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겨레신문에 실린 임우진 건축가의 칼럼 '편리함의 역설, 불편함의 미학: 우리는 아파트에서 무엇을 잃어버렸나'를 보며 황당함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칼럼에 담긴 본인의 아름다운 추억 소개와 더불어 아파트라는 주거형태가 가진 '편리함의 역설'을 논하고자 했는데 그 내용에 상당 부분 과학적인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겨울에도 덥기까지 한 과잉 난방은 신체의 체온 조절 능력을 떨어뜨려 아이들을 계절마다 감기에 시달리는 허약 체질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이건 면역학의 기본과 거리가 멀다. 아이들이 감기에 자주 걸리는 이유는 학교나 어린이집 같은 밀폐된 공간에 오래 있어 실내 바이러스 농도가 높아지고 낮은 습도 때문에 점막이 건조해져서다. 실내 온도가 높아서가 아니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는 실내 온도로 18~24도를 권장하는데 이는 체온 조절 능력 훈련이 아니라 호흡기 건강을 위한 것이다. 특히 겨울철 극도로 건조한 한국에선 적절한 실내온도 유지와 더불어 실내 습도 유지가 필수다. 보건복지부도 아이가 있는 가정의 겨울철 실내 환경을 기온 20~24도, 습도 40~60% 유지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감기에 걸리느냐 안 걸리느냐의 차이는 추위 노출이 아니라 적절한 실내 환경 유지에 있다.
그는 "문턱을 없애는 건 일상적인 근육의 쓰임새를 제거해 기초 근력마저 약화 시킨다. 우리는 연약한 '생명체'가 돼 간다"며 문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운동생리학과도 거리가 먼 주장이다. 근력 발달과 유지에 필요한 건 저항 운동과 충분한 신체 활동이지 일상의 미세한 불편함이 아니다. 실제로 근감소증 연구는 의도적인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집안의 단차를 권장하지 않는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얼마든지 공원을 산책하고, 계단을 오르고, 아이와 바깥 놀이를 할 수 있다.
더구나 65세 이상의 노인 손상 관련 병원 입원 절반 이상은 낙상과 관련이 있다. 노인 낙상 사고의 주요 원인이 바로 이 문턱이다. 대한노인재활의학회는 문턱과 작은 계단을 최대한 없애고 실내를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을 정도다.
그는 아파트 같이 '스마트'한 세상 탓에 건강한 신체와 예민한 감각, 그리고 집에 얽힌 아름다운 추억을 잃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임우진 건축가가 아파트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파트가 편했기 때문이 아니라 소년기 이후의 일상이 정서적으로 덜 강렬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10~30세 기억이 더 선명하다는 연구 결과를 우린 '회상 융기 현상'이라고 부른다. 뇌 발달 단계와 생애 첫 경험의 특성 때문이지 주거 형태 때문이 아니다.
신경과학에서 기억 형성에 중요한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감정적 각성'과 '의미부여'다. 해마와 편도체가 감정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장기 기억으로 우선 전환하기 때문이다. 임우진 건축가의 논리라면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란 현재 3040세대는 모두 기억 결핍에 시달려야 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아파트 놀이터에서 했던 술래잡기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옆집 할머니의 다정한 인사, 베란다에서 본 도시 야경을 또렷이 기억한다. 중요한 건 공간의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서의 관계와 경험이다.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은 낭만화된 불편함이 아니라 안전한 환경과 능동적인 활동의 결합에서 온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글은 잘못된 인식을 마치 '감기 바이러스'처럼 퍼뜨린다. 특히 "일상의 불편함이 건강을 만든다"는 주장은 인과관계를 착각한 전형적인 논리 오류다. 사상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그 기반이 과학적 오류에 근거한다면 틀린 글이 된다. 불편함을 추억으로 미화하는 아름다운 글은 건축이 아니라 문학의 영역이어야 한다.
백광락 원자력공학자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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