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 부담에 연휴 근무 자처"… 고물가 속 '세뱃플레이션' 여전
"초등학교 5학년 조카가 작년에 3만원을 줬더니 '삼촌, 이걸로 요즘 치킨도 못 사먹어'라고 하더라고요. 올해는 5만원권으로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울 마포구 거주, 직장인 김모씨·34)
민족 대명절 설(2월 17일)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는 기쁨도 잠시, 직장인들의 지갑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수년간 이어진 고물가 여파로 세뱃돈 액수도 덩달아 오르는 이른바 '세뱃플레이션(세뱃돈+인플레이션)' 현상이 올해 설에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12일 유통업계와 주요 리서치 기관이 발표한 '2026 설 명절 세뱃돈 적정 금액'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올해 세뱃돈의 심리적 저지선은 단연 '5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배춧잎(1만원권)' 몇 장으로 해결되던 시절은 지났다.
◇미취학 1~3만원, 초등생 3~5만원… 중고생은 '10만원'이 대세
가장 고민이 되는 대상은 역시 조카들이다. 올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령별 적정 세뱃돈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이 수렴된다.
▷미취학 아동 및 초등 저학년은 1만~3만원 ▷초등 고학년은 3만~5만원 ▷중·고등학생은 5만~10만원 ▷대학생·취준생은 10만~20만원 선이다.
눈에 띄는 점은 '5만원권'의 위상 변화다. 몇 년 전만 해도 5만원권 한 장이면 중고생에게도 넉넉한 금액으로 통했지만, 이제는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5만원을 기대하는 눈치다. 특히 중고등학생의 경우 물가 상승과 친구들 간의 비교 심리 탓에 '10만원'이 새로운 표준(국룰)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국민일보가 진행한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세뱃돈 액수는 10만원으로 집계됐다.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담스럽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친구들은 다 10만원 받는데"라는 불만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부모님 용돈은 '23만원'… 팍팍한 지갑 사정에 '현금 다이어트'
부모님께 드리는 명절 용돈의 경우 평균 22만 7천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소폭 상승한 수치다. 통상 양가 부모님께 각각 20만~30만원씩을 드리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진 탓이다.
하지만 올해 한국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은 만큼, 직장인들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물가상승률은 2%대로 안정화 추세에 접어들었지만,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다. 실제로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는 "세뱃돈 지출을 줄이기 위해 친척 모임에 불참하겠다"거나 "당직 근무를 자처했다"는 웃지 못할 사연들이 줄을 잇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리한 현금 지출보다는 '합리적 가이드라인'을 세울 것을 조언한다.
이영만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자신의 소득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남들 시선을 의식해 세뱃돈을 책정하면 연휴 이후 생활고에 시달릴 수 있다"며 "친척 간에 미리 상한선을 정하거나, 현금 대신 책이나 문구류 상품권, 또는 주식 1주를 선물하는 등 교육적인 의미를 담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세뱃돈은 본래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세배를 올리면, 윗사람이 덕담과 함께 건네는 '복돈'의 의미다. 액수의 과다를 떠나 주고받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한 초등학생은 인터뷰에서 "덕담은 짧게, 봉투는 두껍게가 최고"라고 말했다. 세태가 변했다 하더라도, 이번 설에는 봉투 속에 돈만 넣을 것이 아니라 진심 어린 편지나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함께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 세뱃돈 스트레스보다는 가족 간의 정이 오가는 명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