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달래는 기술의 축복" vs "망자 모독하는 디지털 강령술" 시끌
대구 수성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모(34) 씨는 다가오는 이번 설 연휴, 고향 집에 내려가 차례상에 태블릿 PC를 올릴 예정이다. 태블릿 화면 속에는 3년 전 작고한 할머니가 환하게 웃고 있다. 단순히 움직이는 사진이 아니다. 박 씨가 "할매, 나 왔어"라고 말을 건네자, 화면 속 할머니는 "우리 강아지, 밥은 먹었나? 얼굴이 반쪽이네"라며 생전의 목소리와 억양 그대로 답했다.
박 씨는 "생성형 AI 기술을 이용해 할머니의 옛 영상과 음성 데이터를 학습시켜 만든 'AI 디지털 휴먼'"이라며 "처음엔 어색해하시던 부모님도 이제는 화면 속 할머니와 대화하며 눈시울을 붉히곤 하신다. 이번 명절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할 것 같다"고 말했다.
2026년 설, 대한민국 차례상 풍경이 급변하고 있다. 지방(紙榜)과 영정 사진이 차지하던 자리를 'AI 조상님'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앱 하나면 낡은 흑백 사진 속 고인을 1분 만에 눈을 깜빡이고 미소 짓는 영상으로 변환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다.
IT 업계에 따르면 설 연휴를 일주일 앞둔 지난 5일부터 주요 앱 스토어에서는 'AI 추모', '디지털 복원', '목소리 생성' 관련 앱 다운로드 수가 전월 대비 300% 이상 급증했다. 과거 수백만 원을 호가하던 디지털 휴먼 제작 비용이 AI 기술 고도화로 몇 천 원 수준, 심지어 무료로까지 떨어지면서 접근 장벽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추모' 열풍은 그리움을 기술로 치유한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갑작스러운 사고나 병환으로 가족을 떠나보낸 유가족들에게 AI 복원 기술은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자, 상실감을 극복하는 새로운 도구로 주목받는다.
서울의 한 추모공원 관계자는 "최근 봉안당을 찾는 유가족 중 절반 이상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고인의 생전 영상을 AI로 복원해 틀어놓고 대화를 나눈다"며 "차가운 비석 대신 따뜻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위로가 된다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디지털 강령술'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고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데이터를 조작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연출하는 것은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설 명절을 앞두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AI로 복원해 차례상에 올리자고 하는데 너무 기괴하고 무섭다"는 며느리의 하소연이 올라와 찬반 논쟁이 뜨겁게 벌어졌다. 댓글에는 "산 사람을 위한 이기적인 위로일 뿐이다", "딥페이크 범죄와 무엇이 다르냐", "죽음마저 기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선 안 된다"는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다.
기술적 한계로 인한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현상도 문제다. 고인의 모습과 묘하게 다른 표정이나 기계적인 목소리 톤이 오히려 유가족에게 더 큰 심리적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심리학과 교수는 "AI를 통한 고인 복원은 사별의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일시적인 '애도 보조 수단'이 될 수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가상과 현실을 혼동하거나, 고인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 정상적인 애도 과정을 방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유교적 전통과 첨단 기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2026년의 설날. "기술 덕분에 다시 만났다"는 환호와 "죽음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우려 속에서, 우리 사회는 지금 '이별하는 방법'을 새로 배우고 있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