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독불장군식 행보, 견제구 날린 시스템
대통령 눈치 안 본 판결, 삼권 분립 가치 입증
'법 왜곡죄' 등으로 사법부 옥죄려는 정치권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 관세 위법 판결로 미국의 정치·사법시스템의 견고함을 국제사회가 다시금 주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정의 내린 '관세'를 자의적으로 쓰지 말라는 제동이었다. 이 같은 견제구는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며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는 '용감한 판결'이라는 세평을 얻고 있다.
◆이래서 강대국, 삼권분립 견고한 민주주의 시스템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상호 관세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게 되면 그 자체로 국가 안보에 재앙이고, 끔찍한 일이 될 것"이라고 수차례 신호를 보내며 대법관들을 압박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 법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을 정치적 타격을 감안하지 않았다. 연방대법원 재판관 구성에서 보수 스펙트럼이 우위에 있었지만 이들에게 최우선은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시스템이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이끄는 연방대법원은 20일(현지시간)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입각한 상호 관세 부과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이었다. 이 가운데 3명(존 로버츠, 닐 고서치, 에이미 배럿)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한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특히 고서치, 배럿 두 사람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지명된 강경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다.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은 용감한 판결로 삼권분립이 엄연히 살아있음을 입증했다는 세평이 지배적인 배경이다.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별 상호 관세를 위법하다고 판단한 가장 큰 이유는 의회의 위임 없이 의회의 고유 권한인 관세를 자의적으로 부과한 탓이다. 또 이전 어느 대통령도 IEEPA를 근거로 관세를 부과한 적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방대법원은 "대통령이 주장하는 권한의 폭, 역사와 헌법적 맥락을 고려하면 그가 이런 권한을 행사하려면 분명한 의회의 승인을 식별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관세가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린 대법관 6명을 싸잡아서 비난했다. 그는 "그들은 바보 노릇을 하고 라이노('명목상으로만 공화당원'이라는 뜻으로, 중도파 공화당원들을 비난하는 표현)들과 급진 좌파 민주당원들의 애완견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류 언론, 일부 공화당 의원도 환영 메시지
정파성에 얽매이지 않고 연방대법원 본연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 중립적 판결을 두고 미국 주류 언론은 물론 외신들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홈그라운드인 공화당 내에서도 그의 독단적 정책 행보에 견제구를 날리며 연방대법원 판결에 환영의 메시지를 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의 뼈아픈 정치적 후퇴"라며 "대통령 권한에 대한 역사적인 판결"이라고 했다. 의회를 무시한 대통령의 권한에는 한계가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라는 평가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헌법상 권력 분립의 원칙을 획기적으로 수호한 판결"이라며 "대법원은 모든 대통령의 행정권 남용을 저지할 의지를 보여줬다"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아예 "연방대법원의 독립 선언"이라고 못 박았다.
외신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영국 가디언은 "법치주의에 기반한 미국 정부 체제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세계에 보여준 중요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BBC는 "이번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이 겉보기로 유지해온 '무적'이라는 이미지에도 오점을 남겼다"고 했다.
집권 여당인 공화당 내부에서도 환영의 메시지가 잇따랐다.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랜드 폴 상원의원은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이번 판결은 공화국을 수호하는 결정이었다"며 "다른 사람들이 IEEPA를 악용하려는 시도를 막을 수 있다"고 썼다. 하원의원들의 목소리도 다르지 않았다. 댄 뉴하우스 의원과 제프 허드 의원도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삼권분립의 원칙을 재확인한 판결"로 풀이했다.
자유무역을 중시해온 공화당의 전통적 인식과 연결되는 대목이지만 무엇보다 행정부가 의회의 입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론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판결에 정치적 입김 배제… 韓, 반면교사 삼아야
미 사법부와 입법부가 완강하게 트럼프 행정부의 전횡에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은 미국 사회시스템의 단면이다. 이는 국익을 우선시하기보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순응하고 있는 우리 정치·사법시스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3대 사법개혁안'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법 왜곡죄'(형법 개정안)는 사실상 정권 입맛에 맞춰 판결을 내리라는 암묵적 압박으로 읽힌다. 사법부가 특정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하려고 사실관계를 조작하거나 법을 왜곡해 적용하면 10년 이하 징역과 10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한다는 게 골자다. 엄중한 판결을 주문하는 듯 보이지만 삼권분립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이 상존한다.
법원행정처도 일찌감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법관을 처벌 대상으로 삼아 정치적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며 "특히 정치적 이슈가 되는 사안일 경우, 법관의 소신 있는 재판에 대해 법 왜곡죄 혐의를 씌울 위험성이 있다"고 의견서를 전한 바 있다. 여론재판으로 끌고 가 세몰이로 판가름하자는 의도가 읽힌 탓이다. 정치 주도권을 쥔 집단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법 왜곡 논쟁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무기징역 선고 직후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반발한 걸 보면 사법부에 대한 압박이 충분히 감지된다. 정청래 대표는 당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 수괴에게 사형이 아닌 무기를 선고해 사법 정의를 흔들었다"고 재판부를 비판했다. 사형제를 폐지하자고 하면서 자신들의 입맛과 다른 판결인 무기징역형이 선고되자 재판부를 향해 손가락질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