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성한기] 최치원의 '인무이국'을 생각한다

입력 2026-03-02 14:00:14 수정 2026-03-02 14:4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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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기 대구가톨릭대 총장

성한기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대구경북대학교육협의회장)
성한기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대구경북대학교육협의회장)

3월 개강에 맞춰 교내 개교 100주년 기념광장에 국기게양대 57개를 설치했다. 57은 개교 이후 본교에 온 외국인 유학생과 방문학자 등의 출신 국가와 국기, 교기를 포함한 숫자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이 근년 들어 많이 늘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한민국에 대한 호감과 매력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리적 면적을 넘어 우리나라가 그만큼 큰 나라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은 출신 국가와 상관 없이 모두 소중한 구성원인데도 한국 학생과 유학생, 출신 국가별 유학생 사이에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있어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 보여 아쉽다. 마음으로는 서로 다가가 좋은 친구가 되고 싶겠지만 낯설고 어색한 느낌에 그냥 바라보는 데서 그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이 같은 분위기에 떠오르는 사람이 9세기 신라 출신 당나라 유학생 최치원이다. 그는 12세 때 혼자 배를 타고 당나라 국제도시였던 장쑤성 양저우에서 공부했다. 부모의 권유나 강요에 따른 유학이 아니라 공부를 좋아한 자신의 의지였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도 그럴 것으로 짐작된다.

놀라운 점은 최치원이 당시는 물론이고 1천 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양저우를 넘어 중국 전체에서도 매우 사랑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양저우시가 2007년 정부 지원을 받아 최치원 기념관을 짓고 매년 기념행사를 열면서 그를 기리는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최치원이 28세까지 16년 동안 보여준 공로가 특별하다고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치원이 남긴 글 가운데 '인무이국'(人無異國)이라는 표현이 있다. 사람은 나라에 따라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이는 어떤 나라 사람이든 대등하게 서로 존중하면서 개인과 공동체를 넓고 깊게 가꾸는 융합적인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그가 당나라에서 활동하는 동안 이 같은 가치를 정성들여 실천했기에 그의 삶이 보여준 큰 울림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인무이국은 융합의 본질을 성찰하도록 한다. 융합은 최근 들어 교육 등 많은 분야에서 키워드처럼 쓰이지만 그 의미는 특정 시대를 넘어선다. 가장 중요한 점은 융합이 종합, 결합, 연합, 복합, 조합, 혼합 같은 말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다.

융합의 융(融)은 가마솥에 밥을 지을 때 김이 올라오는 모습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여기서 '녹이다, 따뜻하다, 화합하다, 왕성하다, 잘 통하다, 즐겁다' 같은 의미가 나온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먹는 밥상을 두레상이라고 하는데, 따뜻한 밥을 솥에서 퍼 함께 어울려 먹는 풍경은 얼마나 정겨운가. '한솥밥을 먹는다'는 말에는 서로 잘 통해서 힘이 나고 즐겁다는 뜻이 들어 있다. 종합이나 결합 같은 말에서는 얻을 수 없는 융합의 독특한 멋과 맛이다.

국내 대학의 유학생 18만 명 가운데 대구와 경북에는 80개국 2만4천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21세기 청년 최치원이나 마찬가지다. 지역의 소중한 청년들이다. '기회와 성공은 사람 인연에서 비롯된다'는 격언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진리이지만 AI 시대에는 더욱 새겨야 할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지적이다. 취업을 위해 강조하는 글로벌 역량도 유학생들과의 융합에서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유학생 유치와 교육을 넘어 공감과 공존의 문화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새봄을 맞이한 대학 캠퍼스가 유학생들과 함께 따뜻하고 즐거운 융합의 가마솥과 두레상이 되도록 세심하게 노력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