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날 찾지마"… 1박 20만원 내고 '감옥' 갇히는 가장들

입력 2026-02-18 18: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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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압수, 대화 금지, 1.5평 독방… 관계 피로감에 '자발적 유배' 떠나는 3040

자료사진. 챗GPT
자료사진. 챗GPT

대구 수성구의 중견기업 부장 김모(45) 씨는 설 연휴 가족들에게 "회사 긴급 출장"이라는 거짓말을 했다.

김 씨가 향하는 곳은 공항이 아닌 강원도의 한 산골에 위치한 명상 센터다. 이곳의 규칙은 엄격하다. 입소와 동시에 스마트폰을 반납해야 하고, 묵언 수행을 해야 하며 1.5평 남짓한 독방에서 벽만 바라봐야 한다.

식사도 개구멍 같은 배식구를 통해 넣어준다. 김 씨는 "1년 365일 상사의 지시, 부하직원의 눈치, 집안의 대소사에 시달리다 보니 단 3일만이라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에 숨고 싶었다"며 "20만원을 내고 갇히는 이 감옥이 나에게는 유일한 해방구"라고 털어놨다.

2026년 설 '연결'을 거부하고 스스로 '고립'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가족 친지들과 북적이는 명절 대신, 철저한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심리적 방전 상태를 회복하려는 이른바 '자발적 유배' 트렌드다.

최근 여행 및 숙박 업계에 따르면, 휴대폰 신호가 잘 잡히지 않는 오지 캠핑장이나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를 내세운 템플스테이 예약률이 설 연휴 기간 90%를 넘어섰다. 화려한 수영장이 있는 5성급 호텔보다, TV와 와이파이가 없는 '촌캉스(시골+바캉스)' 숙소의 인기가 더 뜨겁다.

경북 팔공산의 한 사찰 관계자는 "예전에는 수험생이나 취업 준비생들이 마음을 다잡으러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30~40대 직장인 남성들이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신청하는 비중이 급격히 늘었다"며 "법당에 엎드려 아무 말 없이 몇 시간이고 앉아만 있다 가는 분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현대인의 극심한 '관계 피로(Relation Fatigue)'가 깔려 있다. 업무 시간 외에도 카카오톡과 SNS로 24시간 연결되어 있는 초연결 사회에서, 명절은 반가움보다 '의무적인 소통 노동'의 연장선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중년 남성들에게 명절은 아내와 본가 사이의 눈치 싸움, 친척들의 비교 발언, 목돈 지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고스트레스 구간'이다.

차라리 돈을 내고서라도 물리적으로 단절된 공간에 들어가 심리적 안정을 찾겠다는 욕구가 '감옥 체험'이나 '묵언 수행' 같은 극단적인 힐링 상품의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서점가에서도 이런 흐름이 감지된다. 연휴를 앞두고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고독의 힘', '혼자 있는 시간의 즐거움'과 같은 키워드를 다룬 심리학 서적들이 전진 배치됐다.

한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의 고립이 사회적 단절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단어였다면, 지금의 고립은 생존을 위한 '능동적 재충전'의 의미로 변화했다"며 "명절 기간만이라도 사회적 가면(페르소나)을 벗고 온전한 나로 존재하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이 투영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