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모의 모두를 위한 미술사]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 미술관이 있다

입력 2026-02-12 11:30:00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데시마 미술관과 '머무는 건축'

데시마 미술관
데시마 미술관

가까운 나라 일본에는 부러울 정도로 좋은 미술관이 많다. 미술관의 역사도 우리보다 길고, 컬렉션의 질과 양은 물론 미술관 건축에 이르기까지 여러 면에서 우리와는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카가와 현 세토 내해의 작은 섬 데시마(豊島)에는 미술관이 하나 있다. 섬의 인구는 고작 천 명이나 될까. 섬을 오가는 페리는 하루에 몇 차례뿐이고, 택시는 단 한 대뿐이다. 드문드문 다니는 마을 버스를 기다리거나, 가장 좋은 이동 수단은 자전거다. '풍성한 섬'이라는 한자 이름과는 달리, 섬에는 드문드문 인가가 있을 뿐 대규모 어업도 이루어지지 않는 전형적인 농촌 섬이다.

자전거로 섬을 한 바퀴 도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다.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완만한 오르막을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길가에는 귤나무와 올리브 나무가 이어진다. 광활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제법 규모 있는 농사다. 올리브가 재배되는 것을 보니 이곳 기후가 그리스나 이탈리아만큼 따뜻한가 싶기도 하다.

이런 데시마에 미술관이 있다. 사실 미술관을 제외하면 이 섬에는 거의 다른 볼거리가 없다. 그런데도 이 미술관 하나 때문에 몇 번이고 다시 이 섬을 찾는다.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Nishizawa Ryue)가 설계한 데시마 미술관은 멀리서 보면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콘크리트 돔처럼 보인다. 하나의 조형물처럼 만들어진 이 건물은 천장이 두 곳 크게 열려 있어 바람 소리와 새 소리가 그대로 들려오고, 빛은 제 마음대로 드나들며 바닥과 벽 위에서 그림자 놀이를 벌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 하나의 공간에는 기둥이 없다.

건물의 형태는 가까이에서 보면 땅 위에 살짝 내려앉은 물방울처럼 보인다. 낮고 넓게 펼쳐진 곡면의 콘크리트 쉘은 주변 풍경에 몸을 낮춘 채, 오히려 지형의 일부처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건축에는 벽이나 기둥이 보이지 않는다. 두께가 얇은 콘크리트 껍질 하나만으로 자립하는 구조로, 공간의 구조적 위계도 드러내지 않는다.

미술관 건물 내부는 단일 공간이다. 천장에는 두 개의 타원형 개구부가 뚫려 있다. 이것은 창이라기보다 하늘과 직접 연결된 틈처럼 보인다. 그 틈을 통해 빛과 바람, 새 소리가 그대로 들어온다.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내부의 밝기와 공기의 밀도는 끊임없이 달라지고, 공간은 결코 고정된 상태로 머무르지 않는다.

데시마 미술관에는 일반적인 미술관에서처럼 소장품이나 특별전이 기획되어 전시되지 않는다. 설치미술가 나이토 레이(Naito Rei)의 작품 매트릭스가 건축물과 하나가 되어 공기처럼, 바람처럼, 빛처럼 존재한다. 바닥에는 육안으로 느껴지지 않는 미세한 경사가 있으며, 바닥에 난 구멍 곳곳에서 작은 물방울이 맺히고 움직인다.

물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기보다 생겨나고, 모이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관람자는 이 미세한 움직임을 따라 자연스럽게 시선을 낮추고, 자신의 호흡과 걸음을 늦추게 된다. 이곳은 시각 중심의 공간이 아니라, 모든 감각이 하나가 되어 시간의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게 되는 작품이다.

데시마 미술관은 2010년 세토우치 국제예술제에 맞추어 개관했다. 공식적인 연례 통계가 정기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지만, 학술 조사 자료에 따르면 연간 방문객 수는 약 6만 명 수준이며, 세토우치 국제예술제가 열리는 해에는 1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이곳을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석모 전 강릉 솔올미술관장
김석모 전 강릉 솔올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