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슴체'가 기본" 문해력 흔들리니 사고력·글쓰기 모두 붕괴

입력 2026-03-24 17:05:28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코로나 이후 더 심화… 초등부터 대학까지 번진 문해력 이슈
교원 10명 중 9명은 "과거보다 학생 문해력 저하"
사고·글쓰기까지 약화… AI 의존 속 악순환

챗GPT 생성 이미지.
챗GPT 생성 이미지.

"코로나19 이후로 더 심각해진 것 같아요."

학생 문해력 저하 문제는 교육 현장 최일선에 있는 교사들이 가장 크게 체감하고 있었다.

유년 시절 코로나19를 겪은 학생들이 학습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초를 충분히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스마트폰과 영상 콘텐츠에 더 많이 노출되면서, 읽기와 사고의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사들은 이러한 문해력 저하가 사고력과 표현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으며, 단순한 체감을 넘어 구조적 문제로 굳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2024년 한글날을 맞아 전국 초·중·고 교원 5천8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조사'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확인된다. 응답자의 92%(5천372명)가 과거보다 학생들의 문해력이 저하됐다고 답했으며, 이 중 2천299명은 '매우 저하', 3천73명은 '저하'라고 인식했다.

실제로 교사들은 학교급을 막론하고 문해력 저하가 수업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학생들이 단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한 차시 내내 어휘 설명에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문제 길이가 긴 서술형 문항은 아예 포기해버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어뿐 아니라 수학, 과학 등 다른 과목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26년째 교단에 서 있는 중학교 수학교사 A씨는 "일상 대화나 수업 중에도 '이 정도 단어도 모른단 말이야'라고 느끼는 순간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특히 문제를 '읽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설명이다.

A씨는 "요즘 학생들은 문제를 읽고 해석하기보다 학원에서 배운 풀이 기술을 먼저 떠올려 적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체감상 문제를 끝까지 읽고 의미를 파악하는 학생은 20~30%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 속 조건이나 단서를 찾아내려는 시도를 하는 학생은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며 "문제가 길어질수록 오답률이 높아져 최대한 조건을 쉽게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해력 저하는 글을 토대로 사고하는 능력과 이를 표현하는 글쓰기 능력 저하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역 6년 차 초등교사 B씨는 "글쓰기를 시키면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한다"며 "6학년인데도 일기를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학원에 갔다'는 식으로 단순 나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감상문 역시 '재밌었다', '감동적이었다' 수준에 머물며 생각을 구체화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는 학습 환경과 교육 구조가 지목된다. B씨는 "학생들은 국어·수학·영어 학원은 많이 다니지만 독서나 논술처럼 문해력과 직결된 학습은 거의 하지 않는다"며 "선행학습 중심 교육이 사고력과 표현력 증진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활용 확산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해력은 읽기에서 사고와 표현으로 이어지는 능력인데, 자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AI에 의존하면서 사고 과정 자체가 생략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채예송 경북대 중등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예전에는 문장이 다소 어설퍼도 학생이 직접 고민해 쓴 글이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최근엔 개요는 잘 작성하면서도 본문은 추상적이고 내용이 빈약한 글이 늘고 있다"며 "겉으로는 잘 쓴 글처럼 보이지만 알맹이가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생들이 스스로 읽고 생각하기보다 AI에 주제를 입력해 답을 받아온 뒤 이를 정리해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기 생각을 덧붙여 글을 완성하는 모습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교과서 중심 수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체계적인 진단 도구와 교육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양진오 대구대 문화콘텐츠학부 교수는 "중·고등학교 교육이 여전히 빠르게 정답을 찾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읽고 이해하고 질문하는 과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며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오면서 문해력 '체력'이 약한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를 활용하면 책을 읽지 않고도 요약된 내용을 접할 수 있어 '읽은 것 같은 착각'을 줄 수 있다"며 "이로 인해 실제로 읽고 이해하는 과정이 더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학이 과거처럼 문해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문해력 교육은 대학이 아니라 초등 단계부터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