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로 상엿집 등 전통문화 보존 활동으로 '큰 울림' 남긴 조원경 나라얼연구소 이사장 별세

입력 2026-03-14 18: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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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뻔한 상여와 상엿집 보존해 국가 민속자료로 지정 받아
종교와 전통, 민족정신을 연결하는 독특한 길을 걸어온 목사

하양무학로교회에서 설교를 하던 생전의 조원경 목사. 나라얼연구소 제공
하양무학로교회에서 설교를 하던 생전의 조원경 목사. 나라얼연구소 제공

감리교회 목사이면서도 한국 전통문화, 특히 유교 상례(喪禮)와 민속문화 보존에 깊은 관심을 갖고 평생을 헌신한 조원경 하양무학로교회 담임목이자 (사)나라얼연구소 이사장이 13일 대구타피마병원에서 급성 폐렴으로 별세했다. 항년 69세.

조 목사는 1957년 12월 3일 경북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해창 조명국(1883~1954)은 1919년 3월 26,27일 청송 안덕 화목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이끌다가 2년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부친 조성대(1916~2006)씨는 민족혼을 지키기 위해 일제시대 일본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신사참배거부로 감옥을 4번이나 갔다.

부친과 조부의 영향을 받아 어린시절 밥상머리에서 애국가 4절까지 다 불러야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이 몸에 배었다. 한학자인 소천 서길택씨에게 20년간 한문을 사사했다.

조 목사는 계명대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했고, 영국 세필드대학에서 신학 연구원으로 유학한 후 귀국했다. 이후 영남대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안토니오 까발레로의 천주교와 유교의 비교 연구)를 취득했다. 그는 한학자인 소천 서길택씨에게 20년간 한문을 사사했다.

소박한 묵정초당에 단정히 앉아 있는 조원경 목사.매일신문 DB
소박한 묵정초당에 단정히 앉아 있는 조원경 목사.매일신문 DB

그는 1986년 경산 하양읍에서 하양감리교회를 개척했고, 2019년 건축가 승효상의 설계로 15평짜리 하양무학로교회를 지었다.

조 목사는 하양감리교회를 연 이후 올해 삼일절까지 40년 동안 매년 삼일절과 광복절이 끼인 주일 예배 때는 그 기념일의 의미를 기리며 신자들과 만세삼창을 하는 전통을 이어 왔다. 교회와 민족정신을 연결하는 활동이었다.

그는 교회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해 왔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쉼터와 저소득층·한가정 자녀들을 위한 하양아동센터를 오랫동안 운영했다. 매주 목요일 국수 나눔을 15년 동안 했다.

조 목사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 전통 문화 발굴과 보존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쏟은 실천가였다.

인류학자이자 종교학자인 그레이슨 교수가 제자인 조원경 목사(오른쪽)와 함께 경산 상엿집에서 한국상례문화 관련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진만기자
인류학자이자 종교학자인 그레이슨 교수가 제자인 조원경 목사(오른쪽)와 함께 경산 상엿집에서 한국상례문화 관련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진만기자

뜻을 같이하는 황영례 박사 등 10여명과 함께 2007년 1월 사단법인 국학연구소 대구경북지부를 유치, 무학산에 문을 열고 고문 역을 맡았다. 이 이때부터 대학교수와 학자, 종교인 등 다양한 인사를 초청해 매월 인문학 특강을 열어 지금까지 210여회의 특강을 이어오고 있다.

국학연구소 대구경북지부는 다양한 활동을 하기 위해 독립된 단체로 거듭날 필요성을 느끼고 2012년 9월 (사)나라얼연구소로 출범했고, 조 목사가 이사장을 맡았다.

조 이사장은 2014년 고서적 경매 사이트에서 '갑진일록'이라는 한문 일기를 발굴했고, 일기 주인공이 전남 고흥의 임재당 선비라는 밝혀내고 이듬해 번역서인 '나 죽어서 당신 만나면 이 슬픔 그치겠지요'를 출간했다.

특히 조 이사장은 생전 '특별한' 일을 했다. 근대화로 사라질뻔 했던 동네에서 상이 났을 때 사용하는 상여(喪輿)와 상엿집을 보존해 국가문화재로 지정하는데 기여했다. 이는 전통문화 보존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안목 때문에 가능했다.

원래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에 있던 지은지 300년 이상이 된 상여와 상엿집은 철거 직전까지 갔었는데 조 이사장과 인연이 닿아 2009년 3월 이를 트레일러를 동원해 경산 무학산 중턱으로 옮겨 그대로 다시 지었다. 이 상엿집은 상여와 상례 관련 여러 문서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우리나라 상례문화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아 2010년 국가지정 민속문화재 제266호로 지정됐다.

조 이사장은 이 상엿집을 활용해 우리나라 전통 상여 문화의 전승과 세계화 방안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나라얼연구소는 2014년부터 국내외 학자들을 초청해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그는 수십년동안 수집 발굴한 자료 1만1천여점을 2022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증해 근대사 연구 자료로 활용되도록 했다.

하양무학로교회가 2019년 5월 26일 새 성전을 지어 봉헌 감사 예배를 드렸다. 예배 전 내빈들이 교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삼화 삼한C1 대표이사, 건축 설계를 한 승효상 건축가, 조원경 목사, 돈관 은해사 주지, 강택규 원로신부, 우동기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 최재림 경북향교발전협의회장, 황영례 이 교회 장로. 김진만 기자
하양무학로교회가 2019년 5월 26일 새 성전을 지어 봉헌 감사 예배를 드렸다. 예배 전 내빈들이 교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삼화 삼한C1 대표이사, 건축 설계를 한 승효상 건축가, 조원경 목사, 돈관 은해사 주지, 강택규 원로신부, 우동기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장, 최재림 경북향교발전협의회장, 황영례 이 교회 장로. 김진만 기자

이처럼 조 목사의 삶은 단순히 교회를 중심으로 한 종교 활동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종교와 전통, 민족정신을 연결하는 독특한 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오늘날 무학산에 보존된 상엿집과 관련 민속 자료 등 사라져 가는 전통 속에서 한국인의 얼을 지키려 했던 그의 노력은 종교를 넘어 지역사회와 문화계에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

유족은 부인 박영숙 씨와 아들 조동화(전남대 연구원) 씨, 며느리 강수진(삼성창원병원 의사) 씨 등이 있다. 빈소는 경북 경산시 하양읍 하양전문장례식장 3층, 발인은 16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영천시 화남면 용계리. 053-857-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