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백송(白松)

입력 2026-02-08 12: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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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구박물관 앞마당에 있는 백송은 반타원형의 수형이 아름답다. 박물관 개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기념으로 심은 나무다.
국립대구박물관 앞마당에 있는 백송은 반타원형의 수형이 아름답다. 박물관 개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기념으로 심은 나무다.

백송의 하얀 색깔이야 말로 온갖 나무들 중에서 뛰어나 아름다운 이름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 줄기는 눈처럼 희디희고 그 잎은 연기처럼 푸르고 그 그늘은 무성하고 짙으며 그 바람은 맑고 시원하다. (중략) 대체 그 누가 백송의 아름다움이 (다른 나무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가.

<『존재집』>

조선 후기 문신 존재(存齋) 박윤묵(朴允默, 1771~1849)이 한양의 운풍헌(雲風軒) 남쪽 뜰에 있는 백송의 범상치 않은 자태와 아름다움을 찬양한 「백송찬」(白松贊)의 일부다.

백송은 말 그대로 줄기가 온통 하얀 소나무로 중국이 원산지다. 껍질이 흑갈색인 소나무나 곰솔과는 확연하게 달라서 한번 보면 잊어버릴 수 없을 만큼 특별하게 기억된다. 조선시대 사신을 따라 연경(燕京·베이징)을 다녀온 행적을 기록한 『계산기정』(薊山紀程) 등 연행록(燕行錄)에는 중국 향림사(香林寺)의 백송에 대한 감상이 자주 보인다. '가지가 은비녀 같다'거나 '빛깔이 창연하다' 혹은 '푸른 잎에 옥(玉) 같은 줄기라 또한 기이한 나무' 등의 인상평을 수록했다.

대구 달성공원 정문 남쪽에 있는 백송. 둥치는 한 아름에 못 미치고 줄기의 색깔이 아직 푸릇푸릇하다.
대구 달성공원 정문 남쪽에 있는 백송. 둥치는 한 아름에 못 미치고 줄기의 색깔이 아직 푸릇푸릇하다.

늘 보아왔던 독야청청하지만 거무튀튀하고 거북 등처럼 쩍쩍 갈라진 소나무의 거친 수피와는 다르게 흰색을 상서롭게 여겨온 조선 사신 일행들의 눈앞에 서있는 매끈한 자태의 백송이 신비롭고 귀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구경하기 나무라서 중국을 다녀가는 일행들은 향림사에 들러서 나무를 본 것 같다.

조선시대 백송을 집 안에 심을 수 있는 사람은 지체 높은 사대부이거나 중국을 드나드는 사신이라야 가능했다. 이는 권세를 나타내는 상징물과 같아서 높은 신분을 과시하려고 일부러 심기도 했을 것이다.

경북 포항시 청하면 농업인상담소의 어린 백송.
경북 포항시 청하면 농업인상담소의 어린 백송.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백송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구내 백송은 수령이 600년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 17m, 밑동 둘레가 3m 넘는 노거수로 줄기가 밑동에서 두 갈래로 벌어져 멀리서 보면 하늘 향해 두 팔을 벌린 'V'자형의 특이한 모습이다. 누가 언제 심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오늘날 국내의 백송 노거수는 중국에서 묘목으로 가져오거나 씨앗을 채취하여 심은 것들이다. 백송이 우리 땅에 뿌리 내린지 수백 년이 지났지만 노거수의 후계목이 흔하지 않는데 이유는 뭘까?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언덕배기에 있는 천연기념물 백송은 높이 약 17m, 밑부분의 둘레는 3m 넘는 노거수로 줄기가 두 갈래로 벌어져 멀리서 보면 하늘 향해 두 팔을 벌린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언덕배기에 있는 천연기념물 백송은 높이 약 17m, 밑부분의 둘레는 3m 넘는 노거수로 줄기가 두 갈래로 벌어져 멀리서 보면 하늘 향해 두 팔을 벌린 'V'자형의 특이한 모습이다.

소나무 종류는 같은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피지만 다른 나무의 꽃가루를 받아서 수분하는 특징이 있다. 봄철 송홧가루가 바람에 날려 다른 나무의 암꽃에 내려앉아야 씨앗이 제대로 여문다. 그런데 도심 언덕배기에 홀로 서있는 바람에 혼인할 나무가 근처에 없어 생명력 강한 종자를 얻지 못한다.

비단 이 백송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백송 대부분이 한 그루의 독립수로 멀찍이 떨어져 있으니 희소의 가치는 누릴지언정 번식할 씨앗을 남기지 못하고 독신으로 늙어갈 판이다.

대구경북에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관상용 백송이 몇 그루 있다. 대구에는 달성공원 정문의 남쪽과 대구향교 정문 옆, 대구수목원, 대구 어린이세상 뜰에 아직 껍질의 푸른색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채 한 그루씩 외톨이로 커간다. 경상북도에서는 경산시 영남대 캠퍼스와 울진 불영사 경내, 포항시 청하면 농업인상담소 등에도 심어져 있다.

대구 어린이세상 뜰의 백송. 소나무들 사이에 섞여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대구 어린이세상 뜰의 백송. 소나무들 사이에 섞여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잎 3개 모여 나는 삼엽송

백송은 소나뭇과 식물이지만 자라면서 소나무와 달리 나무껍질이 플라타너스나 느티나무처럼 넓적한 비늘 조각으로 벗겨진다. 줄기는 어릴 때 푸르지만 세월 따라 몸피가 자라면서 수피가 벗겨지면 허연 얼룩무늬가 점차 늘어나 고목이 되면 거의 하얗게 된다. 이런 특징 때문에 백골송(白骨松) 혹은 백간송(白幹松)이라고도 한다.

조선후기 유희가 쓴 어휘사전 『물명고』에 괄자송(栝子松)이 나오는데 다른 이름이 백간송이라는 설명과 함께 '백간송 열매가 소나무와 비슷하고 몸이 희다'고 풀이돼 있다.

뾰족한 잎 모양은 소나무나 곰솔과 비슷하지만 잎의 개수가 우리나라 소나무가 2개씩 모여 나는 반면 백송은 리기다소나무처럼 3개씩 모여 나는 삼엽송(三葉松)이다. 유관속이 2개인 다른 삼엽송과는 달리 백송은 잣나무처럼 유관속이 1개다.

생장이 매우 더디고 옮겨심기도 무척 까다로워서 옛날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백송은 5그루이며 4그루가 수도권에 1그루는 충남에 있다.

◆역사 소용돌이 지켜본 헌법재판소 백송

상전벽해 모진 풍파 겪어온 백간송

一種滄桑白榦松 일종창상백간송

먼 길 돌아온 요동 학과 다시 마주하니

歸來遼鶴更相逢 귀래요학갱상봉

풍상으로 보낸 30년 세월 일들

風霜三十年間事 풍상삼십년간사

반은 뜬구름에 들고 반은 용이 되었네

半入浮雲半化龍 반입부운반화룡

<『가정유고』(柯汀遺稿)>

조선 후기 문신 가정(柯汀) 조진관(趙鎭寬, 1739~1808)이 지은 「용호영에서 백간송을 읊다」(龍虎營 咏白榦松)라는 한시다. 세상의 변화를 뜻하는 창상(滄桑)을 견뎌낸 백송(白松)의 고고한 자태를 읊었다.

조진관은 조선 후기 조대비로 널리 알려진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1890)의 할아버지다. 앞에서 거론된 백송이 있는 헌법재판소 자리가 예전 신정왕후의 친정집이 있던 곳이다. 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영조 때의 노론의 중심 인물이자 신정왕후의 고조부(高祖父)인 학당(鶴塘) 조상경(趙尙絅, 1681~1746)의 집이었다. 이후 증조부 조엄(趙曮), 조부 조진관(趙鎭寬) 아버지 조만영(趙萬永)이 자리했고 풍양 조(趙)씨 세도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돼 입궐한 신정왕후는 아들 헌종이 즉위하자 왕대비에 올랐다가 철종이 즉위하면서 대왕대비가 되었다. 철종이 승하하자 왕실 최고 어른으로서 6촌인 흥선군(興宣君)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둘째 아들를 양자로 삼아서 왕(고종)에 등극시킨 인물이다. 흥선대원군의 섭정(攝政) 이후 재동 백송은 조선이 쇠락하고 대한제국이 몰락하는 격동의 세월을 함께한 나무다.

이하응은 조대비의 친정집에 드나들면서 조대비의 조카 조성하를 통하여 조대비와 친분을 유지하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에 마침표를 찍을 궁리와 왕정복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당시 흥선군은 백송의 둥치가 전에 보다 더 하얗게 변하는 걸 보고 좋은 징조로 여겨 자신의 성공을 확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백송은 나이가 들수록 수피가 하얗게 변화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호사가들은 스토리텔링으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풍양 조씨의 세도가 무너지면서 재동 백송이 있는 뜨락의 주인도 바뀌게 된다. 개화파이자 갑신정변의 주역 홍영식(洪英植, 1855~1884)이 잠시 거쳐 갔다. 이후 최초의 국립병원인 제중원이 위치했고 경기여고와 창덕여고 교정으로 사용했다가 1993년 헌법재판소가 자리 잡게 된다.

조선 말기와 근대의 파란만장한 현장을 목도한 백송은 다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행정수도 특별법 위헌 심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윤석열 대통령 탄핵 등 대한민국의 정치적 고비를 묵묵히 굽어보고 있다.

◆노태우 정부 '백송회생대책위'

1962년 말에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됐을 정도로 멋진 수형을 가진 백송이 서울 통의동 옛 정부종합청사 뒤편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추사 감정희의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둘째 사위가 되면서 하사받은 '월성위궁' 자리였다. 정원에는 숙종 때 심어진 백송 한 그루가 있었다. 1990년 7월17일 폭우를 동반한 돌풍에 밤새 어이없이 줄기가 부러졌다. 청와대 근처에서 노거수가 고사하면 불길하다는 소문이 돌자 당시의 노태우 정부에서는 살려내라고 특별히 지시했다. 급기야 서울시에 '백송회생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쓰러진 상태로라도 살리고자 경찰관을 배치해 3교대 근무시키며 보호했지만 끝내 백송은 수명을 다했다.

재미있는 것은 통의동 백송의 나이에 얽힌 에피소드다. 우리나라 가장 오래 된 600여 년 묵은 것으로 알려진 백송의 줄기를 한 대학 교수가 정밀 분석한 결과 300살 남짓에 불과하다고 발표해 파문이 일었다. 수령이 자그마치 300년이나 다르다보니 '명확한 근거도 없이 대충 짐작한 게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헌법재판소의 백송 나이도 믿을 수 없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본래 곧은 성품 서리에도 오만하게 견디건만

一般貞質傲氷霜 일반정질오빙상

모두 드문 건 아끼고 흔한 건 푸대접하네

捴爲怜稀却賤常 총위령희각천상

만일 세상천지 온통 귀한 것뿐이라면
倘使世間皆此族 당사세간개차족

또한 마땅히 흰 것 싫어하고 짙푸름 사랑하리

也應嫌白愛蒼蒼 야응혐백애창창

<『서당사재』(西堂私載)>

조선 후기 홍문관 형조판서를 지낸 서당(西堂) 이덕수(李德壽)의 「백송」이라는 시다. 사람들이 고결함보다 귀하기 때문에 백송을 사랑하는 세태를 풍자했다. 만일 세상에 백송이 흔했더라면 짙푸름을 사랑하리라는 말인즉 사물의 본질보다 희소성의 가치에 무게를 두는 걸 경계하라는 역설(逆說)로도 읽힌다.

언론인 chunghaman@korea.com