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한 사모대출 시장, AI 혁신에 디폴트 공포
블루아울·블랙록·모건스탠리 환매 줄줄이 제한
국내선 한국투자·삼성증권 해외 크레딧 상품 리테일 판매 주도
"시스템 위기 가능성 낮지만 지속 모니터링 필요"
인공지능(AI) 기술 혁신이 월가에 뜻밖의 공포를 몰고 왔습니다. 최근 미국 금융시장에서 약 2조달러 규모로 급성장한 사모대출(Private Credit) 펀드들이 줄줄이 투자자들의 환매(자금 회수) 요청을 거절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건데요.
단순한 개별 펀드의 유동성 부족을 넘어 AI 발전이 기존 기업들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이것이 금융 부실로 이어지는 나비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최근 불거진 사모대출 환매 중단 사태의 전말은 무엇이며, 왜 제2의 금융위기 뇌관으로 지목되는 걸까요.
◆"돈 못 돌려줘" 환매 문 걸어 잠근 월가…AI가 쏘아올린 부실 공포
최근 글로벌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운영하는 사모대출 펀드에서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 러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모대출은 은행이 아닌 자산운용사나 사모펀드가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기업에 직접 돈을 빌려주는 금융 기법을 말합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규제 강화로 사모대출 시장은 은행의 빈자리를 파고들며 약 2조달러 규모의 거대 그림자 금융 시장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와중에 최근 미국 사모대출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비율은 1월 기준 5.8%까지 상승했는데요. 부도율이 수년 내 지금의 2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입니다.
부실 우려의 방아쇠를 당긴 건 미국의 자산운용사 블루아울캐피탈입니다. 지난달 19일 비상장 BDC인 'OBDCⅡ'의 분기별 환매를 종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 11일 미국 사모대출 투자사 클리프워터는 330억달러 규모의 사모대출 펀드의 1분기 환매 한도를 14%에서 7%로 제한했습니다. 블랙록과 모건스탠리도 사모대출 펀드에 환매 요청이 몰리자 한도를 5%로 제한했습니다.
자산가와 기관 투자자들이 다급하게 돈을 빼려는 핵심 원인 중 하나는 바로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입니다.
그동안 미국의 사모대출 펀드들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의 인수합병이나 운영 자금으로 막대한 돈을 빌려주며 수익을 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앤트로픽의 클로드 플러그인 등 생성형 AI 서비스가 고도화되면서 기존 레거시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사업 모델이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습니다.
AI가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가치를 훼손하자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사모대출 펀드의 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진 것인데요. 대출의 기초 자산이 되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대규모 환매 사태를 촉발한 셈입니다. 사모대출 시장에서 환매 요청이 쇄도하며 블루아울, 블랙스톤 등 주요 운용사 주가는 급락했습니다.
◆사모대출 시장 구조 취약점 노출…펀더멘털 점검 필수
AI의 위협이 이번 사태를 촉발했지만 월가에선 시장 구조 자체에도 취약점이 수두룩하다고 비판합니다.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장부상 몸집을 불리기 위해 대출 문턱을 과도하게 낮추고 개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인데요.
사모대출 시장의 가장 큰 문제로는 부실한 기업도 받아주는 대출 계약 조건이 지목됩니다. 운용 자금을 키워 수수료를 늘리려는 사모펀드들이 재무적 안전장치를 완화한 '코브라이트' 대출 조건으로 기업 부실을 떠안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지적입니다.
또한 현물 지급(PIK) 대출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로 꼽힙니다. PIK는 현금 여력이 없는 좀비기업들이 현금 대신 채권이나 주식으로 이자를 갚을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운용사들은 이자 수익을 현금으로 받지도 못하면서 장부에만 이자를 지급받은 것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개인 투자 자금의 불안정성 문제까지 직면해 있는데요. 애초 사모대출은 기업개발회사(BDC) 형태의 폐쇄형 펀드에 7~10년 정도 자금을 묶어두는 기관투자가들만의 시장이었지만 기존 큰손인 연기금이나 보험사들의 출자가 한계에 다다르자 운용사들은 고수익을 추구하는 고액 자산가들의 패밀리오피스로 시장을 확대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 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투자증권은 2023년부터 미국 최대 PE 칼라일과 손잡고 사모대출 펀드를 국내에 들여와 국내 펀드화해 계열사 자금 3000억원, 리테일 자금 1500억원을 투입했는데요. 또한 삼성증권은 블랙스톤을 비롯해 아폴로·아레스 등 글로벌 톱티어 PE 크레딧 상품을 잇달아 론칭하며 국내 개인 대상 적극 판매에 나서왔던 만큼 국내에서도 이번 펀드런 사태의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다만 대규모 환매 요청 등은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금융 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각에선 최근 AI 리스크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글로벌 시스템 위기로 번질 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오는데요.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사모 신용 펀드의 약 20%가 AI 부문에 일정 부분 투자하고 있지만 평균적인 펀드의 총 포트폴리오 대비 AI 익스포저는 아직 10% 미만에 머물러 있어 펀드 전체를 파산시킬 만한 임계점은 아닙니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사모신용 펀드에 대한 연쇄 환매 요청과 더불어 JP모건의 사모신용 대출 한도 축소 소식에 관련 리스크 경계가 지속되고 있다"며 "은행들이 사모펀드에 집행한 대출은 대부분 선순위 담보여서 일부 펀드 투자 기업이 부실화되더라도 연기금, 보험사 등 투자자 손실에 그칠 가능성이 높지만 일부 취약 기업들은 유동성 조달 차질로 경영 여건이 악화될 여지가 상존하는 만큼 앞선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 현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