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 노동자 '경력 10년 미만'도 폐암 산재 인정…대구 지역 첫 사례

입력 2026-02-22 15: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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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소송' 산재 인정
근로복지공단 폐암 산재 인정 기준 '경력 10년' 무너져

서울 한 학교의 급식실 풍경. 연합뉴스
서울 한 학교의 급식실 풍경. 연합뉴스

"튀김 요리를 할 때 솥에서 올라오는 기름 연기와 가스 냄새 때문에 현기증을 자주 느꼈어요.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급식실이 뿌예지면 속이 메스껍고 온몸에 힘이 빠져 한동안 주저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학교 급식실에서 약 8년간 근무하다 폐암에 걸린 노동자에게 법원이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특히 이번 판결은 대구 지역에서 근무 경력 10년 미만 급식 노동자의 폐암 산재를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10년 이상 근무'라는 관행적 기준에 막혀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던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2일 대구시교육청 소속 조리실무사 강모(58) 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강 씨의 폐암이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강 씨는 2014년 3월부터 대구 지역 학교 급식실 5곳에서 근무하다 2022년 10월 폐암 진단을 받았다. 이후 산업재해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근무 기간이 10년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기존 역학 연구가 통상 10년 이상의 노출에서 폐암 위험 증가를 보고하고 있다"면서도 "강 씨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조리흄(Cooking Fume)에 고농도로 노출돼 폐암 발병 위험이 크게 증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단순한 근무 연수가 아니라 실제 노출 강도와 근무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조리흄은 230도 이상의 고온에서 기름을 가열할 때 발생하는 미세 입자와 가스의 혼합물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이를 폐암을 유발할 수 있는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튀김·볶음 등 고온 조리가 많은 학교와 병원 급식실 노동자들이 특히 취약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법원은 강 씨가 근무한 학교들의 조리 인력이 이용 인원 대비 현저히 부족했고, 조리흄을 많이 발생시키는 조리 방식이 빈번히 사용됐다고 봤다. 또한 환기 설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 유해 물질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았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급식 노동자의 폐암 산재 인정 기준에 중요한 변화를 예고한다. 그동안 근로복지공단은 '폐암 잠복기 최소 10년'이라는 의학적 견해를 근거로 10년 이상 근무 경력을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삼아왔다. 이로 인해 근무 기간이 10년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은 상당수가 불승인됐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폐암 산재를 신청한 급식 노동자는 208명이다. 이 가운데 175명은 승인됐지만 33명은 불승인됐다. 불승인 사례 중 23건은 '근무 기간이 10년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정경희 학교비정규직노조 대구지부장은 "그동안 근로복지공단이 급식 노동자 폐암 산재에 대해 일률적인 잣대를 적용해 온 것을 위법하다고 본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학교마다 근무 환경이 다른 만큼 단순한 근무 기간이 아니라 실제 작업 환경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