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대의 건축인문기행] 도살장에서 문화의 숲으로-파리 라 빌레트 공원

입력 2026-03-18 20: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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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북측 산업과학박물관과 구형 지오드는 유럽 최대 규모의 미래 첨단 산업 과학관이다.
공원 북측 산업과학박물관과 구형 지오드는 유럽 최대 규모의 미래 첨단 산업 과학관이다.

파리 북동쪽 외곽 '작은 마을'이라 불렀던 '라 빌레트'가 21세기 도시공원 '라 빌레트 공원(Parc de la Villette)'이 되었다. 공원에 들어서서 조금만 걸어보면 단순한 녹지 공원이 아님을 곧 깨닫게 된다. 넓은 잔디 위로 아이들이 뛰어 다니고, 과학관 앞에는 학생들이 긴 줄을 서고, 저녁 잔디밭에서는 영화가 상영되고. 콘서트홀로 향하는 관객들이 모여든다. 이곳은 '도시안의 자연 공원' 뿐 아니라 '문화가 살아 움직이는 작은 도시'이다.

라 빌레트 공원은 파리가 선택한 문화 도시계획의 결정판이다. 과거 산업의 흔적, 혐오시설인 도살장 가축시장을 철거하여 흔적을 완전히 바꾸는 대신, 그 바탕 위에 새로운 문화의 미래를 심었다. 새로이 변신한 이곳은 전 세계 도시재생의 표본으로 불린다.

파리 라 빌레트 공원은 과거의 도살장 가축시장의 장소에 새로운 문화 도시로 재생한 도시공원이다.
파리 라 빌레트 공원은 과거의 도살장 가축시장의 장소에 새로운 문화 도시로 재생한 도시공원이다.

◆파리, '도시개조'에서 '그랑 프로제'로

1,800년대 중반의 파리는 급격한 근대화를 맞는다. 나폴레옹 3세 정권의 행정가 오스망은 파리 도시개조사업의 주역이다. 개선문 중심의 방사형 도로 구축과 건물 높이 제한, 지하 하수도망 건설 등 세계 최초의 방어적, 위생적, 근대도시를 구축했다. 이때 도시 안 비위생적 도축장 가축시장을 외곽으로 이전한 곳이 바로 라 빌레트였다.

세월이 흘러 산업구조가 바뀌어 옮겨진 도살장 가축시장은 폐쇄되고 거대한 빈 땅과 낡은 구조물이 한동안 폐허로 방치되었다. 도시계획 과정에서 과거 산업 유산들을 철거하고 주거 상업시설로 바꾸지만, 파리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문화예술 도시'로의 결단이었다.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파리만국박람회 개최와 에펠탑이 세워졌다. 200주년 기념의 '그랑 프로제(Grand Projets)'는 미테랑 대통령의 파리 문화 도시 건설이었다.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오르세 미술관, 바스티유 오페라하우스, 프랑스 국립도서관, 그랑 아르쉐 등 지금의 현대 건축들을 10여년에 걸쳐 세웠다. 이 때의 라 빌레트 공원은 최대 면적 규모 프로젝트였다. 나폴레옹 3세의 19C 도시개조가 '토목적 근대화'였다면, 20C 그랑 프로제는 '건축적 현대화'였다. 고전 근대 현대가 공존하는 파리, 오늘의 문화예술 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근대 파리의 운하는 공원 축을 이루며 점, 선, 면 3요소가 공원의 공간 질서를 구성한다.
근대 파리의 운하는 공원 축을 이루며 점, 선, 면 3요소가 공원의 공간 질서를 구성한다.

◆공원의 개념을 바꾸다

공원에는 우르크 운하가 두 갈래로 흐르고 있다. 과거 도살장 시기에는 불결한 하수처리장 이었던 운하, 지금은 공원을 가로 지나는 청정한 물의 공간이며, 건축 조경 산책로 배치는 운하 축(軸)을 기반으로 한다. 직선, 곡선, 구불구불한 산책로, 도로, 조경은 운하 축의 배치 구성은 칸딘스키의 추상 작품을 연상케 한다. 설계자는 점, 선, 면 세 가지 요소를 배치 기본 구성으로 한다.

▷ 점- 가로 세로 120미터 그리드(grid)의 교차점에는 형태가 각각 다른 빨간색의 26개 조형 건축 폴리가 배치한다. 폴리(folie)라는 건축 용어가 여기서 처음 등장하게 된다.

▷ 선- 공원 서측의 세로 경계, 공원 동 서로 흐르는 운하(하천)는 굵은 축 선이다. 그 축을 기반으로 직선 곡선 구성의 도로 산책로 회랑 조경요소들이 이리저리 엇갈리며 지나간다. 무질서 삐뚤음 괴팍함 불량함이 해체주의(解體主義)건축으로 공식화되는 현장이다.

▷ 면- 넓은 잔디광장, 숲의 광장, 놀이 공간, 건축물 또한 넓은 면을 구성하고 있다. 다양한 공간 질서 속에서도 주인공은 잔디광장이다. 여름의 야외 잔디밭에서는 영화제가 열린다. 2024년 파리 올림픽 기간에는 세계 건축전시행사 등 다양한 문화 행사 공간이었다.

120m 교차점마다 배치된 26개 조형 건축
120m 교차점마다 배치된 26개 조형 건축 '폴리'는 공원의 좌표이자 방향을 찾는 기준점이다.

◆해체주의, 폴리(folies)

라 빌레트 공원 국제 설계공모 당선자는 조경가가 아닌, 스위스 출신 건축가 베르나르 츄미(Bernard Tschumi)였다. 중심축 질서를 강조하던 전통 정원과 달리, 도시적 구성의 해체주의 공원을 설계하였다. '자연을 모방하는 장소'가 아닌 '사건과 활동이 일어나는 도시'의 해석은 현대 철학자 쟈크 데리다의 해체주의 사상을 도입한 인문학적 설계 컨셉이었다.

120미터 간격의 그리드(grid) 교차점마다 배치된 26개의 조형은 각각 형태가 다른 빨간색 건축(구조물)이다. '폴리(folie)'라는 건축개념을 탄생시킨 조형이 곧 라 빌레트의 상징으로 필요 있는 듯, 없는 듯 모호한 기능이다. 2011년 광주 디자인비엔날레에서 세계 건축가들을 초청하여 '광주폴리'를 도시 곳곳에 세웠다.

폴리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공원 전체를 조직하는 좌표이자 방향을 찾는 기준점이다. 자연 풍경과 인공 구조, 색채, 간격, 통일, 반복, 리듬의 조형미학이다. 조형건축은 정보센터, 카페, 전시, 의료, 관리 등의 기능들도 있다. 1988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해체주의 건축' 전시에 해체주의 폴리 26개가 세워진 프로젝트로 유명해졌다.

라 빌레트 공원의 상징, 빨간색 폴리 스케치.
라 빌레트 공원의 상징, 빨간색 폴리 스케치.

◆과학과 예술이 공존하는 공원

완성된 지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미래공원으로 인식되어 있다. 금기시했던 에나멜 빨강 색상의 폴리 조형물, 기둥 벽 지붕이 기울어지고 건축 일부가 떨어져 나간 기이한 해체주의 건축, 번들거리는 붉은 형광 불빛들 아래에 서면 마치 외계 세상인 듯하다.

'공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이곳저곳의 문화 클러스터를 찾아 가본다.

▷과학산업박물관- 미래 기술과 첨단과학 체험 박물관은 유럽 최대 규모의 과학관이다. 건립 당시, 프레임 없는 와이어 유리 커턴 월, 직경36m 원구(圓球) '지오드' 영상관은 첨단 기술 건축은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랜드 홀- 근대 파리 변화를 목격해온 도살장 역사 유적 물로 지정된 철골건물이다. 건축 원형을 보존하며 멀티 프로젝트 기능으로 개조, 시네마 영상 등 젊음의 문화공간이다.

▷제니스 파리- 초기 임시 조립구조로 설계되었으나 명성과 인기로 인해 영구적인 공연장이 되었다. 한국의 아이돌, K-pop 공연이 최근에도 열리는 공연장이다.

▷뮤직 시티- 남쪽 끝 영역 포잠팍이 설계한 '파리 국립음악학교'는 우리나라 '한예종'처럼 프랑스 공연 예술을 선도하는 기관으로, 공연 음악문화 관련 시설의 건축이다.

이 건축 완성 후 '그랑 프로제' 프로젝트에서는 제외되었다. 진보와 기술, 즉 프랑스가 세계에 내세우는 진보와 하이테크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건축가는 몇 년 후 프리츠커상을 받게 된다.

▷파리 필하모니- 세계적인 음악 공연이 열리는 장 누벨 설계의 가장 늦게 세워진 콘서트홀 건축이다. 관람객들은 숲속 언덕 위, 미래 환상적 음악 세계로 들어가는 분위기이다.

해체주의 산책로 조형 구조물 스케치
해체주의 산책로 조형 구조물 스케치

◆시대 기억과 품격의 공원

세계의 도시 공원은 그 나라 시대와 역사를 기억하고 말한다. 파리 베르사이유는 제왕의 사냥터에서 호화궁전 정원이 되고서 왕권 몰락과 시민혁명에 이르게 했다. 역시 왕실의 사냥터 연회장이었던 런던 하이드파크는 세계 최초 산업박람회와 수정궁이 세워졌던 공원이다. 지금은 매년 세계적 건축가 1인을 선정, '서펜타인' 갤러리 건축 작품이 세워지는 공원이다. 21C 뉴욕 맨허턴의 중심 센트럴파크는 세계 최고 도시의 인프라이자 정신적 허파이다.

프랑스 공연 예술을 선도하는 음악도시 스케치
프랑스 공연 예술을 선도하는 음악도시 스케치

서울 용산, 주한 미군 반환의 땅은 앞으로 어떠한 공원으로 탄생 할지를 지켜보게 된다.

건축가·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