 가정은 그러할 것이다. 그렇게 아주 오래 전부터 내 꿈은 '평범해지는 것'이 됐다.
◆폭력과 가난… 결혼 후에도 따라온 생활고
김수원(가명·47) 씨는 경북 고령에서 네 자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알코올 중독에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수원 씨가 5살 무렵 집을 떠났다. 이후로는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듬해 가족은 대구로 이사했고, 아버지는 점점 증상이 악화돼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네 자매는 할머니 손에 자라게 됐다.
할머니 혼자 네 자매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11평 남짓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몸을 부대끼며 살았다. 옷은 늘 중고로 얻어 입었고, 대학 진학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제약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던 수원 씨가 남편을 만난 건 20대 후반 무렵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남편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일식 요리사라는 직업과 하얀 가운을 입고 일하는 모습이 번듯해 보였다.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수원 씨에게 '다정하고 가정적인 남자'는 오랜 바람이었다.
연애 시절 남편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는 듯 보였다. 수원 씨가 몸이 좋지 않아 약속을 취소한 날이면, 바쁜 와중에도 직접 만든 초밥이나 전복죽을 봉지에 담아 문고리에 걸어두고 가곤 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기대와 전혀 달랐다. 남편은 사장과의 갈등, 업무 부담 등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기를 반복했고, 수입은 불안정해졌다. 생활은 빠르게 무너졌다.
수원 씨는 제약회사에서 모은 돈과 퇴직금, 보험까지 모두 털어 생계를 이어갔다. 퇴직금 2천500만원을 포함해 약 5천만원에 달하던 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회사에 다닐 때 1등급이던 신용은 결혼 이후 줄곧 신용불량 상태로 떨어졌다.
그 사이 남편은 무리하게 PC방 창업을 추진했다. 첫째 언니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6천만원을 빌렸지만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고, 빚만 남았다. 결국 돈을 갚지 못해 언니와의 인연도 끊겼다. 빚 독촉 전화는 고스란히 수원 씨가 감당해야 했다.
◆암과 빚… 이혼 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고통
독박육아와 생활고로 쌓인 스트레스는 결국 몸을 무너뜨렸다. 생활고로 얻은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지금도 앓고 있다. 2016년엔 지속적인 하혈과 기침 끝에 병원을 찾은 수원 씨는 자궁암 진단을 받았다. 암은 이미 폐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8개월간 항암 치료를 받은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약 1천만원에 달하는 치료비는 또다시 빚으로 남았다.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남편은 수원 씨 명의로 식당을 차렸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며 경영이 악화됐고, 결국 4년 만에 문을 닫았다. 남은 빚 1억800만원은 수원 씨의 몫이 됐다. 현재 개인회생 절차를 통해 매달 36만원씩 갚고 있지만, 친구에게 빌린 1천800만원의 빚도 여전히 남아 있다.
2022년 이혼 이후에도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거의 50년 된 낡은 아파트에서 아들 은재(가명·18)와 단둘이 살고 있다. 기초생활수급비와 고물상 일을 합쳐 월수입은 약 200만원 수준이지만, 둘이 살기엔 빠듯했다. 보일러가 자주 고장 나고 단열이 되지 않아 겨울이면 집 안에서도 패딩을 입고 지내야 하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그래도 수원 씨에게는 은재가 있었다.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은재는 팀 테스트를 거치며 데뷔를 준비 중이다. 온라인 코칭을 받으며 실력을 키우고 있지만, 매달 60만원에 달하는 학원비 부담에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가 바라는 것은 여전히 단순하고 소박했다. 겨울에 패딩을 입지 않아도 되는 집, 그리고 아이가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평범한 가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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