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양승진] 대통령님, 부탁드립니다

입력 2026-03-01 14:15:45 수정 2026-03-01 14: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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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진 사회2부 기자

용의 눈물. KBS유튜브 캡쳐.
용의 눈물. KBS유튜브 캡쳐.
양승진 사회2부 기자
양승진 사회2부 기자

여말선초(麗末鮮初)는 오래전부터 창작자들의 주요 소재였다. 그때를 다룬 영화·드라마 중 으뜸은 단연 '용의 눈물'이다. 요즘도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될 때면 종종 즐겨본다. 처음 본 게 7~8세였으니, 30년 애청자다. 드라마 배경 중 제1차 왕자의 난 때가 가장 재미있다.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은 정적(政敵) 정도전을 제거한 그날 밤 대신들의 입궐을 기다리고 있다. 대신들 한 명, 한 명이 궐문을 넘을 때 그가 고개를 저으면 철퇴가 번쩍인다. 고개를 끄덕이면, 그 재상은 제 자리를 찾아 앉는다. 살아남은 자는 안도의 한숨을, 죽은 자가 내지르는 비명 넘어 살생부(殺生簿)에는 O·Ⅹ가 교차됐다.

고갯짓 한 번에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갖게 된 이방원. 이복동생을 둘이나 죽이고, 창업 군주인 아버지를 몰아낸 낸 한밤의 '패륜' '역모'가 '혁명' '거사'로 탈바꿈했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한밤중 난리는 600년 뒤에도 있었다. 뜬금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취임 직후부터 시작된 (당시) 야당의 탄핵 공세, 예산 삭감 등 2년 6개월의 고뇌(苦惱)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의 계엄 선포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가 영원한 영어(囹圄)의 몸이 될 듯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정권 교체 이후 공무원이, 군인이, 경찰이 겪는 고초 때문이다.

아무도 입 밖으로 쉽게 내지 못하지만, 현재 집권 세력은 그의 오판(誤判)에 따른 가장 큰 이익을 누리고 있다. 피선거권 박탈, 수백억원의 선거비용 반환 등 궁지에 몰렸던 그들이 하루아침에 권력을 잡았다. 입법부에 이어 행정부도 장악했다. 87체제 들어 가장 강력한 권력 집단이 탄생했다.

정권을 잡은 뒤에도 '내란몰이'는 계속되고 있다. 전임자를 향한 칼끝은 당연히 이해한다. 권력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길어야 10년일 텐데, 자를 수 있을 때 '싹'을 잘라야 한다.

그런데, 그저 국가의 명령을 따른 이들의 옷도 벗겼다. 계엄 '연루' '관여'의 족쇄를 씌웠다. 장성(將星) 14명이 군문(軍門)을 떠났다. 떨어진 별이 30개가 족히 넘는다. 무궁화(경찰 계급장) 100송이가 꺾였다. 부산과 경북은 치안 책임자가 열흘 넘게 '자리 비움' 상태다.

전시(戰時)도 아닌데, 심사위원회 같은 절차 없이 징계가 이뤄졌다. 프라이드(pride)를 새로 꾸린 사자(lion) 같다. 피비린내 나는 숙청(肅淸)은 동서고금 어디든 있었다. 그래도, 승자(勝者)의 아량이, 절대자(絶對者)의 여유가 필요해 보인다.

정도전을 죽인 이방원은 그의 아들은 살려줬다. 정도전의 아들 정진은 태종 이방원의 아들 세종대에 형조판서까지 역임했다. 그 후손도 고관대작(高官大爵)을 지냈다. 정도전도 결국 복권됐다.

군인은, 경찰은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 명령이 설령 잘못됐다손 치더라도 따르는 게 군인이고, 경찰이다. 군인이, 경찰이 국가의 명령에 가치를 판단하는 선례를 남겨선 안 된다. '정치 군인' '정치 경찰'은 그때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모두의 대통령'을 약속했다. 구호에 그칠 '국민통합'이 아니라 진심이라면 평생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명령에 복종해 온 군인·경찰의 명예를 지켜줘야 한다. 그들은 죄가 없다. 군인다움이, 경찰다움이 죄가 될 순 없다.

"대통령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