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우리만, 아니 나부터 변하면 된다

입력 2026-02-12 09: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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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찬란한 멸종
이정모 지음/ 다산북스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극단적 환경주의자들은 말한다. 지구에서 가장 골칫덩어리 생명체는 인간이고 인간 없는 세상이야말로 지구를 살리는 지름길이라고. 사람이 사라진 지구가 자기 생명력을 회복하는 이야기를 그린 책도 적지 않다. 이처럼 인류 멸종과 지구 멸망을 따로 떼어놓으려는 밑바닥에는 지구 위기와 인간의 귀책 사유에 대한 원망과 강력한 경고와 반성을 주문하는 한편, 자포자기의 심정 섞인 악담도 한 줌 더해졌을 것이다.

그들 주장처럼 인류는 지구를 위해 사라져도 괜찮은 존재인가? 언제나 인간이 문제라는 간편한, 어쩌면 게으른 대답이 대세일지라도 이 문제를 해결할 존재 역시 인간 말고는 없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정말로 안타깝게도 결자해지만이 살길이라는 말이다. 인류가 성취하여 지구에 기여한 공헌 또한 함께 언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테면 우주의 기원을 밝히고 우주의 나이가 137억 살인 것을 알려준 것도, 동식물의 이름을 지어준 것도 모두 인류였다. 지구를 선물 받았고 자연의 덕으로 살아온 생명체지만 인류가 아니었다면 꽃도 꽃이 될 수 없었고 자연도 이름 없는 무엇으로 남았을 터. 자연에 적응하는 존재이자 자연을 바꿀 수 있는 존재, 문제를 일으키기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는 지적 생명체 인류가 더 버텨야 한다고 간곡하게 요청하는 자리에 과학자 이정모가 있다.

『찬란한 멸종』 은 2150년, 인류가 멸종한 뒤에 최후의 인공지능이 남기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지구의 역사를 거슬러 추적하는 동안 태고의 지구와 자연을 종횡하던 인류 이전의 생명체를 만나고 인류가 그 짧은 시간 동안 지구의 우세종이 될 수 있었던 배경도(직립보행이라는 기적적인 생물학적 결과) 확인한다.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한 이래 29만년 동안 잘 살던 인류는 1만 년 전에 농사를 발명했고 산업혁명으로 화석연료를 마음껏 소비하면서 풍요와 장수를 견인했다. 재앙의 시작이었다.

인류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간곡한 소망을 꾹꾹 눌러 담은 책은, 쉽게 말해 그동안 다섯 번의 대멸종은 화산폭발과 지진과 소행성 충돌 같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불가항력이었으나, 여섯 번째 멸종은 인간이 자초한 파국이 될 것인즉 인류가 힘을 합쳐 인재(人災)를 피하자는 얘기다. 아직도 늦지 않았고, 여전히 가능하다는 작가의 마음이 (환경파괴에 무심한) 인류의 한 사람으로 미안하고 고맙다.

이정모의 글은 유려하고 지적이면서 경쾌하다. 인상 찌푸린 표정으로 거봐라! 이래도 환경 파괴를 일삼으며 살아갈래? 라는 고발과 계몽의 태도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것. 거칠게 말하자면, 인류의 대멸종을 논하는 책도 이처럼 유쾌하고 쉽고 친절한데(그래서 더 안타깝고 절절하게 다가오지만) 뭐 대단한 얘기를 쓴다고 구구절절 심각하고 현학적 문장을 나열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당신들 인류다. 똑똑한 인류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화산이 터져서도 아니고, 소행성이 부딪혀서도 아니고, 초대륙이 만들어져서도 아니다. 오로지 당신들 인류의 소행이다. 그러니 해결법도 간단하다. 당신들만 변하면 된다." (111쪽)

『찬란한 멸종』은 지구에서 생성되고 소멸한 무수한 생명체의 이야기이다. 또한,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지배자가 된 인류에 대한 통찰이고, 그 존재가 아직은 소멸할 때가 아니라고 간절하게 희망을 움켜쥔 어느 과학자의 탄원서이다. 이제, 우리가 그 요청에 응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